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계절보다 먼저 청첩장이 도착한다. 요즘은 결혼 시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모바일 청첩장이 일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봄이 되면 유독 더 많이 받게 된다. 새잎이 돋고 꽃이 피는 계절 이어서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인생의 시작을 봄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
청첩장을 받으면 대개 반응은 비슷하다. “우리 딸이, 우리 아들이 결혼합니다”라는 그 짧은 문구 한마디나, “잘 지내느냐 우리 집에 경사가 있어서~”로 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경우 고민 없이 축하의 말을 보낸다. 세상에 자녀들이 결혼을 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진심이든 관습이든, 폭죽이 터지는 이모티콘 하나쯤은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그런데 얼마 전 받은 한 장의 청첩장은 마음을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청첩장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 카톡이 반년 전의 기억을 함께 데려왔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업무상 꼭 필요했던 서류 하나를 요청한 적이 있다. 무리한 부탁도, 사실과 다른 내용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못 해준다”라는 짧은 말 한마디였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꼭 필요한 서류인지라 계속해서 부탁해야 하는 나 자신의 처지에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럼 나는 상사에게 직접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높은 분과 이야기하세요”라는 카톡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 일은 애써 기억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마디 말도 없이 청첩장이 도착했다. 받은 것이 있으니, 사람의 도리상 축의금은 해야 한다는 생각, 결혼은 축하받아야 하는 일이라는 상식이지만, 차마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이 서로 부딪혀 잠시나마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 문득, 문제의 중심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이 불편한 이유는 상대의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그 일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질문 앞에서 고전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군자구제기 소인구제인(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는 그 이유를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작은 마음은 그 무례함을 당한 것에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왜 이 장면에서 불편해졌을까”라고 묻는 순간, 시선은 조용히 안쪽으로 향한다. 그 청첩장은 타인의 무례함을 증명하는 종이가 아니라,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을 비치는 거울이 되고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넓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겨왔지만, 막상 이런 상황 앞에서는 그 깊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이해되지 않았고,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생각과 솔직한 감정 사이에서 마음은 머뭇거렸다. 결국 나는 그 청첩장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택하기로 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말은 하지 않되,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는 선택이었다.
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오래된 감정도 함께 꺼내 놓는다. 그날의 청첩장은 누군가의 인생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식이었고, 나에게는 아직 키워 가야 할 마음의 그릇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쩌면 인생은 이런 불편한 순간들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넓혀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강윤정
마중물교육파트너스 대표
평생교육 석사
시니어 TV 특강강사
인문학 맛있는 고전 진행자
웰라이프 및 웰다잉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