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아이고, 아부지! 이 일을 어쩌믄 좋다요?”
아들의 목소리가 바다 위로 찢겨나갔다. 그 울음은 갯바람을 타고 피비린내 밴 파도 위로 스며든다.
화륜선은 검은 산처럼 밀려왔다. 입을 쩍 벌린 쇠빛 이빨을 번득이며 전마선을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기세다.
아버지는 손등의 굵은 핏줄 아래로 번져 내리는 피를 내려다보며 이를 앙다문다.
“내 살이 찢겨도, 이 그물은 끊어야 헌다. 난 뒈져도 내 새낀 살려야 헌다.”
고물 널빤지 틈새에 낀 그물이 노좆에 칭칭 감겨 식칼로도 좀처럼 끊기지 않는다. 화륜선의 뱃머리가 날을 세운 도끼처럼 전마선 뱃전 허리를 찍어내릴 듯하다.
“이놈의 그물, 당산나무 동아줄처럼 칭칭 감겼네 그랴! 아이고, 씨부랄!”
갯바람에 단련된 팔뚝의 힘을 한순간에 쏟아 식칼을 내리꽂지만, 그물은 끝내 제 살이 찢어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화륜선의 검은 그림자가 전마선 위를 덮쳤다. 아버지의 뱃속 깊은 데서 눌러둔 울음보가 터진다.
“이 징한 놈의 바다, 끝내 날 잡어먹을라고 환장을 혔구만. 날 잡어먹드라도 지발 내 새낀 살려도라!”
아들은 돛대 너머 이물 쪽 뱃전에서 그물을 바다로 내던진다. 힐끔힐끔 고물 쪽 노좆 앞에서 웅크리고 엉킨 그물을 풀고 끊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의 팔과 다리는 미세하게 떨린다.
화륜선의 뱃머리가 전마선을 삼킬 듯 달려드는 순간, 아들의 손이 굳어 멈췄다. 눈동자가 크게 열렸다. 화륜선 뱃머리가 전마선 뱃전 왼쪽 허리를 작살낼 찰나였다.
“아이고, 인자 됐다, 아이고 인자 됐어-!…”
아버지의 탄성이 터졌다. 노좆에 감긴 그물을 단칼에 끊은 것이다. 그는 잽싸게 고물의 그물 더미를 헤치고 노를 꺼내 노좆에 박는다.
곧장 노질이 시작됐다. 선체가 기울고 돛대가 비틀리며 삐걱거렸으나 전마선은 화륜선의 짙은 그림자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
아들은 주저앉아 우측 뱃전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고물에서 노질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토한다.
그러나 인당수의 물결을 넘어가는 전마선 뒤로 화륜선의 검은 연기가 여전히 뒤쫓듯 따라붙었다.
“후유-!…”
아버지가 내쉰 안도의 한숨이 고물 뒤편 바다로 흩어졌다. 필사적인 노질 끝에 전마선은 저승의 문턱에서 돌아 나왔다. 아들은 굽혔던 무릎을 펴고 몸을 바로 세운다.
“아니 근디, 저건 또 뭣여?…”
화륜선이 일으킨 검은 물결이 전마선 꽁무니를 뒤쫓아 온다.
“아부지-! 땜매 뒤쪽서 큰 농올이 열로 오요! 조심허요, 조심혀야 쓰것소-!”
높이 솟은 파도의 고비가 전마선 우측 뱃전을 덮쳤다. 그 물마루가 전마선을 한 입에 삼켜버렸다.
“아이코!…으아악-!…”
노질하던 아버지가 고물 뱃전에 이마를 찧으며 인당수로 떨어졌다. 아들도 바다에 빠졌지만 다친 데는 없다. 음력 팔월의 인당수는 살얼음처럼 차갑다.
“아부지이~!…아이고 아부지이~!…”
차가운 물결이 아들의 사지를 휘감는다. 그가 바닷물에 반쯤 잠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뒤집힌 전마선의 등짝 너머에도 아버지는 없다.
한참 뒤 인당수 위로 아버지의 손과 머리가 불쑥 떠올랐다. 찢긴 이마와 터진 손등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부지이~! 지가 금방 갈텡게 쫌만 버티시오-!”
아들은 필사적으로 외친다. 하지만 인당수의 세찬 물살은 부자 사이를 갈라놓듯 멀어지게 했다.
“아부지이~!…아부지이~!”
아들의 외침이 하늘을 울렸지만, 화륜선의 엔진 소리가 그 울음을 집어삼켰다. 아버지는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아부지이~! 아이고 아부지이~!”
살기 위해 허우적대던 아버지의 손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 구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인당수의 물결은 차갑고, 세차고, 무정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