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더 이상 끝이 아니라 남해안 관문, 우주산업 중심지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작은 가능성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현장을 누벼온 공영민 고흥군수의 지난 3년.
필요하다면 중앙부처든 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고, 그 발걸음이 쌓이면서 고흥 곳곳에는 눈에 띄지 않게 변화의 흔적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난 성과보다, 기반부터 다져온 과정에 가까웠다.
지난 1월, 고흥 전역을 돌며 이어진 ‘군민과의 대화’가 마무리된 지 한 달여. 행사장은 조용해졌지만, 당시 공개된 성과 자료는 지금도 군정의 현재를 비추는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틀에 박힌 보고자료로 넘기기엔 무게가 달랐다.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남겨진 과제, 앞으로 채워야 할 숙제를 한 장 한 장에 담아낸 ‘중간 성적표’였다. 그리고 그 성적표를 놓고, 지금 고흥은 다시 평가의 시간으로 들어가고 있다.
■ “말보다 기록”…552건 숙원사업 관리의 민낯
군민과의 대화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주민 건의사항 처리 현황이었다. 박수보다 먼저 쏟아진 건, “그래서 그건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이었다.
고흥군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접수된 건의사항 240건과 토론 과제 312건, 모두 552건을 한데 모아 완료·추진·보완·장기 검토 단계로 나눠 공개했다. 번호를 붙이고, 색깔을 나누고, 진행 단계를 표시해 ‘어디쯤 와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줬다.
도로 확·포장, 배수시설 정비, 농로 개선, 주차장 조성, 마을 환경 정비, 생활편의시설 설치까지. 책상 위 행정이 아니라, 집 앞 골목과 논두렁, 마을회관 주변에서 바로 체감되는 사업들이 대부분이었다. 각 항목마다 현장 사진과 설명을 덧붙여, 말이 아니라 장면으로 상황을 전했다.
“검토 중입니다”라는 말로 시간을 벌던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신, 지금 어디까지 왔고,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행정이 민원을 어떻게 쌓아두고, 어떻게 끝까지 책임지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 군정의 큰 틀, ‘3+3 전략’으로 정리하다
성과 자료에는 민선 8기 군정 운영의 큰 설계도도 함께 담겨 있었다. 방향부터 먼저 세웠다는 뜻이다. 산업 축은 ▲우주발사체 클러스터 ▲드론·UAM ▲스마트팜 혁신밸리. 기반 축은 ▲교통 ▲경제 ▲정주·복지. 군정 전반을 여섯 갈래로 묶은, 이른바 ‘3+3 발전 전략’이다.
한쪽만 키우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산업만 키워놓고 사람이 빠져나가는 구조도, 복지만 늘리고 일자리가 없는 구조도 피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성장과 생활을 동시에 끌어올려, 인구 회복과 지역경제 자립을 함께 노린다는 구상이다.
특징은 ‘연결’에 있다. 사업을 따로따로 쌓지 않고, 서로 물리게 했다. 농업은 관광과 이어지고, 산업은 교통과 맞물리며, 복지는 정주 정책과 연결된다. 한 분야가 움직이면, 다른 분야도 함께 움직이도록 설계한 구조다.
한마디로, 따로 노는 행정이 아니라 묶어 가는 행정이다. 고흥군이 지난 3년 동안 쌓아온 정책의 방향이 이 한 장의 전략도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교통망 확충, 생활권의 경계를 허물다
교통 분야에서는 국도 15호선 고흥읍∼봉래면 4차로 확장 사업이 가장 먼저 언급됐다. 말 그대로 ‘길부터 바꾸자’는 선택이다. 산업도, 관광도, 생활도 결국 길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총연장 31.7km, 사업비 6521억 원 규모다. 규모만 봐도 쉽게 흔들릴 사업은 아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고, 현재는 기본·실시설계 단계에 들어섰다. 책상 위에 머물던 계획이, 현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완공되면 고흥읍에서 봉래면까지 걸리던 1시간은 20분대로 줄어든다. 이동 시간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출퇴근 길이 바뀌고, 관광 동선이 바뀌고, 물류 흐름이 달라진다. 우주산업과 관광, 생활권을 한 줄로 꿰는 ‘뼈대 도로’에 가깝다.
