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대표이사 박상준)가 또다시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겉으로는 상장폐지 위기 해소와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이번 유증의 본질은 사실상 경영권 매각을 위한 수순이자,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시간벌기 전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X가 이를 공개적으로 ‘새 주인 맞이’라고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장 신뢰를 고려한 포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이 행보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STX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상장 유지다. 한국거래소는 회계처리 위반 문제를 근거로 STX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지정했고, 내년 6월까지 개선기간을 부여했다. 그때까지 주식 매매는 정지된다. 유상증자는 이런 상황에서 거래소와 투자자에게 “우리는 개선안을 실행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편이다. 문제는 자금 수혈만으로는 기업 체력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기간 적자와 부채 급증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외면한 채 단순히 유증만 반복하는 것은 구조적 해법이 될 수 없다.
더 큰 의미는 경영권 매각에 있다. STX는 새 주주의 적격성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곧 새 주인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현재 최대주주 APC머큐리의 지분율은 30%대까지 추락해 사실상 경영권 방어가 불가능한 상태다. 이번 유증이 성사되면 지분 구조 재편은 불가피하고, 이는 곧 경영권 이전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은 경영권 매각이라는 본질을 감추는 외피에 불과하다.
APC머큐리는 “상폐 리스크가 해소될 때까지 책임경영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안심을 위한 수사적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분을 단계적으로 줄여온 전력만 봐도 향후 행보를 예상할 수 있다. 유증 이후 새 투자자가 들어오면 APC머큐리는 자연스럽게 비중을 축소하고 퇴장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리려는 ‘방패막이’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유증이 과거에도 반복됐다는 점이다. STX는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총 1000억 원을 조달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누적 1100억 원이 넘는 적자와 500%를 초과하는 부채비율이었다. 적자가 누적되자 부채는 불어났고, 부채가 불어나자 또다시 유증으로 자금을 끌어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가치만 희석됐을 뿐, 기업 체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번 유증 역시 같은 궤적을 따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겉으로 내세운 ‘상장폐지 리스크 해소’라는 목표는 본질을 가리기 위한 포장일 뿐이다. 실제 속내는 경영권 매각 준비와 당장의 시간벌기에 더 가깝다. 기업 정상화의 핵심은 단순히 자금을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마련하며, 신성장 동력을 뚜렷하게 제시해야 한다. STX가 이를 외면한 채 또다시 유증에만 기대려 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시장은 다시 한 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고, 위기의 악순환은 끊기지 않을 것이다.
결국 STX의 유증 카드는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로는 상장폐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개선안처럼 포장했지만, 속으로는 경영권 매각과 출구 전략이라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다. 이는 투자자에게는 불안, 시장에는 불신을 불러일으킨다. 진정한 회생의 길은 자금이 아니라 체질에서 출발한다. STX가 새 주인을 맞이하든, 현재 체제를 유지하든, 지금의 구조적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유증과 또 다른 위기를 맞을 뿐이다. 반복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미래도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