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서울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비위 의혹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은평구청 정비사업추진과 소속 공무원들이 조합원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조합과 시공사인 롯데건설 측과 사전에 내용을 공유하고, 민원에 대한 입장을 함께 조율한 정황이 복수의 증언과 문서, 그리고 공무원의 직접 발언으로 드러났다. 이는 행정기관의 중립성과 신뢰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사안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공무원법, 민원처리법 등 복수의 법령에 저촉될 소지가 크다.

갈현1구역 조합원들에 따르면, 구청의 민원 담당 공무원은 민원 내용에 대해 조합 및 시공사 측과 사전에 논의하고, 이들의 입장을 반영한 듯한 답변을 반복해왔다. 실제 구청 담당 부서의 책임자는 조합원들에게 “롯데건설과 상의했고, 입찰보증금 300억 원은 결국 나중에 돌려줘야 하는 돈이라 이자만 보전받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민원 처리와 관련한 사전 논의는 물론, 결과까지도 시공사 편에 맞춰졌다는 점에서 행정 중립성을 명백히 훼손한 행위다.
공무원의 이 같은 행위는 △도정법 제45조 제1항 위반 행위를 묵인·방조했을 가능성 △민원처리법 제7조에 따른 민원정보 비밀유지 의무 위반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 의무), 제60조(비밀 엄수), 제63조(품위 유지) 위반 등 다수의 법률 저촉이 우려된다. 민원인의 동의 없이 민원 내용을 제3자인 시공사에 전달하고, 이를 조율한 뒤 행정에 반영한 행위는 단순한 업무 편의 차원을 넘어선 공권력 남용과 공직기강 훼손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2021년 10월 관리처분총회에서 통과된 수의계약 건이다. 총 13개 안건 중, 제12호 안건에서는 이주관리·수용재결·지장물 철거 등의 공사를 롯데건설과 수의계약으로 체결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도정법 제29조 제1항의 ‘경쟁입찰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이다. 당시 은평구청은 해당 총회 승인 여부를 7개월간 유보했으나, 2022년 3월, 지방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돌연 승인을 강행했다. 조합원들은 이 시점에서 특정 정치인과 롯데건설, 전 조합장 유국형 간의 유착이 있었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롯데건설이 지난해 8월 조합에 대여해준 1,750억 원 상환을 요구하고, 조합이 무이자로 납입하기로 한 입찰보증금 300억 원까지 조기 상환한 행위는 명백히 도정법을 위반한 사안이다. 해당 보증금은 총회에서 정한 방식대로 상환되어야 하며, 이를 무시한 상환은 도정법 제45조 제1항 제2호를 위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합원들이 은평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구청은 시공사 측 의견을 받아들여 "이자 보전으로 갈음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불법을 묵인하고 정당화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정황들은 은평구청이 조합과 롯데건설의 비위에 눈을 감고 오히려 보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들게 한다. 실제로 유국형 전 조합장은 위와 같은 절차적 불법에 대한 도정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은평구청은 당시 해당 사안에 대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고, 그 사이 롯데건설은 175억 원 상당의 수의계약 공사를 무리 없이 마치고 전액을 수령했다.
이 모든 상황은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강조한 공직자 기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통령은 지난 6월 24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공직자의 작은 사인 하나가 누군가에겐 죽고 사는 문제이며, 그것이 더 쌓이면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는 일이 된다”며 공직자의 책임과 도덕성을 강하게 주문했다. 이처럼 중앙정부 차원에서 공직자 기강 확립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이 시공사와 결탁해 행정을 운영하는 모습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안이다.
지이코노미는 이번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은평구청 정비사업추진과에 전화, 이메일, 그리고 방문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끝내 응답하지 않았고, 전화 연결도 이뤄지지 않았다. 담당자 책상에 직접 메모까지 남겼지만, 현재까지 구청 측의 공식 입장은 묵묵부답이다.
갈현1구역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닌, 명백한 법률 위반과 공권력의 특정 기업 편향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공적 사안이다. 이 문제는 은평구청의 내부 감사에 맡겨둘 단계가 아니다. 대통령실과 감사원이 직접 나서, 공무원 행정의 공정성과 합법성을 철저히 점검하고 위법 사실에 대해서는 강력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필요 시 검찰 수사로 확대해 구조적 유착 여부를 밝히고, 공직 사회 전반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지이코노미는 다음 편인 [갈현1구역 재개발 비리 추적④] "롯데건설, ‘수의계약’으로 가는 숨겨진 트랙 레코드" 보도에서 갈현1구역 수의계약의 내막과 정비사업 전반의 비정상적인 계약 구조를 단독으로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