여기에 광주∼고흥 고속도로, 우주선 철도 구상까지 더해지면 교통 지형은 한 번 더 흔들린다. 고흥을 ‘끝자락’이 아닌 ‘연결점’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길을 넓히는 사업이 아니라,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에 가깝다.
■ 우주산업, ‘구상’에서 ‘산업’으로
고흥 군정을 상징하는 분야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우주산업이다. 이제는 ‘가능성’이 아니라, ‘현장’에서 이야기되는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노스페이스 종합시험장 구축, 민간 발사체 시험 성공, 엔진연소 시험시설 조성까지. 하나둘 쌓인 성과들이 말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다. 우주산업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 이유다.
나로우주센터 인근에는 기술사업화센터와 연합캠퍼스, 연구지원시설도 차례로 들어서고 있다. 연구–실험–사업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지역 안에 묶어두겠다는 계산이다. ‘쏘고 끝나는 우주’가 아니라, ‘남는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방향이 분명하다.
군은 2031년까지 약 1조6000억 원을 투입해 국가산업단지와 민간 발사장, 연구·교육시설을 단계적으로 구축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고용 유발 2만 명, 생산 효과 4조9000억 원. 숫자만 놓고 보면 추상적이지만, 지역에는 일자리와 인구, 소비로 이어질 수 있는 변화의 크기다.
우주산업을 ‘특화 사업’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하다. 고흥의 산업 구조를 떠받칠 주력 축으로 키우겠다는 방향이, 이 대목에서 또렷하게 읽힌다.
■ 드론·UAM, 관광과 안전을 잇다
드론·UAM 분야는 고흥 군정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은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과 관광, 공공서비스를 한데 묶는 구조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녹동항과 고흥읍 일대에서 이어진 드론쇼는 그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3년간 누적 관람객 63만 명, 경제효과 550억 원. 밤하늘을 수놓은 불빛은 곧 지역경제로 이어졌다.
드론특별자유화구역 3회 연속 지정, 실증사업 확대, 규제 완화도 산업 기반을 단단하게 다졌다. 제도부터 현장까지, 한 단계씩 발판을 깔아온 셈이다.
활용 범위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응급환자 이송, 산불 감시, 해양 안전 관리, 드론택시 실증까지 영역이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보는 산업’에서 ‘쓰는 산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장기적으로는 MRO 산업단지와 훈련센터 구축도 추진된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인력과 기술이 남는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방향이다. 하늘에서 시작된 드론 정책이, 이제 지역의 또 다른 먹거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스마트농업, 청년과 기술을 묶다
농수산 분야의 중심에는 고흥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있다. 고흥 농정의 방향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현재까지 1000억 원 이상이 투입됐고, 실증단지에는 17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빅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재배 환경과 생산 정보를 축적하며, 현장은 점점 ‘데이터 농업’에 가까워지고 있다. 감에 의존하던 농사가, 수치와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3개 동(5.76㏊), 일반 농업인 임대시설 6구획(3.6㏊)도 운영 중이다. 매년 수료생 가운데 4팀 12명을 선발해 창업으로 연결한다. 교육으로 끝나지 않고, 현장과 소득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구조다.
이곳에서는 농사가 ‘버티는 일’이 아니라 ‘설계하는 일’로 바뀌고 있다. 온도와 습도, 생육 상태를 휴대전화로 관리하는 풍경도 이제 낯설지 않다.
농업을 생계형 산업에만 묶어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고흥군이 스마트팜을 통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농업을 기술 산업이자 청년 산업으로 다시 세우겠다는 방향이다.
■ 축제·수출·유통, 돈이 도는 구조 만들기
고흥유자축제와 우주항공축제는 이제 지역경제의 ‘고정 축’으로 자리 잡았다. 계절마다 한 번 반짝하는 행사가 아니라, 꾸준히 사람과 돈을 불러오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최근 3년 누적 방문객은 80만 명, 경제효과는 700억 원 이상. 행사장에 몰린 인파는 그대로 식당과 숙소, 시장과 상가로 흘러갔다. 축제가 곧 지역 상권의 숨통이 되는 구조다.
