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반도체가 국내 주식 부자 순위를 다시 그렸다. 상승장의 과실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고, 상위권에 더욱 강하게 집중됐다.
금융정보업체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100대 주식 부자의 지분 평가액은 215조원을 넘어섰다. 직전 분기 대비 30조원 이상 불어난 규모다. 특히 이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상위권에 몰리면서 자산 쏠림 현상이 한층 또렷해졌다.
상위 10명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이들의 지분 평가액은 약 112조원으로 늘어나며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상위 10명이 차지하는 비중도 52% 수준까지 확대됐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을 웃도는 자산 증가 속도는 ‘슈퍼리치 중심 시장’이라는 구조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었다. 주요 반도체 종목이 강세를 이어가면서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총수 일가의 자산이 빠르게 불어났다. 그 결과 1분기 주식 부자 상위 1~4위는 모두 삼성가 인물들이 차지했다.
1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으로, 지분 평가액은 30조원을 웃돌았다. 뒤이어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나란히 상위권을 형성했다. 계열사 주가 상승이 개인 자산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같은 반도체 호황 속에서도 결과는 엇갈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순위가 소폭 상승했지만 상위 10위권에는 들지 못했다. SK하이닉스를 직접 보유하지 않고 지주사를 통해 간접 지분을 가진 구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주사 체제의 한계도 드러났다. 핵심 계열사 가치 상승이 총수 개인 자산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 데다, 시장에서 적용되는 ‘지주사 할인’까지 더해지며 자산 증가 폭이 제한됐다. 같은 산업 호황 속에서도 총수 간 격차가 벌어진 배경이다.
순위 변동도 적지 않았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지분 가치가 줄며 5위로 밀려났다. 반면 반도체 장비 업황 개선의 수혜를 입은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7위까지 올라섰다.
특히 한미반도체 일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곽영미·곽영아·곽명신·곽혜신 등 가족 구성원들이 일제히 30계단 안팎 상승하며 순위 지형에 변화를 일으켰다. 반도체 투자 확대가 장비 기업까지 확산된 결과다.
반대로 코스닥 기반 부자군은 존재감이 약해졌다. 주요 바이오 기업 경영진들의 순위가 일제히 하락하며 자산 재편의 흐름에서 밀려난 모습이다.
결국 이번 순위 변화는 하나의 메시지를 남긴다. 산업보다 중요한 것은 지분 구조다. 직접 보유냐, 간접 보유냐에 따라 같은 호황에서도 자산의 크기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