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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범 칼럼] 훈민정음, 음악으로 읽다 (2)

 

(편집자 주) 저자는 KPGA 프로로,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골프에 적용한 이론서 『한글골프』(2018)를 약 5년간 본지에 연재한 바 있다. 훈민정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3년 한 블로그에서 접한 어느 교수의 문제 제기였다고 한다. 『훈민정음해례본』(1446)에 담긴 음악적 원리를 풀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왜 음악인가?

 

  『훈민정음해례본』에 기본 자음과 궁상각치우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동양과 서양의 음악 개념 차이를 알아야 한다.

 

1. 도량형의 척도가 음악이다

 

  “국가를 세운 제왕은 첫째 수(數)를 준비하고 둘째 소리를 조화시키고, 셋째 길이의 단위, 넷째 부피의 단위, 다섯째 무게의 단위를 제정해야 한다.”

 

  『한서(漢書)』의 「율력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당시 동양에서 수의 비율과 소리의 조화 그리고 도량형 정비는 제왕으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이를 다루는 학문이 바로 음악이며, 그 기준이 되는 척도가 황종율관(黃鍾律管)이다. 따라서 동양에서 음악은 감각적 예술을 넘어, 수의 비율로 측정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 학문이었다는 점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중국의 『율려신서(律呂新書, 1187)』에 따르면 황종율관은 기장(벼과 식물)의 알갱이를 기준으로 제작되었다. 기장을 곧게 늘어놓아 길이 90개를 기준으로 삼고, 기장 1200개가 들어가는 부피를 갖는다.

  황종율관의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으로 만들어진 십이 음률 중 황종, 태주, 고선, 임종, 남려의 다섯 음은 한음 간격인 궁상각치우의 오음 음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바른 음(正音)을 내는 황종율관만이 도량형의 척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소리가 정확한지 검증하는 기준이 궁상각치우 음계라고 할 수 있다.

 

2. 세종대왕의 자주적, 비판적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율려신서』도 형식만 갖춘 것뿐이다. 우리나라의 음악이 비록 다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반드시 중국에 부끄러운 것은 없다. 중국의 음악인들 어찌 바르게 되었다 할 수 있겠는가?”

 

  세종대왕은 중국의 『율려신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중국 중심의 음악 이론에서 벗어나 한국 고유의 음악, 향악(鄕樂)을 정립하려는 세종대왕의 자주적 문화관과 비판적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절대음감인 세종대왕이라면 황종율관의 제작 원리를 충분히 이해했으며, 나아가 그 원리를 훈민정음 창제에도 적용했을 수 있다. 만약 발성기관을 하나의 황종율관으로 간주한다면, 발성기관에서 기본 자음의 조음위치가 바른 음을 내는지는 관의 길이와 부피 그리고 오음 음계와의 대응 관계를 통해 판단될 수 있다.

 

3. 기존 운서를 바로 잡았다!

 

  “너희들이 운서를 아느냐? 사성칠음(四聲七音)의 자모(字母)가 몇이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이를 바로 잡겠는가?”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기존 운서를 바로잡겠다고 천명하였다. 훈민정음이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 운서는 중국 운서뿐만 아니라 인도 산스크리트 문자와 몽골의 파스파문자(1269) 등 당대 주요 문자·음운 체계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운서를 바로잡겠다”라는 선언은 기존 문자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려는 이론적 의지를 나타낸다. 즉 언어의 패러다임(paradigm)이다.

 

4. 글자 모양보다 소리의 원리가 중요하다

 

  “정음(正音)인 글자가 단지 스물여덟 자뿐이로되 뒤섞여 엉클어진 것을 탐구하여 그 궁극의 기미(幾)를 찾았네!”

 

  세종대왕은 기존 운서의 복잡한 구조를 분석하여 그 근본 원리를 바로 잡을 방법을 찾았다고 하였다. 즉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가 다른 운서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중국 운서를 비롯해 인도 산스크리트어와 구조가 유사한 현대 언어학으로는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전부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정음(正音)을 만든 것은 애초에 지혜를 짜내어 억지로 구한 것이 아니다. 다만 소리(聲音)에 따라 이치(理)를 다했을 뿐이다.”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자주 거론되는 소리의 원리는 발성기관에서 성(聲)과 음(音)을 구분하는 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정음(正音)은 소리의 음악적 원리를 의미하며, 글자 모양은 그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의 본질은 글자 모양보다 소리의 원리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

  더욱이 말과 글자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의 발성기관에서 나는 소리의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는 훈민정음이 음성학 자체에서 언어의 보편성을 구현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5. 소리의 원리가 음악이다

 

  “성(聲)에 일정한 음정을 가지면 음(音)이 되고 음이 어우러지면 음악(樂)이 된다.”

 

  『예기』와 『악기』의 정의에 따르면, 성(聲)은 소리의 출발점이며, 음(音)은 소리에 음정이 부여된 음악적 단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훈민정음은 단순한 발음기호가 아니라, 여러 소리 가운데 음정 질서에 부합하는 음표를 의미한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소리를 표기하는 체계이면서 동시에 일정한 음악적 질서를 전제한 문자 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6. 훈민정음은 바른 음(正音)이다

 

  “계해년 겨울(1443년 12월)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여 간략한 예의를 들어 보이시며, 그 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하셨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은 세종대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해례본 에 대한 해석은 오롯이 세종대왕 관점이어야 한다. 또한 훈민정음의 사전적 의미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음(正音)이다.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바른 음으로 표현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성(聲)과 음(音), 그리고 음악(樂)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기(禮記)』와 『악기(樂記)』에 따르면, 소리를 의미하는 한자 성(聲)과 음(音)은 서로 다른 개념으로, 바른 소리(正聲)와 바른 음(正音)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따라서 훈민정음에서 말하는 정음은 “바른 소리”가 아니라, “바른 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7. 옛글자는 음악과 천문을 담고 있다

 

  “옛사람이 소리(聲)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였고 삼재(天地人)의 이치를 실었다. 그러나 후세 사람이 능히 옛글자를 바꿀 수 없었다.”

 

  옛글자는 단순한 음성 표기가 아니라,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와 만물의 이치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함께 반영한 문자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소리를 음향적 요소로만 분석하는 현대 언어학의 접근과 구별된다. 따라서 옛글자는 소리와 글자 그리고 천문을 아우르는 융복합적 원리를 담은 고차원 문자임을 고려해야 한다.

 

  “소리의 원리를 따르되 글자 소리로는 맑고(淸), 탁함(濁)을 분별하고 악가(樂哥)로는 율려(律呂)와 화합할 수 있다. 삼재(天地人)의 뜻과 두 기운(陰陽)의 오묘함을 모두 갖추었다.”

 

  실제 훈민정음은 소리의 원리에 따라 음악과 천문의 질서를 함께 반영한 통합적 문자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소리의 청탁은 소리의 음향적 성질을, 율려는 음악적 음계의 조화 원리를, 삼재와 음양은 우주 질서의 구조를 가리킨다. 따라서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는 조선의 언어·음악·천문 이론을 담고 있다.

 

  다음 3화에서는 기본 자음과 궁상각치우의 관계 중 목구멍소리 ‘ㅇ’을 음악으로 재해석한다.

 

강상범 프로필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현 한글골프연구소 소장

 

저서

『한글 골프』(2018)

『궁상각치우: 훈민정음을 연주하다』(2023)

『세종대왕의 언어 척도: 음악』(2025)

『The Linguistic Scale of King Sejong』(2025)

 

논문

「세종대왕 관점에서 바라본 훈민정음해례본 재해석: 궁상각치우를 고려한 음악적 고찰」(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