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정의 지식의 맛] 알뜰신잡(15) 청첩장 앞에서 나를 돌아 보다

  • 등록 2026.03.10 12: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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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계절보다 먼저 청첩장이 도착한다. 요즘은 결혼 시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모바일 청첩장이 일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봄이 되면 유독 더 많이 받게 된다. 새잎이 돋고 꽃이 피는 계절 이어서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인생의 시작을 봄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

 

청첩장을 받으면 대개 반응은 비슷하다. “우리 딸이, 우리 아들이 결혼합니다”라는 그 짧은 문구 한마디나, “잘 지내느냐 우리 집에 경사가 있어서~”로 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경우 고민 없이 축하의 말을 보낸다. 세상에 자녀들이 결혼을 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진심이든 관습이든, 폭죽이 터지는 이모티콘 하나쯤은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그런데 얼마 전 받은 한 장의 청첩장은 마음을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청첩장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 카톡이 반년 전의 기억을 함께 데려왔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업무상 꼭 필요했던 서류 하나를 요청한 적이 있다. 무리한 부탁도, 사실과 다른 내용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못 해준다”라는 짧은 말 한마디였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꼭 필요한 서류인지라 계속해서 부탁해야 하는 나 자신의 처지에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럼 나는 상사에게 직접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높은 분과 이야기하세요”라는 카톡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 일은 애써 기억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마디 말도 없이 청첩장이 도착했다. 받은 것이 있으니, 사람의 도리상 축의금은 해야 한다는 생각, 결혼은 축하받아야 하는 일이라는 상식이지만, 차마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이 서로 부딪혀 잠시나마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 문득, 문제의 중심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이 불편한 이유는 상대의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그 일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질문 앞에서 고전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는 그 이유를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작은 마음은 그 무례함을 당한 것에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왜 이 장면에서 불편해졌을까”라고 묻는 순간, 시선은 조용히 안쪽으로 향한다. 그 청첩장은 타인의 무례함을 증명하는 종이가 아니라,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을 비치는 거울이 되고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넓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겨왔지만, 막상 이런 상황 앞에서는 그 깊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이해되지 않았고,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생각과 솔직한 감정 사이에서 마음은 머뭇거렸다. 결국 나는 그 청첩장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택하기로 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말은 하지 않되,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는 선택이었다.

 

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오래된 감정도 함께 꺼내 놓는다. 그날의 청첩장은 누군가의 인생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식이었고, 나에게는 아직 키워 가야 할 마음의 그릇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쩌면 인생은 이런 불편한 순간들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넓혀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강윤정

마중물교육파트너스 대표

힐링 인문학 강의

대인갈등 소통강의

농협주부대학‧공무원연금공단 외래강사

한국은행 사회공헌 강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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