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대하소설 '파시'] 갑신년 칠산바다의 불구름 4

  • 등록 2025.11.14 16:44:53
크게보기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바다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아버지는 벌써 물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아버지가 생애 마지막 힘으로 헤친 물살이 허공을 가르며 남긴 파도 한 줄기뿐이다.

 

“아부지이!~…아이고 아부지!…”

 

 

아들의 절규는 갯바람에 찢겨 인당수 파도 끝에서 허옇게 부서졌다. 우르릉대는 물결을 헤치며 아들은 아버지가 마지막 숨결을 토한 자리를 둘러본다. 저승의 바다엔 죽은 핏빛만 고여 있다.

 

‘인자 나라도 살아야 될랑갑다!…임수돈 너무 멀고, 어 쩌그 바우가 있는디, 씨발, 근디 쩌까지 언지 가냐?…’

 

칠성판을 등에 진 아들은 임수도에서 격포 쪽으로 뻗어 나온 바위를 향해 오른팔을 휘젓기 시작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화륜선 이물에서 고물까지의 거리로 잰다면 서너 배가 넘는 거리다.

 

인당수의 물마루는 높다. 파도에 몸을 맡긴 뒤 물마루 꼭대기에서 고비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 길 낭떠러지 끝에 엎드린 것 같다. 자칫하다가 떨어진다면 염라대왕을 만날 성 싶다.

 

물살은 매우 빠르다. 썰물과 밀물이 바뀌는 시점이라 힘이 빠진 팔다리를 잠시라도 젓지 못하면 금세 몸이 뒤로 떠간다.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의 물살이 아까 아버지를 그랬던 것처럼 아들의 팔다리도 붙든다.

 

‘오매!~…아이고 오매에 날 좀 살려주소~…’

 

아들은 속가슴으로 식도 어머니를 찾는다. 어린 동생들과 약혼녀의 얼굴도 떠오른다.

 

‘어찌끼 허든지 살어야 헌다. 인자 아부지도 안 지시는디, 나까지 여그서 죽으믄 울 오매는 오래 못 살 것이고, 동생들은 그지가 된다.…살어야 헌다. 나까지 죽으믄 참말로 큰일 난다.…’

 

하늘의 무너지는 듯한 슬픔이 아들의 가슴속에서 뒤번진다. 방금 전 아버지가 물귀신이 되었는데, 맏이인 자신까지 인당수에 수장된다면 집안은 폭삭 망할 것이라는 절망이 엄습하자 아들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아 씨부랄!~…”

 

한이 덩어리째 치밀어 올라 장탄식이 터지자, 아들은 팔과 다리를 물살 속으로 더 깊숙이 내질렀다. 물마루를 몇 번이나 넘어가며 바라본 바위가 이승의 마지막 울타리처럼 흔들리며 다가왔다.

 

‘아부지이, 지발 나 좀 살려주요...아부지, 지이발 족족 날 좀 살려 주시오!…’

 

이렇게 속으로 빌고 비는 아들의 얼굴을 사납게 휘몰아치는 인당수 물결이 후려쳤다. 흰 거품은 코와 입을 삼킬 듯 밀려와 아들의 숨통까지 죄었다.

 

심장까지 차가운 물 속에 담근 터라 아들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졌다. 눈빛은 다시 흐려졌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섰다는 걸 직감한 터라 한에 젖은 청춘의 눈물이 바닷물과 섞였다.

 

손끝은 감각을 잃고, 팔과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럼에도 아들은 생존을 위해 칠성판을 진 등을 수면 아래에 두고 배를 하늘로 내민 채 송장헤엄을 친다. 생존의 본능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마지막 혼을 붙든다.

 

노을빛이 갈기처럼 붉게 퍼친 하늘에 불구름이 꼬리를 감췄다. 황혼녘 검은 물결은 죽음의 그림자를 머금은 짐승처럼 으득거린다.

 

송장헤엄을 치는 아들의 콧구멍으로 파도가 들이친다. 입안으로 쏟아진 바닷물이 목젖 아래로 넘어간다.

