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핵심은 바로 ‘기혈순환’이다. 쉽게 말해 ‘피를 잘 돌게 하라’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사람의 몸은 정신기혈(精神氣血)로 이루어져 있다. 한의학에서는 정신기혈과 오장육부, 조직, 기관들의 조화가 깨지면 병이 온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신과 기혈 중 무엇이 먼저일까? 바로 기와 혈이다. 한의학은 철저히 유물론적 사고에 입각한 학문이다. 몸이 존재한 뒤에 정신이 존재하고 기운과 피가 잘 돌아야 활동도 가능하다.
35년간 환자를 진료하며 내가 확실하게 깨달은 점이 2가지 있다. 첫 번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몸은 우리를 지키려 한다는 점이다. 모든 증상은 우리의 몸이 살고자 하는 현상이다. 만일 혈압이 오른다면 그것은 내 몸이 나를 살리기 위해 나름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두 번째로 깨달은 점은 우리 몸을 지키는 핵심이 바로 ‘피’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 또한 피를 만들기 위해서다. 피가 온몸 구석구석을 잘 돌면 탈이 날 일도 없다.
혈액순환은 우리 몸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활동이다. 피가 위장에 가면 위장이 움직여 음식을 소화시키고, 췌장에 가면 췌장이 움직이면서 인슐린을 분비한다. 뇌에 피가 돌아야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으며, 발에 피가 가야 걷고 뛸 수 있다. 성기도 마찬가지다.
피가 돌지 않으면 발기가 안 돼 종족을 보존할 수 없다. 사람이 움직여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눈동자도 굴려야 하고 손도 움직여야 하고 숨 쉬는 일도 쉬지 않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활동을 위한 피가 다 따로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군사력이 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까지 군대를 둘 수는 없다. 요지에만 군대를 두고 필요에 따라 움직이듯 우리의 몸도 똑같다.
예를 들어 위장이 비어 있다면 그곳으로 피가 갈 필요는 없다. 음식이 들어오면 그때 피를 보내 소화운동을 시작하면 된다. 이처럼 적재적소에 피가 가게끔 명령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니, 바로 ‘신경’이다.
물론 우리는 이 신경에 대해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자율신경 시스템이란 것이 알아서 우리 몸 곳곳에 필요할 때마다 피를 보내기 때문이다. 자율신경은 몸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에 반응하면서 명령하는 방식을 통해 자동으로 피를 순환시킨다. 이러한 자율신경시스템이 잘 유지되는 사람은 건강할 수밖에 없다.
혈액순환이란 심장에서 나온 피가 동맥과 모세혈관, 정맥을 거쳐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혈액은 미세한 혈관 하나하나까지 돌면서 모든 세포에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받아 폐로 간다. 그리고 폐를 지나면서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내보낸 뒤 다시 산소를 받아 심장으로 돌아간다. 즉, 피가 돈다는 것은 몸이 좋은 것을 흡수하고 나쁜 것은 배출하는 일이다.
임상에서는 ‘부항불패’라는 말이 있다. 부항 치료를 자주 하는 한의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업계 사람들만 아는 일종의 은어다. 부항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항으로 어혈을 빼주면 나쁜 피가 빠져나가 자연히 건강에 도움이 된다. 어혈이 있던 곳의 통증과 질환이 완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장의 기능도 좋아진다.
어혈은 원활한 혈액순환을 가로막는 이물질이라 할 수 있다. 피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많으면 심장은 더 세게 펌프질을 해야 한다. 이는 곧 혈압 상승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은 곧 심장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다. 고혈압 완화에 부항요법을 많이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홍석
경희대학교 한의대학, 동대학원 졸
본케어한의원 원장
구조의학연구회 회장
‘기적의 골타 요법’ 저서 출간
‘나는 몸신이다’, ‘엄지의 제왕’, ‘살림 9단 만물상’ 등 TV 방송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