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1980년 5월 21일 오전,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한 시민이 직접 촬영한 6분 분량의 8㎜ 필름 영상이 45년 만에 공개됐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최근 기증받아 27일 영상 공개 시사회를 개최한 이 영상은 5·18 민주화운동의 정점이자 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의 긴박했던 순간을 시민 시선으로 생생하게 담아내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귀중한 현장 기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영상은 당시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 아치 구조물 위에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되었으며, 시위대 중심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현장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기존에 공개된 대부분의 영상들이 계엄군의 시선에서 도청 앞 시위대를 바라보는 구도였던 것과 달리, 이 영상은 시민 내부에서 바라본 장면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의미를 가진다.
영상에는 시위대와 시민들의 대치 모습, 상공을 선회하는 군용 헬리콥터와 수송기(C-123), 시신 2구를 실은 손수레, 시민들이 몰고 온 장갑차,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시신을 지키는 시민들의 결연한 모습 등이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5월 21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의 시간대가 명확히 나타나, 당시 계엄군에게 실탄이 분배되고 장갑차에 캘리버50 기관총이 장착되는 순간, 그리고 군용 헬기와 계엄군의 도열 등 군 작전의 흐름을 추정할 수 있는 핵심 장면들이 시간 순서대로 이어진다.
이 시기는 5·18 민주화운동 중 가장 격렬했던 집단발포 직전의 순간으로, 영상 속 긴박한 상황은 그간 단편적이고 왜곡된 자료들과는 달리 당시 현장의 진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최루탄이 발사된 뒤 시위대가 돌과 화염병으로 즉각 반격하는 장면과, 군용 장갑차가 후진하며 밀려나는 모습 등은 긴장감 넘치는 전투의 순간을 고스란히 증언한다.
또한 영상 속에는 당시 구용상 광주시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시민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야유를 받으며 물러나는 모습도 포착돼 있다. 5월 21일 이후로 추정되는 태극기가 걸린 충장로 일대의 평범한 시민 생활 모습과 광주MBC 방송국 화재 장면도 포함돼, 항쟁 당시 광주의 다층적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영상은 5·18 진상규명 과정에서 핵심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촬영된 인물들의 신원 확인 가능성과 시신 수습 장면 등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실종자와 희생자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전망이다. 특히 영상이 고정된 위치에서 촬영되어 타임라인이 명확한 상태로 보존된 덕분에 기존에 시간대가 뒤섞이거나 조작 의혹이 제기됐던 다른 영상과 교차검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이 영상을 디지털 복원하고 해제 작업을 마친 뒤 일반에 공개하며, 향후 교육과 연구, 전시,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김호균 기록관장은 “시민이 직접 촬영한 현존 유일의 영상으로 5·18의 진실과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살아 있는 증언”이라며 “이번 공개가 진상규명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강기정 광주시장도 “청년의 눈으로 담긴 340초 분량 영상에는 계엄군의 집단발포 직전 광주시민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 있다”며 “오월의 진실을 찾는 소중한 조각이자, 위험을 무릅쓴 기록자들의 헌신 덕분에 광주는 죽음의 도시에서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로 변모했다”고 말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에서 시민들이 국가폭력에 맞서 저항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이번에 공개된 시민 촬영 영상은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시민들의 용기, 그리고 끈질긴 연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5·18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밝히고, 후대에 올바른 역사를 전하는 데 이번 영상이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