 

가슴이 돌처럼 굳고 배가 안에서부터 죄어들며 울컥거림이 치밀었다. 기침이 먼저 터져야 했으나 물이 폐로 밀려들어 숨은 불붙은 천처럼 끓는다.

 

정신이 뚝 끊어질 듯 멀어지던 순간, 아들의 손끝에 바위의 거친 살결이 닿았다. 그는 손톱이 뜯기고 손바닥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 바위를 붙들었다.

 

붉은 피가 바닷물 속으로 가느다란 실처럼 흘러들었다. 그 피는 노을빛을 받아 마치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처럼 흔들렸다.

 

아들은 이를 악물었다. 바위에서 손이 떨어지면 저승이다. 발끝이 미끄러져도 이승에서는 끝장이다. 그의 어깨가 바위에 부딪혀 뼈가 울리고, 배가 굴껍질에 닿자 창자가 안에서부터 울부짖었다.

 

마침내 아들은 바위 위로 기어올랐다. 바위 위에 쓰러지자 숨이 목까지 차올랐고 가슴은 터질 듯 요동쳤다. 입술에는 피 맛과 바닷물의 쓴맛이 엉겨 살아남은 자의 죄책처럼 씁쓸하게 번졌다.

 

노을은 아직도 하늘에 검게 걸려 있었다. 석양은 피처럼 번졌고, 어둠은 그 뒤를 따라 인당수를 검은 장막으로 덮기 시작했다.

 

아들의 눈가에 눈물 한 줄이 뚝 떨어졌다. 그 눈물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인지, 살아남은 자의 죄책인지, 방금 죽음을 넘어선 공포인지 그 자신도 분간하지 못했다.

 

아들은 바위 위에 웅크려 혼미한 정신을 겨우 붙들었다. 그러나 바다는 결코 그에게 한숨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바위 아래로 서서히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첫 번째 큰 파도가 바위 턱을 치며 올라왔다. 물보라가 아들의 무릎까지 튀겨 올랐다. 그의 손가락은 바위틈을 놓지 못한 채 떨렸다.

 

찢긴 손바닥에서는 아직도 피가 실 같은 줄기로 떨어졌다. 젖은 옷은 몸에 들러붙고, 뼈마디마다 통증이 울렸다. 혼미는 밀물처럼 다시 밀려와 눈꺼풀이 꺼져 내릴 듯했으나 바다가 먼저 그를 깨웠다.

 

두 번째 파도가 핏빛 노을을 뒤집어쓰고 몰려왔다. 포말이 하얗게 부서져 아들의 얼굴 위에 흩어졌다. 저 멀리서 거대한 물기둥 하나가 짐승처럼 몸집을 부풀리며 이쪽으로 달려든다.

 

“아 씨부랄!…아 씨발, 용왕님이 오늘 참말로 너무 허는고만!…”

 

아들은 떨리는 손으로 바위를 더 깊이 움켜쥐었다. 손가락의 살이 벗겨지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파도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검은 어둠이 물결 위에서 꿈틀거렸고, 부서지는 포말은 살아 있는 괴물의 이빨처럼 번득였다.

 

인당수는 아들을 한 번 더 삼키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듯했다. 그의 몸은 점점 굳어갔다. 손발은 돌처럼 식어갔고, 석양의 마지막 붉은 결이 그의 젖은 머리칼과 눈동자를 휘어감았다. (계속)

 

서주원 기자 arikore@naver.com
Copyright @G.ECONOMY(지이코노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서초구 언남5길 8(양재동, 설빌딩) 2층 | 대표전화 : 02-417-0030 | 팩스 : 02-417-9965 지이코노미(주) G.ECONOMY / 골프가이드 | 등록번호 : 서울, 아52989 서울, 아52559 | 등록(발행)일 : 2020-04-03 | 발행인·편집인 : 강영자, 회장 : 이성용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 방제일) G.ECONOMY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2 G.ECONOMY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lf0030@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