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한국콜마 경영권 분쟁, ‘가문의 유산’이 거버넌스를 파괴할 때

  • 등록 2025.08.06 05: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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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싸움, 기업 미래 위협
침묵하는 주주, 무력한 이사회
창업자 공로, 분쟁 앞에 흔들
상장사 경영은 공공 책임이다

상장사는 가문의 사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콜마그룹에서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은 이 기본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 오너 일가의 감정과 계약이 이사회와 주총을 덮고, 지배구조는 가족 간 갈등의 인질이 됐다. 기업이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 그 본질적 질문 앞에서 한국콜마는 침묵하고 있다.

 

 

2019년 윤동한 회장은 장남 윤상현 부회장에게 콜마홀딩스 지분을 부담부 증여 방식으로 넘겼다. 실질적인 경영 승계로 해석됐다. 하지만 5년 뒤, 윤 회장은 돌연 지분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유는 ‘딸 윤여원 대표와의 공동 경영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결국 이 분쟁의 본질은 가족 간 신뢰와 감정이라는 사적 기준에 기반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콜마가 더 이상 가족만의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콜마홀딩스를 중심으로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상장기업이며, 소액주주, 기관, 고객, 협력사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그럼에도 오너 일가는 경영권을 마치 가문의 유산처럼 다루고 있다. 기업의 정당성과 거버넌스는 철저히 배제된 채, 내부 권력 다툼만이 전면에 부상했다.

 

윤동한 회장은 한국콜마를 국내 화장품 ODM 산업의 선구자로 이끈 인물이다. 수십 년간 기업의 기술력을 축적하고, 한국콜마라는 브랜드를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시킨 그의 경영 성과는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품질과 신뢰를 중심에 둔 기업 철학은 지금의 한국콜마를 있게 한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는 단순한 ‘오너’가 아닌, 한국콜마의 창업자이자 산업 생태계 전체를 고민해온 책임 있는 리더였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번 경영권 분쟁이 그러한 공로마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 간 약속과 신뢰 문제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창업자가 일궈온 브랜드 가치와 시장 신뢰에 상처를 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의 명분이 아닌, 오랜 시간 축적된 기업의 평판과 고객 신뢰가 지금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기업의 공공성은 창업자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성과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계승하자는 요구다. 윤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더 큰 존중을 받기 위해서라도, 지금 필요한 것은 가족 내부의 해묵은 갈등을 넘어서 한국콜마 전체의 명예와 신뢰를 지키는 리더십이다.

 

갈등의 전장은 콜마비앤에이치로 확산됐다. 윤 부회장은 임시 주총을 통해 이사회 재편을 시도했고, 윤여원 대표 측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법원이 주총 개최를 허가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됐다. 그러나 이 모든 전개는 사업 전략이나 기업 가치와 무관하다. 그저 누가 지분을 더 가졌고, 누가 이사회를 장악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사회는 무기력하다. 독립성과 감시 기능은 실종됐고, 가족 간 줄서기에 따라 분열됐다. 기업 거버넌스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진 셈이다. 그 사이 주주는 말할 권리도, 행동할 수단도 없이 손실만 감당하고 있다. 장기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같은 불확실성이 투자 회피 요인일 뿐 아니라, 브랜드 신뢰도에도 치명타다.

 

고객 피해도 결코 작지 않다. 한국콜마는 국내외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ODM 기업이다. 글로벌 파트너와의 신뢰는 품질과 납기뿐 아니라 경영 안정성에서도 비롯된다. 그런데도 오너 일가가 고소와 반박을 주고받는 상황은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친다. 고객은 떠난 뒤에야 말없이 이탈 사실을 알릴 뿐이다.

 

이 사태를 단순한 ‘집안싸움’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오너리스크를 넘어, 기업 지배구조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간 갈등이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구조는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윤 회장과 윤 부회장 중 누가 옳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회사가 왜 지금껏 가문의 룰에 따라 운영돼 왔는지, 그 시스템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

 

기업을 지배한다는 것은 소유를 뜻하지 않는다. 지분율만으로 경영을 독점할 수 없으며, 지분을 넘겼다고 해서 경영에 간섭할 권한도 없다. 소유와 책임의 균형, 공공의 감시와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구조라면, 그것은 이미 시장이 외면할 기업이다.

 

한국콜마는 지금 가문과 기업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내부에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외부의 감시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단이 아니라 구조 개편이다. 독립된 이사회, 공정한 의사결정, 주주의 권리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단지 가문 몰락의 기록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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