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시대마다 얼굴을 바꿔왔다. 군사정권의 권력은 총칼을 들었고, 정치권력은 법과 제도를 앞세웠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권력은 금융권력이다. 광고와 자본을 쥐고, 침묵을 만들며, 불편한 질문을 사라지게 하는 힘. 최근 우리금융그룹(회장 임종룡)을 둘러싼 논란은 금융권력이 윤리의 통제에서 이탈할 때 사회가 어떤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지를 묻고 있다.
금융권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작동하고, 내부 기준과 경영 판단이라는 언어로 자신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금융은 자금의 흐름을 통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무엇보다 고객의 신뢰 위에 서는 산업이다. 그래서 금융권력은 다른 어떤 권력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적 절제와 설명 책임을 요구받는다.
이 지점에서 최근 우리금융의 행보는 단순한 기업 논란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무엇을 했는가’보다, 비판과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대했는가에 있다. 불편한 문제 제기를 설명과 성찰의 계기로 삼았는지, 아니면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했는지는 조직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가치관은 곧 금융권력의 윤리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광고를 끊는 순간, 비판은 사라지고 자기검열이 작동한다. 임종룡 회장과 우리금융그룹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한 언론사를 상대로 광고를 공식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이나 반론 대신, 광고 집행 여부를 통해 언론을 선별·관리하는 선택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홍보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권력이 비판과 질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논란의 본질이 드러난다.
금융회사의 판단은 언제든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금융회사는 언제나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판단의 이유, 그 판단이 고객과 사회에 미칠 영향, 비판을 통해 무엇을 점검하고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따라야 한다. 이 과정이 생략될 때, 금융은 책임의 언어를 잃고 관리의 기술만 남게 된다. 광고로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은 바로 그 공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더 위험한 순간은 이러한 대응 방식이 반복되고 구조로 굳어질 때다. 개별 사안은 실무적 판단일 수 있지만, ‘부정 기사 언론은 광고에서 배제한다’는 기준이 전사적으로 공유되고 실행된다면 이미 문제는 조직의 윤리적 감수성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런 기준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최고 의사결정자의 인식과 리더십이 놓여 있다.
이 질문의 끝에서 임종룡 회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관료 조직과 금융 정책의 중심을 거쳐 금융지주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경험’과 ‘안정성’의 상징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금융권력 앞에서 요구되는 덕목은 경력의 길이가 아니라, 권력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인식이다. 광고를 통해 비판을 통제하는 방식이 가능해진 조직에서, 회장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금융사의 윤리는 숫자가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 비판을 받아들이는 방식, 질문을 대하는 자세, 불편한 논의를 조직 안으로 끌어들이는 용기가 그 기준이다. 비판을 비용과 효율의 문제로 환산하는 순간, 내부에서는 침묵이 미덕이 되고 외부에서는 신뢰가 빠르게 마모된다. 자기검열이 학습된 조직은 결국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는 사실은 수차례의 금융사 사례가 이미 증명해 왔다.
이 사안은 우리금융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권력이 광고라는 수단으로 언론을 통제해도 괜찮다는 신호가 사회에 퍼질 때, 그 파장은 빠르게 확산된다. 실제 금융권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의 대응을 예의주시하며, 유사한 방식의 ‘리스크 관리’를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질문은 위축되고, 정보는 줄어들며, 고객은 판단의 근거를 잃는다. 금융이 ‘신뢰 산업’이라는 본질에서 멀어지는 순간이다.
결국 핵심 질문은 하나다. 금융권력은 비판 앞에서 설명으로 답할 것인가, 아니면 광고로 침묵을 만들 것인가. 윤리의 토대 위에 서지 않은 금융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침묵은 관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뢰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과 임종룡 회장이 지금 마주한 것은 단기 논란이 아니라, 광고로 언론을 통제하는 금융권력으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순간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