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원전 수출의 성과인가, 50년짜리 족쇄인가

  • 등록 2025.08.21 10: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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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원전 수주의 이면, 불공정 계약이 남긴 과제
윤석열 정부의 졸속 합의,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
산업 자율성과 국익 수호 전략의 필요성

한국이 체코 원전 수주라는 대외적 성과를 거머쥐었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불공정 계약이라는 무거운 족쇄가 드리워져 있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수출을 국정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성급하게 성과를 좇은 결과, 한국 원전 산업은 앞으로 수십 년간 ‘기술 종속’과 ‘이익 상납’ 구조에 묶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이 졸속 합의의 후폭풍을 이제 막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는 점이다.

 

 

지난 1월, 한수원과 한전은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분쟁을 종결하는 합의에 서명했다. 겉으로는 원전 수출 분쟁의 매듭이었지만, 내용은 충격적이다. 앞으로 한국이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원전 1기당 1조 원이 넘는 물품 및 용역 계약과 로열티를 50년간 웨스팅하우스에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차세대 원전인 SMR 개발 시에도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됐다. 사실상 미래 원전 시장의 주도권을 스스로 내어주는 셈이다.

 

게다가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 과정에서 시장 배분도 이뤄졌다. 북미와 EU, 일본, 우크라이나 등 유망 시장은 웨스팅하우스 몫으로 넘어갔다. 한수원은 체코를 따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이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은 제한적이다. 뒤늦게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와 합작법인(JV)을 세워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는 애초에 불리한 협상 구조를 뒤집기보다는 그 틀 안에서 ‘끼워 달라’는 모양새에 가깝다.

 

정부와 한수원은 “체코 수주라는 큰 성과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체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소송과 진정서로 발목을 잡아왔다. 하지만 산업계 전문가들은 “단기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장기 국익을 내던진 소탐대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전 수출이 단순히 ‘수주 건수’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와 미래 기술 경쟁력을 좌우하는 사안임을 감안할 때, 이번 합의는 미래 세대까지 부담을 떠넘긴 결정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히 ‘나쁜 계약을 떠안았다’는 차원이 아니다. 왜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불리한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협상력 부재였는지, 국제 원전 시장의 구조적 불리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권의 단기 치적 욕심 때문이었는지 원인을 밝혀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원전 산업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불공정 계약을 단순히 ‘과거의 굴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과오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기술 독점에 대응하기 위한 독자 기술 개발, 새로운 시장 개척, 협상 구조를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다자 협력 전략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익을 단기 성과보다 우선하는 산업 전략의 확립이다.

 

체코 원전 수주가 과연 누구를 위한 승리였는지는 이제 분명해졌다. 윤석열 정부의 성급한 선택은 50년짜리 족쇄가 되어 돌아왔고, 그 무게는 현 정부가 감당해야 할 숙제가 됐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현재의 성찰을 통해 새 길을 찾는다. 이재명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새로운 산업 전략을 제시한다면, 한국 원전은 다시 한 번 자율성과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성과의 껍데기’를 넘어 ‘국익의 실질’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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