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구례군이 민선 8기 공약 이행 평가에서 저조한 성적을 받으며 군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추진 중이라던 다수 공약이 실제로는 보류되거나 폐기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행정의 실행력에 대한 물음표가 짙어지고 있다.
2022년 민선8기 출범과 함께 구례읍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며 제시됐던 ‘상권 르네상스’ 사업이 조용히 무산됐다. 문척면에 새로운 관광거점으로 내세웠던 ‘섬진강 나루장터’ 조성 계획도, 청소년을 위한 ‘청춘문화 공간 조성안(B안)’도 흐지부지됐다. 나루터는 여전히 조용하고, 청소년 공간은 없으며, 군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최근 발표한 ‘2025 민선8기 3년차 전국 기초단체장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 결과에서 구례군은 낮은 이행률로 평가됐다. 총 공약 가운데 상당수가 ‘보류’ 또는 ‘폐기’된 상태로 분류됐고, 현재도 이렇다 할 반전의 기미는 없다.
사라진 공약 목록은 너무 많다▲구례읍 상권 르네상스▲가족형 요양타운 조성▲문척면 섬진강 나루장터 조성▲청소년 청춘문화 공간 조성(B안)▲국립공원 구역 축소 추진▲국가문화도시 지정 추진▲간전~광양 터널 개설▲어르신 건강증진 지리산 약수탕 건립▲외국인 근로자 체류환경 개선 및 외국도시 협약 추진 등이다.
모두 추진이 멈췄다. 또 다른 사업인 ‘섬진강 리버파크 조성(B안)’은 일부만 진행되고 있고, 그마저도 축소된 범위로 시행 중이다. 한 마디로, 약속은 했지만 이행은 안 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처음부터 계획이 무리했던 것일까, 아니면 추진 과정에서 행정력의 한계가 드러난 것일까.
조용한 실패, 설명없는 중단, 이 문제의 본질은 공약 이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업이 중단되거나 사실상 폐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이나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훨씬 더 심각하다.
공약은 그저 표를 얻기 위한 말이 아니다. 선거 당시 군민들과 맺은 ‘정치적 약속’이자, 군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행정 로드맵이다. 그 길이 멈췄다면, 어디에서 막혔는지, 어떤 한계에 부딪혔는지를 군민들에게 밝혀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구례군은 이 공약들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이 주민 사이에서 반복되고 있다. 상권 활성화를 기대하며 투자했던 소상공인, 청소년 문화 공간을 기다렸던 학부모, 그리고 복지 거점을 기대했던 어르신들… 그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공약이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예산 확보도, 소통도 막혔다. 공약 이행을 막은 또 다른 벽은 예산이다. ‘지리산온천지구 민간자본 유치’는 1,000억 원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지금까지 확보된 자금은 ‘0’원이다.
‘섬진강 대숲길 야간 경관명소 조성’, ‘취약계층 체육시설 조성’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예산 없이 꿈을 꿨고, 현실은 그대로 멈춰 있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지방 행정의 고질적 문제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주민들에게 이런 공약들의 진행 상황이나 예산 문제, 추진 가능성 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거나 공유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더 뼈아프다.
시작부터 다시 묻는다. 공약이 실패할 수 있다. 상황이 달라졌고, 여건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패를 조용히 덮는 일은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공약의 중단은 ‘행정 실패’이기 이전에 ‘소통 실패’이고, ‘책임 회피’다.
지금 필요한 건 공약에 대한 ‘미화’도, ‘핑계’도 아니다. 멈춘 약속들을 하나하나 꺼내 놓고, 그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남은 군정에 대한 신뢰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