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봄비 사이로 오랜만에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 따뜻한 한 끼를 나누기 위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온 봉사자들을 마주할 때면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기분 좋은 ‘빚’이 쌓이곤 한다.
우리는 모두 바쁘다. 하지만 지속함의 비결은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이 일을 인생의 1순위에 두었기 때문’임을 그들의 구슬땀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특히 항암 치료 중에도 현장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회장님을 뵐 때면 존경을 넘어 경외심마저 든다. 기운을 북돋워 드리고 싶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미리 식사 대접을 청했지만, 치료 일정으로 서둘러 자리를 뜨시는 뒷모습을 보며 아쉬운 대로 남겨진 설거지 더미 속에 팔을 걷어붙였다.
밀려드는 식기들을 닦으며 돌아오는 길, 문득 내 강의의 단골 소재인 ‘석유왕 록펠러’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지만 ‘악덕 기업가’라는 오명 속에 살았던 록펠러는 55세에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불면증과 위궤양으로 우유와 비스킷 한 조각조차 삼키기 힘들었던 그가 병원 로비에서 운명처럼 마주친 문장이 있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수없이 들락거렸을 병원이었지만, 죽음의 문턱에 서서야 비로소 그 문장이 심장에 박혔다. 마침, 병원비가 없어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를 본 록펠러는 비서를 통해 몰래 병원비를 전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마지막으로 좋은 일이나 한 번 하자’는 마음이었다.
얼마 후, 아이가 건강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록펠러는 생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전율을 경험했다. 신기한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죽음을 기다리던 그가 낫기 시작한 것이다. 98세까지 장수하며 수많은 도서관과 대학을 세우고 나눔을 실천했음에도 그의 재산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풍요가 밀려들었다.
이것이 바로 남을 돕는 과정에서 느끼는 신체적·정신적 포만감인 ‘헬퍼스 하이(Helper’s High)’의 기적이다.
박사 위에 ‘밥사’, 그 위엔 ‘봉사’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취하려 애쓴다. 흔히들 학사 위에 석사, 석사 위에 박사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이 계급도(?)의 정점은 따로 있다. 박사 위에는 맛있는 밥을 기분 좋게 사는 ‘밥사’가 있고, 그 ‘밥사’ 위에는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봉사’가 있다.
이 말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삶의 고귀한 품격을 말해준다. 지식(박사)이 머리를 채우고, 나눔(밥사)이 관계를 채운다면, 봉사는 영혼을 채우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우울증을 앓는 이들에게 봉사는 그 어떤 약보다 강력한 처방전이 된다. 우울은 시선이 오로지 ‘닫힌 자기 자신’에게만 고립될 때 깊어지는데, 봉사는 그 시선을 타인과 세상으로 강제로 확장시킨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자각, 나의 작은 손길이 타인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효능감은 무너진 면역체계와 마음의 벽을 다시 세우는 힘이 된다.
주역(周易)에는 ‘적선여경(積善餘慶)’이라는 말이 있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남는다는 뜻이다. 록펠러가 죽지 않고 살아나 더 큰 부를 일군 것처럼, 10년 넘게 급식소를 지켜온 봉사자들의 얼굴이 그토록 환한 이유는 그들이 이미 삶의 ‘경사’를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생에 단 한 번도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보지 않고 살아간다면, 아무리 높은 학위를 따고 많은 재산을 모은들 과연 가치 있는 삶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나눔은 여유가 생겨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기어이 해야 하는 숙명과도 같다.
이 봄이 가기 전, 우리도 ‘박사’의 화려함보다는 ‘봉사’의 묵직한 기쁨을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눔이라는 이름의 면역제가 우리 각자의 삶을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게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강윤정 마중물교육파트너스 대표
힐링 인문학 강의
대인갈등 소통강의
농협주부대학‧공무원연금공단 외래강사
한국은행 사회공헌 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