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회장 임종룡)가 마침내 ‘분기 순이익 1조 원’을 돌파했다. 숫자만 보면 그룹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 성과의 주연은 금융 영업력도, 혁신 전략도 아니다. 이름조차 낯선 ‘염가매수차익’ 회계 장부 속의 착시가 만들어낸 일회성 이벤트다.
이번 실적의 핵심은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헐값에 인수하면서 생긴 회계상 이익이다. 겉으로는 ‘인수 효과’처럼 포장됐지만, 실상은 ‘한 번뿐인 회계 이벤트’에 불과하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본업 둔화를 가린 종이 위의 착시”라고 입을 모은다. 숫자는 커졌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텅 비어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의 3분기 순이익은 1조2444억 원. 시장의 예상치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러나 이 중 5810억 원이 염가매수차익이다. 세후 기준으로 약 3600억 원, 실질 이익 기여분은 그뿐이다. 이를 제외하면 본업의 이익은 뚜렷한 둔화세다.
증권가 역시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의 주된 요인은 인수 관련 일회성 회계효과”라며 “은행·비은행 부문의 영업 흐름은 둔화 중”이라고 진단했다. 즉, 이번 실적은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장부를 다시 써서’ 만든 것이다.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를 내세운 인수였지만, 정작 편입된 보험사들은 ‘기여자’보다는 ‘부담자’가 됐다. 우리은행의 3분기 순이익은 7356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감소했다. 은행 본업의 수익성은 명백히 약화되고 있다.
동양생명은 분기 순이익 274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24.2% 감소, 누적 기준으로는 55% 급감했다. 예실차 악화, 투자손익 축소, 보유채권 평가손실이 동시에 터졌다. 두 보험사를 합쳐도 분기 이익 기여는 500억 원대에 불과하다. ‘보험사 인수 효과’는커녕, 수익성 하락의 출발점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그룹은 이를 “시너지”라고 포장했다. 회계상의 착시를 ‘경영성과’로 둔갑시키는 금융권의 오래된 버릇이 또다시 반복된 셈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실적은 임종룡 회장의 연임용 이벤트”라는 해석이 공공연하다. 염가매수차익은 국제회계기준(IFRS)상 인수 시점 단 한 번만 반영된다. 재현 불가능한 일회성 이익이다. 문제는 이 일회성 이익이 ‘경영 성과’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부터는 그 효과가 사라지고, 보험사 손해율 악화와 비이자이익 축소가 겹치면 ‘실적 방어’가 아니라 ‘실적 붕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익의 질(quality of earnings)을 따지지 않고 규모만 자랑하는 건 위험한 신호”라며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없는 실적은 내년에 반드시 되돌림을 맞는다”고 꼬집었다.
우리금융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보험 자회사 편입에도 CET1 비율이 12.92%로 개선됐다”며 재무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본비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경영 체질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자본관리의 보수성과 이익의 지속성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염가매수차익은 회계평가의 결과일 뿐, 실제 영업성과와는 무관하다. ‘종이 위의 건전성’을 진짜 실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금융의 이번 실적은 단기적으로는 화려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안하다. 염가매수차익이라는 ‘한 번의 회계 이벤트’가 끝나면 남는 것은 본업 둔화와 보험사 리스크뿐이다. 이익의 질을 묻는 질문 앞에서, 우리금융의 ‘1조 클럽’은 답을 내놓지 못한다.
결국 임종룡 회장의 리더십을 평가할 잣대는 ‘얼마나 포장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지속 가능한 수익을 만들었는가’다. 숫자는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지만, 시장은 냉정하다. 일회성 회계 이익으로 쌓은 ‘종이 성벽’은 언젠가 무너진다. 지금의 1조 원이 내년의 역기저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염가매수차익으로 만든 숫자놀음이 진짜 경영성과냐”는 질문이 시장에 맴돈다.
이제 묻는다. 그 1조 원은 실력인가, 아니면 연임을 위한 착시 쇼인가. 답은 내년 실적이 대신 말해줄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