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조세정의는 선택이 아니다…‘불편한 개편’이 필요한 이유

  • 등록 2025.08.03 07: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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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고령화와 재정 한계, 더는 미룰 수 없는 구조 개편
'소득 있는 곳에 세금’…불편하지만 정당한 방향 제시
예고 없는 발표엔 반발, 그러나 개편 취지는 되짚어야
감추지 말고 설득하라, 조세 정의는 설명될 때 완성

세제 개편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급속한 고령화, 정체된 성장률, 불어나는 복지 수요 앞에서 재정은 이미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지금의 조세 구조를 손보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한국은 국가채무 급증과 세대 간 재정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정부가 발표한 이번 세제 개편안은 시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조적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첫 번째 시도다.

 

 

시장 충격은 있었다. 하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정부가 세제 개편안을 발표한 지난 1일, 코스피는 3.1% 급락하며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세가 쏟아졌다. 특히 법인세 인상과 금융소득 과세 강화, 고소득층 세제 혜택 축소가 민감하게 반응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는 증세 자체보다도 ‘예고 없는 발표’에서 비롯된 신뢰 불안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책은 시장 친화적일 필요는 없지만,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갖춰야 한다는 교훈은 분명히 남는다.

 

이번 개편은 ‘돈 없는 곳이 아니라, 돈 있는 곳’부터 세금을 걷겠다는 선언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되돌리고, 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초대기업의 조세 부담을 현실화했다. 고소득자 중심의 세제 혜택은 줄이고, 대신 근로·자녀 장려금을 확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라는 조세 정의의 원칙은 이번 개편안 전반에 관통되어 있다. 억울한 사람보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먼저 불편해져야 제도는 작동한다.

 

세제 개편이 필요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세 수입은 이미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복지 지출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국가채무는 올해 1,200조 원을 넘을 전망이고,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 본격화는 의료·연금 지출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세제는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근본적 손질을 피했다. 역대 정부가 미뤄온 ‘불편한 질문’에 이번 정부가 비로소 답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적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었다. 법인세 인상은 항상 ‘투자 위축’이라는 비판과 마주한다. 금융투자 과세는 ‘개미 투자자 옥죄기’라는 프레임으로 공격받는다. 그러나 세계 주요국 대부분은 이미 자본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한국처럼 자산과 소득 간 과세 불균형이 큰 국가일수록, 금융소득 과세는 세제 정의 실현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 조세 저항을 줄이기 위해 ‘조용히 증세’하는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정부는 ‘구조 개편’을 택했다. 비판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시장은 당장은 반발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교한 설득과 후속 조치에 반응할 것이다. 조세 정책은 단기 시황이 아닌 국가 지속 가능성의 문제다. 이번 세제 개편이 정교하지 않다고 해서 방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정부가 이번 개편을 시작으로 조세 시스템 전반을 손보려 한다면, 시장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숫자가 아니라 철학이 정책을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시험대다.

 

이제 필요한 건 더 많은 설명과 더 깊은 공감이다. 정부는 시장과 국민을 상대로 조세 개편의 이유와 방향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고통 분담의 정당성을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중산층과 서민에게 직접 체감되는 장려금 확대와 역진성 완화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 증세를 감추지 말고, 드러낸 채 설득하라. 개편의 정당성은 설명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지금, 조세 개편의 명분과 실효를 동시에 요구받고 있다. 과거처럼 ‘쉬운 해법’만 반복하다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정부의 이번 개편이 불편했더라도, 지금의 선택이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부채보다 낫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제 정치가 답해야 할 차례다. ‘누구에게 세금을 더 걷을 것인가’가 아니라, ‘왜 지금 이 개편이 필요한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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