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공약이 무산될 수는 있다. 여건이 바뀌고, 현실적인 제약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정상이란, 그 무산의 과정조차 기록되고 공유되는 행정이다. 어느 시점에서 계획이 바뀌었는지, 왜 추진이 어려웠는지, 어떤 방식으로 조정되었는지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 그것이 공공행정의 최소한의 책임이자, 주민에 대한 예의다.
그러나 구례군의 상황은 다르다. 주요 공약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침묵’뿐이다. 행정보고서도, 군의회 회의록도, 공식 브리핑도 찾아보기 어렵다. 절차는 없었고, 설명은 더더욱 없었다.
결국 주민들은 행정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사업의 중단 여부를 ‘거꾸로’ 확인해야 했다. 지역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이 사업은 폐기된 모양이다”라고 짐작해야 했고,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언제 접은 건지도 모르게 끝났다”는 반응도 들린다. 공약을 둘러싼 공식적인 설명이나 조정 과정이 부재하다 보니, 행정이 스스로 내건 약속의 무게를 가볍게 다루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제기된다.
행정이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면, 그 공백은 ‘혼란’으로 채워진다. 구례읍 상권 르네상스를 믿고 준비하던 소상공인들, 청춘문화공간을 기다리던 청소년과 학부모들, 문척면 나루장터를 기대하던 주민들… 이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공약은 사라졌지만, 그 공약을 믿었던 사람들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구례군은 공약의 변경이나 취소에 대해 내부 기준도, 대외적 설명도 명확하지 않다. ‘어느 회의에서 결정되었는가?’, ‘그 판단은 누구의 권한이었는가?’, ‘대안은 있는가?’에 대해 군민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행정의 실패보다 더 무서운 건 소통의 실패다. 공약이 바뀔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신뢰를 지키려면 ‘말’이 필요하다. 침묵은 결국 책임을 흐리고, 혼란만 키운다.
남은 군정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멈춰 선 약속들을 하나씩 꺼내놓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판단을 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를 말해야 한다. ‘핑계’가 아니라 ‘경과’를, ‘침묵’이 아니라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지방행정은 군민과의 약속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행정에 대한 신뢰를 결정짓는다. 공약은 ‘지켜야 할 말’이고, 그것이 멈췄다면 그 이유를 말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