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레전드] ‘킹’이라 불린 사나이 아놀드 파머

2024.04.30 17:01:59

드라마틱한 우승 기록…진정한 원톱 레전드

지이코노미 양하영 기자 | ‘킹’이라 불린 사나이 아놀드 파머(The King Arnold Palmer). 갤러리들은 아놀드를 보기 위해 골프장으로 모여들었다. 골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아니의 군대’ 라고 불렸던 그의 추종자들은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큰 규모였으며 언제까지나 ‘킹’ 아놀드 파머에게 충성을 바치는 군대였다. 그의 군대는 그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도 신음과 함성만으로 하나가 되어 울고 웃었다. 이처럼 아놀드는 골프를 메이저 스포츠로 만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킹은 오늘날까지도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인생의 전환점, 1954년 US 아마추어 챔피언
대학을 자퇴한 아놀드는 지인의 도움으로 페인트 세일즈맨 일을 시작했지만, 프로골퍼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골프의 세계로 돌아온다. 아놀드가 살아날 길을 US 아마추어와 같은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고 프로로 전향하는 방법뿐이었다.


1954년 8월,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이 디트로이트 컨트리클럽에서 개최되었다. 미국과 캐나
다의 이름 있는 아마추어 강자들이 모두 모였는데, 과거의 US 아마추어 챔피언들까지 모두 참가했다. 아놀드는 첫 매치부터 다섯 번째 매치까지 연승을 거둔 후 8강전에서는 캐나다의 아마추어 챔피언 돈 체리와 18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1홀 차이로 승리하여 준결승에 올랐다. 준결승전 상대는 예일 대학 골프팀의 주장이었던 37세의 에드 마이스터였는데, 36홀까지 승부를 내지 못하고 연장 세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은 아놀드가 승리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밥 스위니였다. 그는 43세의 뉴욕 은행가이고 백만장자이며 1937년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을 지낸 정상급 골퍼였다. 외모나 재력으로 볼 때 두 선수의 매치는 최고 상류층과 중하류층의 한판 싸움이었고 그 분위기를 느낀 관중들은 아놀드의 편이 되어 주었다.접전 끝에 마지막 티샷을 숲으로 보낸 스위니는 공을 찾지 못하고 아놀드에게 다가와서 축하의 악수를 청하며 새로운 US 아마추어 챔피언이 되었음을 확인해주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끌어안은 아놀드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이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전환점이었다고 훗날 아놀드는 회고했다.


프로가 된 아놀드 파머
1954년 11월 15일, 아놀드는 프로 전향을 선언하고 윌슨사로부터 연간 5,000달러를 받는 조
건으로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여자 친구 위니 윌저를 설득하여 버지니아주까지 달려가 결혼식도 없는 도둑 결혼을 했다.


퍼팅의 달인으로 불리던 조지 로우를 만나 평생 지켜야 할 퍼팅에 대한 교훈을 배운 것도 바로 이때였다. 아놀드는 조지에게 자기 퍼팅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고 그의 퍼팅 연습을 지켜보던 조지가 아놀드를 그린 구석으로 불러내어 말해주었다. “아놀드, 내 말을 명심하게. 자네 퍼팅에는 아무런 결점도 없어. 아주 훌륭한 기술이야. 앞으로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자네 방식대로 퍼팅하도록 하게.” 이 말은 아놀드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퍼팅 교육이었다.

 

조지의 말을 뇌리에 새긴 아놀드는 자기 퍼팅에 큰 자신감을 가졌고 자기만의 방식을 평생 지켰다. 그리고 그는 1955년 8월 캐나다 오픈에서 64-67-64-70, 합계 265타로 PGA 첫 우승을 기록한다. 첫 우승의 점수 265타의 기록은 아놀드 자신도 평생 깨지 못한 본인 최고기록이었다.

 

 

메이저 대회 7승
마스터스: 1958, 1960, 1962, 1964
US오픈: 1960
디오픈: 1961, 1962
프로 통산 95승 PGA 투어 62승
바든 트로피 4회 1961, 1962, 1964, 1967


1958년 마스터스 챔피언
프로골프 선수에게 메이저 대회의 우승이란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일반 PGA 대회에서 아무리 많은 우승을 하고 큰 상금을 벌더라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골프 역사 속에 기억되지 못한다. 잘 치는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구별하는 기준이다.


1958년 마스터스 대회. 12번 홀에 도착했을 때 아놀드는 벤추리에게 1타 차이로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이 홀에서 룰의 적용을 놓고 판정 시비가 벌어지게 된다. 아놀드가 티샷을 한 공이 깃발을 넘어 그린과 벙커 사이의 러프에 떨어지면서 그만 땅에 박혀버린 것이다. 이때 아놀드는 13번 홀로 이동하지 않고 심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공이 있던 원위치로 가서 다시 드롭하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파를 잡아낸 후 13번 홀로 갔다. 자칫하면 실격을 당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룰에 자신이 있었던 아놀드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마스터스의 룰 위원회는 즉시 회의를 열어 상황을 논의하였으며 15번 홀에 도착한 아놀드에게 12번 홀의 점수가 5가 아닌 3이라고 확인 해주었다. 합계 284타로 마친 아놀드는 1타 차 우승을 하며 결국 메이저 첫 승을 기록했다.


