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는 이다음에 배우자로 어떤 여자를 만나고 싶니?” 식사 중에 내가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집에서 살림만 할 수 있는 형제가 많은 여자요.” “이 녀석아! 형제가 많은 여자를 데려오려면 네가 능력이 있어야 하니 어서 능력부터 키워.” 일하는 엄마의 아들이어서 그런지 아들은 늘 집에서 살림만 하는 친구의 엄마들을 부러워했다. 누구 집 엄마는 당근이나 오이도 나뭇잎 모양을 내어 그릇에 담아 주더라,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하는 모습이 천사 같더라 등등 다른 엄마와 비교해서 말하곤 했다. 낸들 하나뿐인 아들에게 왜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지방 강의를 다니다 보니 새벽에 나가기가 일쑤다. 나름대로 아들의 아침을 챙기겠다는 생각은 있어서 3시에 일어나 보온 도시락에 아들이 먹고 나갈 반찬과 국을 담아 식탁에 올려놓기도 하고 자주 편지를 써놓기도 한다. “아들아! 오늘 하루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라”라고. 현관을 나오면서는 아들의 신발을 밖으로 향하게 돌려놓고 “신발아! 오늘 하루도 내 아들 좋은 곳 많이 데리고 다니다가 저녁엔 이 자리로 꼭 데려다 놓으렴”하고 중얼거린다. 핸드폰에는 아들을 ‘최고의 아들!’이라고 입력을 해 놓아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실수 두 가지가 1. 보내야 할 사람을 잡은 것 2. 잡아야 할 사람을 놓친 것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는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느끼는 것이라 누구든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고 한다. 나는 어디에 해당이 될까? 문득 지난 일들이 생각난다. 대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 영희가 찾아와 히죽거리며 자꾸 웃었다. ‘얘가 왜 이리 히죽거리지?’하고 다시 보니 듬성듬성하던 이가 가지런하게 변해 있었다. “영희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응, 나 아르바이트한 것 모아서 보철이란 걸 했다.” “보철이 뭔데?” “그건 본래의 자기 이를 작게 간 후 만들어진 이를 겉에 씌우는 거야” 이 사이가 심하게 벌어져 있었던 영희의 이는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평소 앞니가 벌어져 입을 가리고 웃던 내게는 부러움 그 자체였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들고 나는 바로 치과를 찾았다. 잠시 상담을 거친 후 나는 망설임 없이 튼튼하고 멀쩡한 이를 겨우 남겨둘 정도로 갈고 틀이 완성될 때까지 임시로 만든 이를 끼우고 있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지금보다 기술이 덜했던 시절이라 그런지 임시로 열흘간 끼고 있어야 하는 앞니 네 개가 그야말로 황금빛이었
몇 해 전 길에서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고 쓰러져 있는 아가씨를 봤다. 안타까운 마음에 일으켜 세우려는데 “야! 넌 또 뭐야 놔!” 하면서 아가씨가 발로 차서 어이없게도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지는 일이 생겼다. 지방을 가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절대 안정을 강조하시며 뼈가 제대로 붙으려면 서너 달이 걸린다고 하신다. “선생님! 빨리 붙게 해주세요. 제가 지방 가야 해서요” 의사 선생님께 떼를 써보지만 그러다 더 큰 일이 생긴다며 치료받으며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다. “그러게 그런 사람은 바로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에서 알아서 하는데 뭐 하러 배려를 했어요? 더군다나 술을 가누지도 못하게 마신 여자를...”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 오지랖 때문인 걸. 두 시간 내내 온갖 술주정을 받아주면서 가족에게 인수인계를 하기까지 다시는 술에 취한 여성을 도와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수없이 했다. 그 일 이후 뼈가 붙을 때까지 수개월간 등까지 아파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찌는 듯한 찜통더위에 복대를 하고 벌침까지 맞아가며 안 해도 될 고생을 많이 했다. 술은 본인이 이겨낼 만큼 기분 좋게 마셔야 한다.
“우리 연애할래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노골적으로 작업을 거는 남자들이 간혹 있다. 십중팔구 툭 던져서 오면 좋고, 아님 말구 식인 남자다. “어머나! 진작 말하시지. 며칠 전 생겼는데” 내가 뻔뻔하게 이렇게 말하면 더 이상 말을 못한다. “어머 왜 이러세요? 저를 뭘 로 보고” 이렇게 펄쩍 뛰는 것보다는 넉살 좋게 얼마 전 생겼다고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었다. 있다는데 어쩔 것인가? 혹은 지방에서 강의를 들었던 분이 서울에 오셨다고 한번 보자는 분도 계시는데, 그럴 때는 “어머! 어쩌나 저는 제주도에 와 있어요. 아쉽네요. 다음에 오시면 연락주세요.” 이렇게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고는 얼른 핸드폰에 ‘ 받지 말자’하고 번호를 입력해 놓고 그 전화가 오면 절대 받지 않는다. 몇 번 안 받으면 다신 전화가 오지 않는다. 강의 자체가 재미 있으니 개인적으로 만나도 엄청 재미가 있을 거로 생각해 연락하시는 모양인데, 가족들이 이상하다 할 정도로 난 1대 1로는 밥도 못 먹고 말도 못 한다. 살면서 오히려 그 점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머 감각이 있어 어느 자리에서든 지붕을 들썩이게 만드는데, 끼까지 있었다면 어쩔 뻔했겠는가! 돌아가신 엄마의
몇 년 전부터 꽤 많은 기업에서 유머감각이 있는 직원을 뽑고 있다. 모 회사의 면접장에서 일어난 면접관과 응시자의 대화이다. “OOO 님은 무엇을 잘하나요?” “저는 사람을 웃길 줄 압니다.” “그래요? 그럼 한 번 웃겨보세요.” 이에 응시자는 뚜벅뚜벅 면접 대기자들을 향해 걸어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직원 다 뽑았으니 모두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응시자는 면접관들을 웃게 한 재치와 당당함을 인정받아 합격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마트 식품 진열대에 갑자기 쥐가 나타났다. 손님들이 깜짝 놀라 우왕좌왕 난리가 났다. 이때 예쁘장한 여직원이 나타나 아나운서 톤을 말했다. “여러분, 이 쥐는 우리 식품부의 마스코트입니다. 우리 마스코트인 미키마우스가 놀라지 않게 진정해 주세요.” 설마 쥐가 마스코트이겠는가. 재치 있는 그 여직원의 말에 보기 불편한 쥐는 귀여운 미키마우스가 되었고, 손님들은 웃으며 쇼핑을 계속했다. 언제인가 백화점의 안내방송에 특이한 멘트가 귀에 쏙 들어왔다. “고객 여러분! 동쪽에서 뜨는 해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동해죠. 또한 서쪽에서 뜨는 해는 서해겠죠? 그렇다면 우리 백화점에 뜨는 해는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사랑해’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