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IPO 황금알’ 믿었는데…한국투자증권이 갇힌 덫

  • 등록 2025.06.25 07: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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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만 믿고 ‘올인’…돌아온 건 연 100억 이자 부담
SK온 투자 실패, IPO 주관 전략의 민낯 드러내
조직 흔들고 포트폴리오 왜곡…‘집중 리스크’ 현실화
수익보다 손실이 앞선 선제투자, 전략 재점검 필요

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상장을 믿고 투자했지만, 돌아온 건 이자 지옥이었다.” 한국투자증권(대표이사 사장 김성환)이 SK온 유상증자에 4000억 원을 베팅한 지 8개월. 기대했던 IPO 수익은커녕 연간 100억 원에 달하는 이자비용만 떠안게 됐다. 고위험 고수익을 노린 선제 투자가 상장 지연과 실적 부진이라는 벽에 가로막히면서, 한투증권의 ‘딜 메이커’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SK온에 투자한 시점은 2023년 말. SK온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확대를 위해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한투증권은 이 중 4000억 원을 투자했다. 특히 전체 금액의 절반 이상인 2500억 원을 자기자본으로 직접 투입했다. 시장 리스크를 회피한 다른 금융사들과 달리, 오롯이 내부 자금으로 승부를 건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그간 IPO 시장에서 성공 공식처럼 여겨졌다. 유망한 비상장 기업에 선제 투자하고, 상장 시 주관사 자리를 확보해 수수료와 자본차익을 동시에 거두는 방식이다. 실제로 한투증권은 이 구조로 여러 기업의 IPO를 성공시켜 왔다. 하지만 이번엔 전제가 무너졌다. ‘성공적인 상장’이라는 핵심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SK온이 시장의 기대보다 훨씬 느리게 상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상장 예비심사조차 들어가지 못했고, 약속한 IPO 시한인 2026년 내 상장 가능성마저 불투명하다. 게다가 올 1분기엔 2200억 원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재무 상태마저 불안정하다. 상장이 미뤄질수록 투자금 회수는 요원해지고, 이자 부담은 불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SK온의 자회사인 SK엔무브 딜마저 꼬였다. 상장 주관사로 참여했던 한투증권은, 중복상장 논란과 내부 합병 가능성 등 예상치 못한 변수에 발목이 잡혀 IPO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한투증권은 매년 100억 원에 가까운 이자를 지급하면서도 수익 실현은커녕 상장 일정조차 예측할 수 없는 ‘투자 갇힘’의 덫에 빠졌다.

 

조직 개편은 위기의 체감 온도를 보여준다. IPO를 전담하던 IB1본부 인력은 올해 초 55명에서 40명 수준으로 감축됐다. 이는 단순한 인원 조정이 아니다. IPO 시장의 강자로 불리던 한국투자증권이 전략적 후퇴를 선택했다는 방증이다.

 

더 심각한 건, SK온이 한투증권 비상장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0%에 달한다는 점이다. 한 기업에 올인한 리스크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니라, 자본 배분 전략의 구조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신호다.

 

이번 사태는 한투증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증권사들이 IPO를 ‘황금알’로 여기며 앞다퉈 뛰어든 지난 몇 년 간, 고위험 선제투자가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상장 지연이나 실적 악화 같은 변수에 대한 대응 체계는 부족했다. 구조적 리스크를 내부 자본으로 떠안고, 외부 분산 장치는 마련하지 않은 채 ‘묻지마 투자’로 일관한 셈이다.

 

이제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IPO 주관 확보를 위한 선제 투자가 여전히 유효한 전략일 수는 있지만, 그 전제는 위험 분산과 자본 효율성에 대한 냉정한 점검이다. 세컨더리 마켓을 활용한 지분 매각, ABS 등 자산유동화 장치 활용, 복수 기업에 소규모 투자 방식으로의 전환 등 리스크 헤지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PO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수익 모델을 다변화하는 일이다. M&A, 구조화 금융, 해외 딜 등 다변화된 IB수익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향후에도 비슷한 ‘이자 함정’에 빠질 위험은 반복될 수 있다.

 

한투증권은 이번 SK온 투자 실패를 ‘비용’이 아니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고위험 고수익 전략은 유효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구조적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내부 견제 시스템과 유연한 자본 운용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묻지마 선제투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상장이라는 종착점이 보이지 않을 때, 중요한 것은 수익보다 손실을 최소화할 줄 아는 유연한 전략 전환이다. 실패를 이자비용으로만 계산할 게 아니라, 그 실패를 통해 얼마나 견고한 투자 전략을 새로 구축할 수 있느냐가 진짜 수익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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