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멀리 적벽강 대숲 어름에서 앙얼과 꺼꾸리는 숨을 죽인 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두 사람의 눈동자는 핏방울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꺼꾸리가 이를 악문 채 속을 씹듯 중얼거린다.
“앙얼아! 암만혀도 뒈졌것지? 저 화륜선 농올에 엎어진 땐매 뱃놈들은 죄다 인당수 물귀신이 되었것지?”
앙얼은 끝내 대꾸가 없다. 말문을 질끈 닫은 채, 비안도 앞바다로 향하는 화륜선의 꽁무니를 사납게 노려본다. 그의 눈빛에는 울분이 뒤엉켜 가슴속이 한순간 먹먹히 막혀드는 듯하다.
“저 놈으 화륜선이 왜국밴지, 청국밴지, 양놈들밴지는 몰리것다만 앰헌 조선 뱃놈들이 깨팔러 갔능갑다. 지 명도 다 채우들 못허고 저승으로 갔는게벼.…아이고, 씨부랄! 인자 칠산바다도 볼짱 다 봤는갑다. 아 저런 덩치도 크고, 발동기도 단 외국 배들이 휘젓고 댕기는디 어찌끼 쬐깐 땐매나 풍선을 타고 나가서 괴기를 잡어 먹고 살것어?”
“야 이 미련헌 놈아, 여그 칠산바다만 볼짱 다 본 것이 아녀. 저 화륜선이 아까 으디서 올라왔냐?”
“저저 법성포 앞바다서 올라왔지.”
“그 전이는 어디 앞바다를 휘젓었것냐?”
“글씨 흑산도, 목포, 또 으디냐, 안마도…오옳치 제주도 앞바다도 휘저었것고만.”
“왜놈들은 으디 앞바다를 지나 여까장 왔것냐?”
“난 무식혀서 거까진 모르것는디…아 그려, 부산, 여수, 진도, 완도 앞바달 지나 왔을랑가?”
“암만 암만, 분명히 그런디를 거쳐서 칠산바다로 들어왔을 턴디…저길 잘 봐라. 화륜선이 시방 얼로 올라가냐? 쩌그 고군산을 지나서 충청도로, 갱기도로, 인천으로…그너머 황해도, 팽안도 앞바다도 갈 턴디, 그러믄 말여, 이 나라 조선 앞바다를 구석구석 저놈들이 휘젓고 댕긴다는 얘긴디…씨부랄, 인자 죄다 끝장이 났는게벼. 조선 바다도, 조선 육지도!”
앙얼과 꺼꾸리가 탄식을 늘어놓을 때, 하늘을 불태울 듯 시뻘겋던 노을은 어둠에 갉아먹혀 그 빛을 잃었다. 갈바람과 검푸른 물결이 뒤엉킨 인당수는 잠시 숨을 고르듯 임수도 앞 바위에 걸터앉은 아들의 양쪽 발목을 다시 움켜쥔다.
“흐윽 흐으윽! 아부지이!~…아이고 오매에!~”
아들은 흐느낀다. 차가운 인당수 아래로 가라앉은 아버지의 모습과 식도에서 남편과 아들의 귀항을 기다릴 어머니의 얼굴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의 눈물과 신음이 한데 엉킨다.
“아이고 씨발!…”
검고 차가운 파도가 아들의 무릎 아래 바위 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튀어 오른 포말이 그의 얼굴을 때린다. 인당수는 그의 다리를 쥐어뜯듯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며 바위 틈에 매달린다.
“달래야!~… 이쁜아!~…”
아들은 식도에 있는 여동생과 약혼녀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인다.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목구멍에서 치솟지만 인당수의 물기는 벌써 그의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어둠이 수평선을 삼켜 사방을 둘러봐도 고깃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
“에잇 씨부랄!…”
아들은 이를 악물고 바위에 매달린다. 손가락 끝에서 힘이 스르르 빠질 때마다 인당수의 물살은 그의 등목을 타고 여울 같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온몸을 휘감는다.
젖은 옷은 그의 목덜미에 달라붙어 숨통을 조여 왔다. 짠 갯비린내가 코와 입을 한꺼번에 밀고 들어왔다. 목구멍 깊숙한 데서 쓰디쓴 위액이 치밀어 올랐다. 정신은 바닷물에 질식된 듯 흔들리며 당장 골아 떨어질 지경이다.
“크흑!…”
짧은 숨이 턱 하고 터져 나왔다. 파도가 허리를 후려치며 몸 전체를 밀어냈다. 포말과 어둠이 뒤엉킨 물덩이는 그물을 낚아채듯 그의 두 다리를 사정없이 끌어당긴다.
살갗은 사포에 문질린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아들은 이를 악물고 손가락을 다시 바위틈 깊숙이 박아 넣는다. 터져 나온 피는 바닷물에 실려 검붉은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번진다.
“아 씨발… 앞으로 우덜은 어찌기 살어야 헌다냐…”
어둠이 임수도와 인당수를 덮치자 앙얼은 적벽강 절벽의 대숲을 헤치고 나오며 낮게 중얼댄다.
“어찌끼 살긴 새끼야…집이서 키우는 개새끼보다 못허고, 돼지나 소보다 못헌 우리 팔자…사는 날까지 배 곯지 않고 등 따숩게 살믄 되는 것이지.”
꺼꾸리는 끓어오른 가래를 대숲에 탁 내뱉고, 비안도 뒤편으로 꽁무니를 감추는 화륜선을 노려본다. 앙얼도 그 옆에서 고군산 너머로 사라지는 그 검은 괴물의 꽁무니를 따라 눈길을 던진다.
그 화륜선의 뱃전에서 갈라져 나온 긴 포말은 인당수로 흩어지며 한줄기 물길을 길게 남겼다. 그 물길은 곧장 제물포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