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잃은 IPO, 시장은 외면한다. ‘상장’은 자본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다. 기업은 시장을 향해 재무 상태만이 아니라, 조직 문화와 경영의 철학까지 평가받는다. 그런데 IPO를 앞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2위 빗썸이 보여주는 모습은 정반대다.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리고도 되돌아온 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사전 예고 없는 해고, 기준 없는 평가, 불투명한 소통 속에서 직원들은 “회사가 믿음을 져버렸다”고 말한다. 숫자는 올라갔지만, 내부 신뢰는 무너졌다. 기업공개는 커녕, 지금 빗썸이 보여주는 건 ‘불신의 구조조정’에 가깝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2위 빗썸이 IPO(기업공개)를 앞두고 전체 직원의 약 10%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내부에서는 “실적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저성과자 낙인을 찍고 내보냈다”는 성토가 쏟아진다. 특히 이재원 대표(10억 원), 이상준 사장(20억 원) 등 경영진이 고액의 성과급을 수령한 시점과 맞물려 “성과는 직원이 만들고 보상은 임원이 가져간다”는 냉소가 회사 안팎에 번지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이 실적 악화 때문이 아니라 상장을 위한 재무 구조 개선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수위는 더욱 높다. 영업이익이 늘었는데도 인건비를 줄이려 했다는 의혹, 여기에 “10월에 한 차례 더 감원한다더라”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로 내부는 혼란스럽다.
문제는 구조조정의 기준과 과정조차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내부 직원들에 따르면 해고 대상은 명확한 평가 기준 없이 정해졌다. 팀장이 준 평가를 실장이 뒤집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일부 직원은 사전 통보 없이 사내 시스템 계정이 차단되는 방식으로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았다. 연봉에 포함돼 있던 복지 혜택도 일방적으로 축소된다는 주장까지 더해지며 직원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빗썸 측은 본지 질의에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인력 재배치와 직무 전환 교육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새로운 역할 수행이 어려운 일부 구성원에 대해서는 충분한 협의와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것이며,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아닌 사직을 희망하는 직원에 한해 퇴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사직서를 직원이 자발적으로 제출한 것인지, 구조조정 통보 이후 선택지를 제한한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와 무성의한 설명이 신뢰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상장 기업에게 숫자만큼 중요한 건 거버넌스와 구성원과의 신뢰다. IPO는 단순한 실적 공개가 아니다. 기업은 시장에 자신이 지속 가능하고 책임 있는 조직임을 증명해야 한다. 내부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외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시장 전문가들도 지적한다. 수익성 확보를 위한 구조조정은 선택일 수 있으나, 구성원과의 신뢰를 파괴하는 방식은 오히려 IPO 과정에서 리스크로 작용한다. 특히 가상자산 업계는 여전히 불신과 의혹이 교차하는 민감한 시장이다. 상장 과정에서의 ‘기업 신뢰도’는 단순한 수치를 뛰어넘는 핵심 평가 기준이다.
지금의 빗썸은 어떤가. △불투명한 인사 시스템 △고액 성과급을 받은 경영진 △일방적인 조직 개편 통보 등 이 모든 요소가 거버넌스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문제는 결국 브랜드 가치와 장기 신뢰에 타격을 준다.
상장은 끝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어야 한다. 지금의 빗썸은 실적의 외피 아래 불투명한 내부 운영과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채 상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성과급은 위로 집중되고, 해고 기준은 아래로 흐릿하며, 설명은 생략됐다. 이대로 IPO가 가능할까. 숫자만으로는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 가상자산 거래소라는 업의 특수성은 더욱 그러하다. 신뢰가 없이는 아무리 화려한 실적도 평가받기 어렵다.
IPO를 진정으로 성공시키려면, 지금부터라도 내부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해고의 절차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복원하며 △책임 경영을 위한 거버넌스 개편을 통해 ‘시장에 책임지는 기업’의 기초를 다시 쌓아야 한다.
상장은 단순한 ‘입장’이 아니다. 시장과의 ‘관계’다. 신뢰 없이 강행한 상장은 잠깐의 관심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내부를 납득시키지 못한 기업은 외부도 납득시킬 수 없다. 결국 신뢰 없는 IPO는, 시장도 외면한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