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이 막 기지개를 켜는 3월 30일, 고궁의 담장을 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을 나선다. 출발점은 경복궁, 도착지는 안동 도산서원이다. 약 700리(약 270km)에 이르는 이 여정은 단순한 도보 행사가 아니다. 450여 년 전, 한 선비가 선택했던 ‘물러남의 길’을 다시 걸으며 돌아보는 일이다. 그 주인공은 조선의 대학자 이황 선생, 그리고 이 길은 오늘날 ‘퇴계의 길’이라 불린다. 2026년 봄, 이 길이 2년 만에 다시 열렸다. 그것도 역대 최대 규모로 말이다.

‘떠남’이 아닌 ‘돌아감’의 의미
1569년(선조 2년) 퇴계 이황 선생이 69세의 노구를 이끌고 서울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걸었던 700리의 귀향 여정을 가졌다. 당시 퇴계 이황 선생의 귀향은 흔히 ‘관직을 버린 선택’이라 평가받지만, 그 본질은 조금 다르다. 단순한 은퇴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중앙’에서 ‘지역’으로 옮긴 결단이었다.

그가 향한 곳은 권력의 중심이 아닌, 배움과 공동체의 현장이었다.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한 교육, 강남농법을 통한 지역 경제, 그리고 선비 문화로 이어진 공동체 형성까지 퇴계는 지방에서 하나의 ‘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지금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이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저출생과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소멸이 현실이 된 지금, 우리는 다시 묻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삶은 가능한가?”
‘2026 퇴계 귀향길 재현 행사’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지방에서도 지속가능한 삶은 가능한가? 서울에서 안동까지 이어지는 14박 15일의 여정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사유의 과정’에 가깝다. 참가자들은 하루 평균 수십 킬로미터를 걸으며, 도시와 강, 옛길과 마을을 지난다.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연극이 펼쳐지고, 강연이 이어지며, 때로는 지역 주민과의 만남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길은 곧 무대가 되고, 걷는 행위는 곧 학습이 된다. 특히 각 구간마다 배치된 인문학 프로그램은 퇴계의 사상을 ‘지금의 언어’로 풀어낸다. 과거의 텍스트가 현재의 질문과 연결되는 순간이다.
“지난 과거가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이번 행사의 핵심 키워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익숙한 사자성어지만, 이 여정에서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미래를 설계할 단서를 찾는 일. 경복궁에서 출발해 봉은사, 양평과 여주, 충주와 제천, 단양과 영주를 지나 도산서원에 이르는 길은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력에서 삶으로, 속도에서 성찰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이 여정의 끝에서 참가자들이 마주하는 것은 ‘도착’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K-순례길이라는 가능성
무엇보다 이번 행사를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오히려 ‘브랜드의 시작점’으로 규정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일본의 구마노 고도와 같이 역사와 철학이 결합된 길이 세계인의 발걸음을 끌어들일 가능성이다. 퇴계의 길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 순례길’로 성장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 중심에는 퇴계가 추구했던 가치인 상호 존중, 배움, 그리고 공동체가 있다. 이는 국적을 넘어 공감될 수 있는 보편적 언어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발견하는 것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출발한다. 어떤 이는 역사에 끌리고, 어떤 이는 사색을 원하며, 또 다른 이는 단순히 ‘걷고 싶어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정이 깊어질수록, 그 이유는 조금씩 변할 것이다.

걷는 동안 생각은 정리되고, 타인과의 거리는 좁혀지며, 무심코 지나쳤던 질문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분명 깨닫게 된다. 이 길이 단순히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향한 여정이었다는 것을.
지금, 퇴계 선생이 걸었던 길을 돌아봐야할 이유
‘2026 퇴계의 길’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방식이다. 약 457년 전 한 선비가 걸었던 길은 오늘날 또 다른 질문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지방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살아날 것인가. 공동체는 해체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이 연결될 것인가. 그 답이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퇴계 이황 선생이 걸었던 이 길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가 걸음으로서 우리 자신을 뒤돌아봐야할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