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을 담은 손으로 수놓은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원작가가 표현하지 못한 변하는 빛, 숨겨진 빛을 담아 원작과 같은 크기로 작업한 혼자수 작품을 통해 세계명화 작품 이야기를 전한다.
WRITER 이용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누구인가
레오나르도는 다빈치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1452년 이탈리아의 ‘빈치’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1519년 67세의 나이로 프랑스 앙부아제에서 죽었다.
그는 키도 크고 목소리와 외모도 수려했지만, 더 빛나는 건 그의 재능이다.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 음악가, 공학자, 문학가, 해부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 식물학자, 역사가, 지리학자, 도시계획가, 집필가, 기술자, 요리사, 수학자 등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조르조 바사리라는 예술가가 평하길 “창조주가 한 인간에게 엄청난 재능의 은총을 내렸는데 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이고, 그가 만든 것들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의 유명한 공증인인 세르 피에르의 사생아였다. 당시 귀족 가문의 피를 물려받지 않은 일반 사생아들은 의사도 약사도 될 수 없었고 대학에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15살 때 피렌체 한 공방의 견습생이 되어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바닥 청소나 잔심부름 같은 허드렛일, 붓을 빨고 안료를 빻는 일을 하며 그림을 배웠다. 공방 시절 보티첼리 등 많은 화가들을 보았고, 그들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해 나갔다.
20세가 되던 1472년에는 정식 회원이 되어 공방을 운영할 수 있게 됐지만, 그냥 스승 베로키오의 조수로 남았다. 그림 실력은 최고의 수준이었지만 주문받은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는 결점은 이때부터 그를 따라다녔다. 실제로 다빈치의 완성작 수는 스무 점을 넘지 않는다.
30세에는 밀라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스포르차 공작의 전속 화가이자 군사 기술자이자 건축가로 일하며 17년 동안 머물렀다. 이때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식당 벽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이 시절 그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식물학, 광학, 수력학, 천문학, 해부학 등 온갖 분야에 관심을 키워나갔다. 그는 웬만한 학자들보다 책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48세 때인 1500년 밀라노가 프랑스에 함락되자 그곳을 떠나 피렌체로 갔다. 그곳에서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했고, 알려진 대로 완성하지는 못했다.
65세 때인 1517년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고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말년을 보냈다.
작품해설 〈모나리자〉
그가 그린 모나리자에 대해서는 사실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레오나르도가 작품에 서명하지 않았고, 관련 기록들도 전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초상화의 모델은 피렌체의 부자 ‘조콘도’의 부인 ‘리자’라고 전해지는데 이 때문에 ‘리자 부인’이라는 뜻의 ‘모나 리자(Monna Lisa)’로 불리게 된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당시는 그가 그림에 회의를 느껴 초상화를 그리지 않던 시기였지만, ‘모나리자’만은 예외적으로 그렸다는 점과 이 그림을 의뢰한 사람에게 보내지 않고 1519년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 다빈치가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모나리자’의 미소에 얽힌 이야기 등으로 미루어 작품 자체가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모나리자’는 1911년 8월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서 액자 보수를 담당하는 직원 중의 한 명인 이탈리아 사람 ‘빈첸초 페루지아’에 의해 도난당했다. 나폴레옹이 전리품으로 ‘모나리자’를 프랑스로 약탈해간 것으로 알고 있던 빈첸초는 이탈리아 예술품을 되찾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도난 후 ‘모나리자’는 수백만 장으로 복사·배포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수만 프랑의 현상금이 걸리는 등 세계적인 작품이 됐다.
변하는 미소의 비밀
사실 이러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모나리자’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모나리자는 르네상스의 당시의 혁신적 기법인 원근법과 피라미드 구조, 유화물감을 활용한 명암대조법을 조화롭게 녹여 넣은 작품으로 신비로운 미소가 덧붙여져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작품이 됐다.
뉴욕에서 전시할 때는 7주 동안 160만 명의 관람객들로 인해 일대 교통이 마비됐고, 동경 전시 때는 관람 시간이 1인당 10초로 정해지기도 했던 작품이다.
작품 감상의 백미는 모나리자를 오른쪽에서 볼 때와 왼쪽에서 볼 때, 미소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다빈치가 사용한 실버 화이트 물감에 있다. 이 물감을 얇게 겹쳐 칠해서 명암을 표현하여, 그 윤곽선이 겹쳐지면서 눈에 어른거리는 착시효과가 생기고, 미묘하고 신비한 미소가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