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OK금융그룹이 상상인저축은행과 페퍼저축은행을 동시에 품는다. 자산 기준 업계 1위 등극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금융당국의 부실 정리 과제를 떠안는 ‘정책형 구조조정 파트너’로의 전환이라는 이중 과제가 담긴 인수다. 이번 딜은 단순한 저축은행간 인수합병(M&A)을 넘어, 규제 예외 적용과 구조조정 압박이라는 비정상적 요소가 결합된 사례로 저축은행 산업 전반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인수는 금융당국이 지난 3월 발표한 ‘저축은행 역할 제고방안’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연체율 급등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에 직면한 일부 저축은행에 대해 경영개선 조치를 예고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표했다. 상상인저축은행과 페퍼저축은행은 그 1순위 대상이었다.
실제 상상인저축은행은 고정이하여신비율이 25%에 달하고, 연체율도 20%를 넘는 등 자산 건전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페퍼저축은행 역시 기업대출 편중으로 PF 부실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금융당국은 해당 저축은행들에 경영개선 권고·요구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사실상 OK금융에 인수 구도를 설계했다. 5월 이뤄진 OK저축은행 현장검사는 일종의 ‘메시지’로 해석됐다. 구조조정 성과가 국정감사 전까지 가시화돼야 한다는 배경에서, OK금융이 ‘구원투수’를 자처한 셈이다.
이번 인수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저축은행법상 원칙적으로 금지된 ‘동일 권역 복수 편입’이 허용됐다는 점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OK저축은행이 상상인과 페퍼를 함께 보유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법령 예외를 적용한 전례 없는 조치다.
금융당국은 “공익 목적의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특정 대기업 계열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 우회 혹은 특혜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제 저축은행 M&A도 정부가 설계하고, 민간이 책임지는 형태가 정례화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물론 OK금융도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인수로 OK금융의 저축은행 자산은 18조7,000억 원 수준으로, SBI저축은행(13조4,000억 원)을 제치고 단숨에 업계 1위에 오르게 된다. OK저축은행이 가계금융 중심이라면, 상상인과 페퍼는 기업금융 특화 저축은행으로, 영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라는 전략적 이점도 존재한다.
게다가 OK금융은 흡수합병 대신 별도 법인 유지(형제회사 체계)를 선택함으로써, 시스템 통합 부담을 줄이고 인수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떠안게 될 PF 부실자산, 고용 승계와 처우 조정 문제, 향후 리스크 관리 부담 등을 고려하면, 이번 인수는 단기간 수익보다 장기적 전략과 정책적 이해관계에 더 무게가 실린 판단이다.
OK금융의 상상인·페퍼 동시 인수는 단순한 기업 전략이나 성장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저축은행 업계의 구조조정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리는 ‘서막’이자, 민간 금융회사가 정책적 부담까지 감당해야 하는 시대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규제의 유연함이 때론 선례를 만들고, 민간의 수용이 시스템 리스크 해소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반복된다면, 금융시장에서 ‘정책 책임과 시장 원칙 사이의 경계’는 점점 흐려질 수 있다.
지금 OK금융이 던진 승부수는, 단지 업계 1위 자리를 넘은 문제다. 그 속뜻은 바로 민간 금융사의 구조조정 파트너화, 그리고 정책 유도형 금융재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