농수산물 수출 성과도 눈에 띈다. 3년 연속 1억 달러를 돌파했고, 11개국 24개 유통사와 1억1330만 달러 규모 협약도 체결했다. 고흥산 농수산물이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온라인몰 ‘고흥몰’ 누적 매출은 100억 원을 넘어섰고, 로컬푸드 직매장과 공동출하 시스템도 함께 구축됐다. 생산자는 판로 걱정을 덜고, 소비자는 믿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연결’이 있다. 생산에서 가공, 유통, 소비까지 끊기지 않게 이어 붙이는 구조다. 축제로 사람을 부르고, 수출로 길을 넓히고, 유통망으로 뿌리를 내리는 방식이다.
지역경제를 이벤트에 맡기지 않고, 시스템으로 돌리겠다는 고흥군의 방향이 이 대목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 복지·정주·안전, 생활을 받치는 행정
복지 분야에서는 노인 일자리 확대와 방문 주치의제, 대상포진 무료 예방접종, 장애인 종합복지센터 운영이 대표 성과로 꼽힌다. 병원·일자리·돌봄을 한데 묶어, 일상에서 체감되는 복지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청춘바우처, 대학생 등록금 지원, 청년 주거 지원, 공공임대주택 공급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청년부터 노년까지, 생애주기별로 끊기지 않게 이어 붙인 정책 설계다.
안전 분야에서도 투자 흐름은 이어진다. 도시침수 예방 사업, 재해위험지구 정비, 풍수해 대응 시설 확충 등이 대표적이다. 재난이 닥친 뒤 움직이는 행정이 아니라, 미리 막아두는 행정에 가깝다.
이런 사업들은 뉴스 제목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눈에 띄는 성과보다, 사고 없이 지나간 하루가 곧 결과다. 조용하지만, 생활을 떠받치는 기반이 이곳에 쌓이고 있다.
■ 문화·체육, 삶의 결을 바꾸다
문화 분야에서는 천경자 작가의 집 건립과 고흥문화재단 출범, 문화원 원사 건립이 차례로 추진됐다. 지역 문화의 ‘거점’을 하나씩 세워가는 과정이다. 전시와 공연, 교육과 창작이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흐름도 함께 담겼다.
여자만 갯벌 세계유산 확대 등재와 남양리산성 국가사적 지정 추진도 병행되고 있다. 자연과 역사 자원을 단순한 관광 소재가 아니라, 지역 정체성으로 키우려는 시도다.
체육 분야도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 야구장과 스포츠파크, 파크골프장, 풋살장 등이 권역별로 확충됐고, 전지훈련 유치와 생활체육 활성화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주말마다 운동장과 체육관에 불이 켜지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문화와 체육은 당장 숫자로 성과를 따지기 어려운 영역이다. 대신, 사람들의 하루를 바꾸고, 동네 분위기를 바꾸며, 삶의 결을 조금씩 바꿔간다. 고흥군이 이 분야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평가와 표창, 숫자로 남은 성과
성과는 외부 평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고흥군은 정부합동평가와 공약이행 평가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으며, 군정 전반의 안정성과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중앙정부와 평가기관이 동시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셈이다.
귀농귀촌과 농수산물 수출, 지역경제 분야에서도 꾸준히 성과를 쌓아왔다. 정책이 문서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장과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반복해서 확인됐다.
각종 기관 표창도 해마다 이어졌다. 행정혁신부터 재정운영, 복지, 농정, 관광, 안전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특정 사업만 잘한 행정이 아니라, 전반적인 체력이 뒷받침된 구조라는 의미다.
눈에 띄는 성과 하나보다, 쌓여온 평가의 흐름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고흥군정이 단기 성과보다 꾸준함과 완성도를 중시해 왔다는 점이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 성과는 공개됐고, 평가는 계속된다
1월 군민과의 대화에서 공개된 PPT 자료는 지난 3년 군정을 정리한 보고서이자, 앞으로의 방향을 담은 약속문서로 활용되고 있다.
우주항공복합도시 조성, 제2우주센터 구축, 사이언스 컴플렉스 조성, 드론 산업단지 조성 등 주요 사업들도 이제 실행 단계에 들어서며 구체적인 성과 창출 여부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군 관계자는 “각 분야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지역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행정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민과의 대화는 마무리됐지만, 당시 제시된 과제와 약속에 대한 점검은 계속된다. 공개된 자료와 현장의 변화가 얼마나 일치해 가는지가, 앞으로 고흥군정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