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려 했던 선택이 결국 나를 만들었다. 돌아보면 인생은 늘 그런 방식으로 흘러왔다. 벗어나기 위해 택한 길이 오히려 나를 가장 깊숙한 자리로 밀어 넣는다.
1987년, 대학 1학년 때 나는 해병대를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시 지원했고 또 떨어졌다. 그렇게 두 해 동안 네 번을 연달아 탈락했다. 지금 와서 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였다.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질풍노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있었을 뿐이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선택을 가로막고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방위를 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흥은 취약지구였고, 지원하지 않으면 대부분 방위로 배치됐다. 문제는 방위라는 제도가 주는 현실적 무게보다, 그 위에 덧씌워진 시선이었다. 버스를 타면 군복을 입은 방위병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던 말이 있었다. “사람은 없고 방위들만 가득하네.” 그 한마디는 설명보다 강력했다. 그 시절 방위는 편함 대신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자리였고, 나는 그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해병대에서는 그 자존심을 훨씬 더 많이 내려놓게 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봄방학 무렵, 방위 생활을 하던 친구들과 금탑사에 다녀오는 길에 사고가 났고, 친구 셋은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다치지 않았다. 한 달 뒤 퇴원한 친구를 보러 병원에 갔을 때, 그곳에서 방위부대 중대장을 마주쳤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었고, 아무런 주저 없이 방위병 친구의 가슴에 날아차기를 꽂았다. 친구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 장면은 단순한 폭력 이상의 것이었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피했고, 곧바로 몸을 틀어 맞설 자세를 취했다. “군인이 민간인에게 손대도 됩니까.”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택은 그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이미 내부에서 정리된 결론에 가까웠다. 짧은 정적 끝에 그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주변에서는 “저놈 방위 오면 죽는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웃어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은 내 안에서 가볍게 흘러가지 않았다. 밤이 되면 그 장면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피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한 번 더 맞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은 깊어지고 잠은 얕아졌다. 그것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수 없다는 신호였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이 하나로 정리됐다. 방위는 안 된다. 그것은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도망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도망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해병대라고 판단했다. 다섯 번째 지원이었다. 이번에는 기다리는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밀어 넣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떨어질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공중전화 앞에 섰고, 병무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대학생이고 신체등급 1급이며 특별한 결격 사유도 없는데 왜 네 번이나 탈락했는지 모르겠다고,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고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상대는 차분하게 주민번호를 물었다. 그게 전부였다.
일주일 뒤, 해병대 합격통지서가 도착했다. 그 전화 때문이었는지, 단순히 순서가 돌아온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시점부터 나는 전혀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포항 해병훈련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름보다 먼저 사라지는 개인, 이유 없이 반복되는 훈련, 잠을 재우지 않는 일정, 숨소리까지 통제되는 긴장, 그리고 지속되는 배고픔과 피로. 그 모든 시간은 이미 나를 향해 오고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 기뻤다. 네 번의 탈락 끝에 붙잡은 기회였고, 무엇보다 이전의 삶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컸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기쁨은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은 이후의 시간이 채워 넣는 몫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른 채로 걷는다. 모르기 때문에 버티고, 모르기 때문에 기뻐한다. 그리고 결국, 피하려고 선택했던 길 위에서 전혀 다른 삶을 마주하게 된다.
그 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끝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안다. 그때 피하려 했던 선택이 결국 나를 만들었고, 그때의 무지가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