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ㅣ전기차 수요 정체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산업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체결했던 대형 공급 계약이 잇달아 무산되고, 수년간 준비해온 신사업 계획마저 접히는 등 ‘전기차 올인’ 전략의 후폭풍이 본격화되고 있다. 배터리 기업들은 합작 구조를 정리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새로운 탈출구로 삼고 있지만, 이마저도 경쟁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전기차 캐즘 장기화… 투자·계약 연쇄 붕괴
2차전지 업계에 따르면 SKC는 지난해 말 차세대 양극재 사업 진출 계획을 공식 철회했다. 2021년 미래 성장동력으로 양극재와 음극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4년 만이다. 회사 측은 전기차 수요 둔화가 예상보다 길어지며 산업 전반의 투자 규모가 축소된 점을 이유로 들었다.
양극재 전문기업 엘앤에프도 직격탄을 맞았다. 테슬라와 체결했던 약 3조8000억 원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계약 금액은 상징적인 수준으로 축소됐다. 사이버트럭용 배터리 공급을 전제로 했던 계약이 시제품 공급에 그치며 사업성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글로벌 전기차 정책 기조 변화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기차 세액공제 축소가 시작됐고, 유럽연합 역시 내연기관 퇴출 로드맵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배터리 수요 위축으로 직결되며 셀 제조사는 물론 소재 업체까지 연쇄 타격을 입히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최근 한 달 새 대형 계약 두 건이 연이어 해지됐다. 미국 완성차 업체와의 수조 원대 공급 계약이 철회됐고, 현지 배터리팩 기업과의 계약도 백지화되면서 수주 잔고가 단기간에 크게 줄었다. 전기차 사업 축소를 선언한 고객사들의 전략 수정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합작 구조 정리하고 ESS로 방향 전환
배터리 기업들은 생존 전략 수정에 나섰다. 한때 경쟁력을 상징했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 공장 모델은 가동률 저하와 자금 부담으로 부담 요인이 됐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합작 법인을 정리하거나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수요를 대체할 새로운 성장 축으로는 ESS가 부상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화 수요가 맞물리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ESS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미국이 중국산 ESS 제품에 고율 관세를 적용할 예정이어서 국내 기업들에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ESS 역시 글로벌 업체들이 대거 진입한 레드오션 시장이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만큼, 전기차 배터리 이상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이후를 대비해 ESS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향후 2~3년이 배터리 산업 구조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