1960년 마스터스 우승
벤추리에게 1타를 뒤지고 있던 아놀드는 파5인 13번, 15번 홀에서 버디 기회를 놓치고 낙담하며 16번 홀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은 아놀드는 17번 홀에서 8번 아이언으로 세컨드샷을 날려 9m 거리에 붙였고, 오르막 퍼트의 라인을 신중히 살피면서 어떠한 경우라도 홀보다 짧아서는 안 된다고 굳게 다짐했다. 힘차게 퍼팅한 공은 오르막을 타고 구르며 속도가 떨어지면서 홀 앞에서 잠시 멈추는 듯했으나 곧 아니의 군대로부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공동선두가 된 것이다.

 

18번 홀의 드라이버 샷을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보낸 후 6번 아이언으로 깃발에서 1.5m에 붙인 아놀드는 응원단의 함성을 들으며 부모님과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18번 그린을 향해 걸어갔다. 아놀드는 그 버디 퍼트를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고 퍼팅한 공은 홀 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17번, 18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고, 대역전극을 벌인 아놀드의 두 번째 마스터스 우승은 전국의 골프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두 홀의 버디 퍼팅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아놀드의 대답은 너무나 평범했다. “나는 조지 로우가 말했던 대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움직이지 않도록 노력했을 뿐이다.”


대역전 드라마, 1960년 US오픈
둘째 라운드에서 71타를 친 아놀드는 선두 마이크 수책에게 8타나 뒤지면서 우승의 희망이 멀어져 갔다. 토요일 오전의 세 번째 라운드를 72타로 마친 아놀드는 선두 수책에게 7타 뒤진 15위가 되었고 벤 호건과 니클라우스가 3타 차 공동 5위로 선두를 위협했다.


마지막 라운드 1번 홀에서 아놀드는 또다시 드라이버로 그린을 공격했다. 세 라운드 동안 언제나 드라이버로 그린을 직접 공략하여 더블보기-파-보기를 기록했던 아놀드의 무모한 모습을 보며 갤러리는 술렁거렸고 기자들은 비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티샷을 지켜보던 아니의 군대로부터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공이 그린 위에 정확히 멈춘 것이다.
18번 홀을 파로 마무리한 아놀드는 자신의 예언대로 65타를 쳐서 280타로 클럽하우스 리더가 되었고, 자신의 모자를 벗어서 갤러리에게 던지는 세레모니로 환호에 보답했다. 그렇게 아놀드는 첫 번째 US오픈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1961년, 1962년 디오픈 챔피언
1961년 로얄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열린 디오픈에 두 번째로 참가한 아놀드는 전년도에 호흡을 맞췄던 캐디 팁 앤더슨을 다시 불러서 코스 공략 작전을 세웠다. 처음 두 라운드에서 70-73으로 선두를 1타 차로 따라가던 아놀드가 강한 비바람 때문에 취소될 뻔했던 3라운드에서 69타를 치며 데이 리스에게 1타 차 단독 선두가 되었다. 마지막 라운드 4홀을 남기고 리스가 버디 3개를 몰아치면서 추격해 왔지만, 결국 1타 차 우승을 확정하며 생애 첫 디오픈 챔피언이 되었다.


1962년의 디오픈에서 71-69타로 대회를 시작한 아놀드는 2타 차 선두가 되었다. 3라운드 67타, 4라운드 69타를 친 아놀드는 6타 차이로 우승했고, 합계 276타의 기록은 디오픈의 최저 타수 기록을 2타 경신한 좋은 기록이었다. 아놀드가 생애에 이번 대회보다 더 잘 친 적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1962년, 1964년 마스터스 우승
아놀드는 전년도 챔피언 게리 플레이어, 핀스터월트와 연장 18홀 승부를 벌였다. 세 선수가 연장을 치르는 것은 마스터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장전에서 9홀이 끝났을 때 게리 플레이어가 아놀드에 3타 앞섰고 핀스터월트는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10번 홀을 시작하면서 아놀드 특유의 마지막 몰아치기가 나왔다. 10번, 12번, 13번, 14번,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68타를 기록하며 71타에 그친 플레이어에게 역전 우승을 했다. 1958년부터 5년 동안 3번째 우승을 한 것이었다.


1964년 마스터스는 특별한 드라마 없이 아놀드가 일방적으로 리드를 지키며 우승을 거두었다. 마스터스 역사상 처음으로 네 번 우승을 한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서른네 살 아놀드의 일곱 번째 메이저 우승이며 그의 마지막 메이저 우승이었다. 


골프 선수의 최고 전성기를 첫 메이저 우승과 마지막 메이저 우승 사이의 기간이라고 간주할 때, 34세였던 1964년에 끝난 7년의 전성기는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메이저 대회 중에서 PGA 챔피언십을 우승하지 못하여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에 실패한 것도 위대한 챔피언의 한으로 남았다.

 

 

양하영 기자 golf003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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