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녹색철강이라더니, 정의도 없고 책임도 없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이른바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을 두고, 환경단체들의 비판이 거세다.
8일, 광양환경운동연합, 기후넥서스, 기후솔루션, 당진환경운동연합, 빅웨이브, 액션스픽스라우더, 충남환경운동연합, 포항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전국의 주요 환경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이 법안이 “녹색철강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녹색의 정의조차 없으며, 탄소감축에 대한 철강사의 책임도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탄소중립은 구호가 아니라 약속이어야 한다”며, 산업계 지원과 녹색전환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우려했다.
K-스틸법은 정부가 국내 철강산업의 위기 대응과 녹색기술 전환을 위해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이다.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같은 기술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 기반시설 구축 등의 명시적 지원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이 같은 지원이 어떤 조건과 기준 아래 이뤄지는지, 그 ‘전제’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법안에는 '녹색철강'이라는 표현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이를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한 기술적, 환경적 기준은 어디에도 적시되지 않았다. 현재의 고로 방식이 과연 어느 시점부터 ‘녹색’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어떤 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환경단체들은 이 지점에서 우려를 제기했다. "정의도 없는 '녹색'을 내세워 기업에 예산을 퍼주겠다는 식이라면, 이는 그린워싱에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철강산업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 중 하나다. 2021년 기준으로 국내 전체 온실가스의 약 17.8%가 철강 부문에서 배출됐으며, 대부분은 석탄 기반의 고로(용광로) 공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현재 포스코, 현대제철 등 대형 철강사들은 명확한 고로 감축 계획이나 수소환원제철 전환 일정표조차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일부 기업은 연구개발 및 시범사업 단계에 머무르며,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라는 모호한 언급만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K-스틸법은 이들 기업에 대규모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만들고 있으며, 철강사가 탄소 감축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거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다.
법안은 또 하나의 축으로 ‘철강핵심전략기술’이라는 개념을 들고나왔다. 이는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지정하고, 이에 대해 집중 지원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전략기술이 탄소감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심지어 반대되는 기술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법안은 전략기술의 정의를 ‘산업적 중요성과 기술적 파급력을 고려해 정부가 지정’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실제로는 내화물, 공정 효율화, 재료강도 향상 같은 기존 고로 기술 개선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
이는 법안이 녹색전환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결국 탄소중립을 위한 강제 장치는 희석될 수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법안이 규제 완화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들은 법안에 명시된 ‘특례 조항’을 특히 우려했다. 이 조항은 철강산업단지 개발, 설비 도입 등의 과정에서 환경, 소방, 에너지, 건축, 안전 등 관련 인허가 절차를 완화하거나 적용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이런 규정은 탄소중립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환경규제를 후퇴시키는 이중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이런 방식은 기업 편의만을 고려한 정책으로 해석될 수 있고, 사회적 수용성과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환경단체들이 요구하는 것은 법안을 폐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감축 의무가 함께 가는 구조적 전환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탄소중립이라는 국가 과제가 ‘민간의 자율적 전환’에만 기대거나, 기준도 책임도 없이 산업계 지원만 확대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경우, 장기적으로 산업의 지속가능성마저 해칠 수 있다는 점도 짚고 있다.
이들은 “법안의 방향을 전면 재검토하고, 녹색철강 전환이 실질적인 감축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강제력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