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미국 정부가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수단을 보조금에서 직접 지분 투자로 전환하며 민간 기업에 대한 개입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고려아연이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한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미국 제련소(U.S. Smelter)’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해당 사업의 설비 투자(Capex) 규모는 66억 달러에 달하며, 운전자금과 금융 비용을 포함하면 총 투자액은 약 74억 달러(약 11조 원)에 이른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의 산업 정책 변화와 맞물려 있다. 미국은 최근 6개월간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US스틸, 인텔, MP머터리얼즈, 웨스팅하우스 등 핵심 산업 기업의 지분과 신주인수권을 확보했다.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전략산업 전반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력 확보에 나섰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 역시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핵심광물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과 복합 금속 생산 역량을 갖춘 고려아연이 최적의 협력 대상으로 낙점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아연을 비롯한 주요 광물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아연 수입 의존도는 70%를 넘고, 안티모니·비스무스·갈륨 등 전략 광물은 사실상 전량을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다. 자원 무기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공급망 취약성은 미국의 구조적 리스크로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공급망 재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백악관에서는 한국과 일본, 유럽 및 중동 주요국 당국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반도체·핵심광물 공급망 강화를 주제로 한 다자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복합 제련소’ 운영 경험이 이번 협력의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고려아연은 현재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광물 60종 가운데 12종을 생산하고 있으며, 추가 설비 투자를 통해 생산 품목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내 신규 제련소 역시 한국 온산 제련소 모델을 기반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려아연 측은 이번 미국 투자가 장기적인 사업 확장과 수익성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내 핵심광물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환경 규제와 노후 설비 문제로 공급 기반은 오히려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신규 제련소 건설은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해외 투자 차원을 넘어, 한미 양국이 경제안보 차원에서 협력하는 상징적 사례로 볼 수 있다”며 “미국의 공급망 전략과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맞물린 대표적인 모델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