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전라남도 영광군. 이 작은 군(郡)의 바닷바람 속엔 천년의 시간이 배어 있다. 그 바람이, 손끝에서 손끝으로 전해진 장인의 기술과 만나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영광굴비. 단지 말린 생선이 아니라, 한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삶의 방식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요즘 영광굴비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연간 생산량은 약 6960톤, 매출만 해도 2010억 원 규모. 여기에 관련 업체는 무려 428곳. 숫자만 봐도 이게 영광 경제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축인지 감이 온다. 영광군이 참조기를 ‘군어(郡魚)’로 지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올려둔 상징이 아니라, 굴비가 이 지역의 밥줄이자, 실질적인 산업 기반이라는 점을 제대로 짚은 셈이다.
영광군 법성면 일대는 굴비를 만들기 위한 자연적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해풍의 방향과 세기, 온도와 습도. 이 모든 것이 조기를 말리는 데 이상적이다. 여기에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섬세한 손맛이 더해지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영광굴비 고유의 풍미가 탄생한다. 이러한 배경 아래, 영광은 2009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굴비산업특구’로 지정됐다.
그렇다면, 굴비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은 이를 "소금에 약간 절여 통째로 말린 조기"라고 설명하지만, 이 한 줄 속엔 엄청난 노하우가 숨어 있다. 조기의 아가미를 벌려 조름을 제거하고, 소금을 아가미 속과 몸 전체에 고르게 채운 후 항아리에 절인다. 이후 자연 해풍 속에서 빳빳하게 마를 때까지 건조한다. 소금의 염도, 절이는 시간, 바람의 흐름. 이 미묘한 균형을 잡는 데에는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 그게 장인의 역할이다.
‘굴비’라는 이름 자체에도 이야기가 있다. 고려 인종 시기, 이자겸이 유배지 법성포에서 해풍에 말린 조기를 맛본 뒤 임금께 진상했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굴비(屈比)’라 불렀다는 설. 또 하나는 조기를 엮어 말리면 허리가 굽는데, 이 모습에서 고어 ‘구비’가 유래해 ‘굴비’가 되었다는 해석. 이름 하나에 시대의 서사와 사람의 태도가 담겨 있다.
영광굴비의 뿌리는 문헌에도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조기는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때에 여러 곳의 어선이 모여 그물로 잡는다"는 기록이 있고, 19세기 말 오횡묵의 '지도군총쇄록'에서는 영광 일대가 조기 어장의 중심지였고, 파시(임시 어시장)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굴비는 생산물이자 교환 가치였고, 동시에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영광굴비의 품질은 원료에서 갈린다. 영광에서는 몸길이 17cm 이상의 국내산 참조기만을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참조기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이마가 특징이며, 단백질, 칼슘, 철분, 비타민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전통 염장 방식인 ‘섶장법’을 적용하고, 염장에 쓰이는 소금은 영광군 염산면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고집한다. 이렇게 절인 참조기는 해풍에 건조되며,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살아 있는 굴비로 거듭난다.
생산과정의 위생과 품질 관리도 체계적이다. 원료 조기는 경매로 조달하고, 수매 확인서를 통해 원산지를 관리한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수매 즉시 가공장으로 이동시켜 -30℃에서 단기간 보관하고, 이후 -18~22℃ 환경에서 장기 저장·가공한다. 여름과 장마철은 피하고, 알이 꽉 차는 2~3월에 원료를 집중 수매한다. 염장굴비는 주로 3~6월, 마른굴비는 11월~이듬해 3월까지 생산된다.
최근 영광굴비 산업은 전통 위에 안주하지 않는다. 영광군은 굴비의 명성과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 ‘지리적표시제’ 등록을 추진 중이다. 동시에 참조기 어획량 감소에 대비해 160억 원 규모의 ‘참조기 양식산업센터’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원료 수급의 안정성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소비자 환경의 변화에 맞춘 대응도 활발하다. 1인 가구 증가, 간편식 수요 확대에 발맞춰 영광군은 굴비를 활용한 가정간편식(HMR) 개발에 나섰다. 전통 방식의 굴비는 물론, 고추장 굴비, 보리굴비 등 새로운 형태의 제품들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굴비는 이제 식탁 위의 유산이자, 오늘의 삶에 맞는 방식으로 진화 중인 문화이기도 하다.
영광굴비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산업특구로 이어진 긴 역사 속에서 변함없는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그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을 재정의해 나가고 있다. 바람과 시간, 기술과 이야기가 빚은 이 한 마리 생선은, 여전히 우리 식문화와 지역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영광군은 굴비 산업의 뿌리를 지키는 동시에,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리적표시제 등록 추진, 참조기 양식 기반 마련, 간편식 제품 개발까지.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껴안으며, 굴비 산업의 다음 세대를 준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