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무대는 달라도, 궤적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정치에서 한덕수가 걸어온 길과 금융에서 임종룡이 걸어온 길은 서로 다른 영역이었을 뿐, 권력에 접근하고 유지하는 방식에서는 유사한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두 인물을 함께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덕수 전 총리는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요직을 거쳤다. 김대중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과 경제부총리를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총리를 맡았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정책·경제 영역의 핵심 인사로 활동하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국무총리로 복귀했다. 정권은 수차례 교체됐지만 그의 위치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이는 ‘안정적 관리자’, ‘무난한 관료’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긴 경력의 말미에 남은 인상은 달랐다. 위기의 순간마다 결단의 얼굴보다 관리와 조정의 언어가 먼저 떠올랐고, 책임의 장면은 종종 절차와 관행 뒤로 밀려났다. 오래 살아남았지만, 말년의 평가는 신뢰보다 피로에 가까웠다. 권력의 중심을 지켜왔다는 사실이 곧 리더십의 정당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금융권에서도 낯설지 않다. 임종룡 회장 역시 관료 조직을 거쳐 금융권의 핵심 자리를 두루 거쳤다.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위원장을 지내며 금융 정책 전반을 총괄했고, 이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거쳐 2023년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정치 일선이 아닌 금융권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시스템의 중심에 머물러 온 경로는 한덕수와 닮아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경력이 어떤 리더십으로 귀결됐느냐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임종룡 회장은 지금,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우리금융 회장직을 한 차례 더 맡겠다는 선택지 위에 서 있다. 공정·신뢰·투명성을 강조해 온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연임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개인의 거취를 넘어 금융 거버넌스의 문제로 확장된다. 관리형 경력은 새로운 시대의 기준과 접합될 가능성을 시험받는 것이 아니라, 왜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되는지 증명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우리금융을 둘러싼 언론통제 논란은 이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부정적인 기사를 게재한 언론을 광고 집행에서 배제하는 방식은 불법 여부를 떠나 윤리의 기준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비판을 설명과 설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관리와 비용의 문제로 환산하는 인식이 조직에 자리 잡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정치 영역에서 이미 충분히 확인됐다.
금융에서는 그 무게가 더 크다. 금융은 신뢰 산업이다. 더구나 공적 성격을 지닌 금융지주가 집행하는 광고비는 회장이나 경영진의 사비가 아니라, 고객이 예금과 투자로 맡긴 돈에서 파생된 자금이다. 그 자금으로 불편한 기사를 줄이려 한다면, 이는 단순한 이미지 관리가 아니다.
고객의 돈으로 부정 기사를 통제하는 것은, 고객의 입과 귀를 함께 틀어막는 일이다. 금융사가 언론을 관리하는 순간 관리되는 것은 여론이 아니라 고객의 판단 환경이다. 고객은 언론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고 선택한다. 그 통로를 광고로 막는 행위는 금융 윤리의 가장 위험한 선을 넘는 일이다.
한덕수의 말로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정권을 넘나들며 오래 살아남는 데 성공했을지라도, 책임의 윤리를 세우지 못하면 신뢰는 남지 않는다. 관리의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질문을 피하는 태도는 결국 피로와 불신으로 되돌아온다.
이 교훈은 지금 임종룡 회장 앞에 놓여 있다. 한덕수의 궤적을 또 하나의 선례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그 말로를 경고로 삼아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 공적 금융의 수장은 관리자가 아니라 책임자여야 한다.
이 질문은 특정 인물만을 향하지 않는다. 정치와 금융을 가로질러 반복돼 온 ‘관리형 권력’의 선택이 과연 오늘의 기준에서도 유효한지를 묻는 문제다. 정권은 바뀌었는데 금융은 그대로여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금융 거버넌스의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 지이코노미의 그 지점에 대한 추적은 계속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