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시즌 황선홍 감독은 큰 성공을 거뒀지만 올 시즌 그에게 주어진 것은 더 얇아진 스쿼드다 (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2014시즌을 준비하는 황선홍 감독과 포항은 오히려 1년 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자유계약 신분이던 베테랑들과는 모두 재계약에 실패했다. 올해도 포항은 외국인 선수 영입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구단과 주변에서는 작년 이상의 성과를 기대한다. 감독 입장에서는 지칠 법도 하다. 실제로 황선홍 감독은 지난 1월 구단과 심각한 마찰이 있었다. 결국은 자신이 모든 부담과 짐을 다시 안고 가기로 했다. 신인 외에는 선수 보강 없이 더 얇아진 스쿼드가 주어졌지만 마음을 다 잡은 황선홍 감독은 “핑계대지 않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 나가겠다”며 다시 도전자의 자세로 섰다.
이 인터뷰가 공개되는 25일 저녁, 포항은 세레소 오사카를 상대로 시즌 첫 경기를 치른다. 세레소는 포항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디에고 포를란이라는 세계적인 선수를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다. J리그에서 뛸 당시 소속팀과의 재회로 인해 감회에 젖을 법도 하지만 황선홍 감독은 포를란을 무력화시키고, 세레소에게 어떻게 승리할 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X냐, O냐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XO인터뷰]가 찾아갔다.
Q. 올 시즌에도 포항이 K리그 클래식에서 우승할 것이다?
X, 이상만으로는 안 된다고 봐요. 목표를 제대로 선택하는 게 중요하고. 우승하겠다고 못을 박아놓고 시작하면 여러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잘하면 찬스는 있다고 봐요. 결과보다는 내적으로 더 신경을 쓰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봐요. (Q. 우승 후보 1순위는 어디라고 보세요?) 전북. 멤버가 워낙 좋고, 최강희 감독님이 돌아와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편 중이잖아요.
Q. 아직 외국인 선수 영입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X. 지금은 없어요. 작년 시즌이 끝나고, 동계훈련이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생각을 많이 했고 기대도 있었는데 지금은 다 잊었어요. 데리고 올 수 없는 게 현실적 상황이란 걸 알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정리를 했어요. 지금 우리 팀의 젊은 선수들이 얼마나 백업요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가 고민이지 외국인 선수는 생각 안 해요.
Q. 재계약을 못한 노병준, 박성호, 황진성에게 인간적인 미안함이 있다?
O. 당연한 거고요. 지금도 마음 한 켠이 많이 아파요. 감독으로서 선수 계약 부분이 완벽히 충족되지 않는 데 있어 혼란의 시간을 겪었어요. 선수들에게 얘기했지만 분명한 것은 상황이 어떻든 축구는 해야 한다는 거죠.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고 현명하게 생각해서 한발 물러서서 볼 필요도 있고요. 구단의 선택을 감내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많이 진정된 편인데, 1월 초에는 많이 안 좋았어요. 그 선수들과 통화는 다 했고 미안하다고 얘기했어요.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마음이 안 좋죠. 성호와 진성이 같은 경우는 연봉을 삭감하겠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구단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황이더라고요. 처음엔 굉장히 화가 났는데 제가 수용하지 않으면 평행선만 달리겠더라고요. 구단과 진흙탕 싸움을 할 순 없었어요.
Q. K리그 클래식과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챔피언스리그다?
O. 지도자를 시작한 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공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컸어요. 클럽팀 감독을 하는 동안 그 목표는 계속될 겁니다. 올해도 외국인 선수가 없고, 오히려 작년보다 스쿼드도 얇아졌지만 그래도 더 분석하고 신경 써서 성과를 내고 싶어요. 일단은 조별리그를 통과해 16강부터 먼저 가야죠. (Q. 올해가 작년보다 더 험난할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각오하고 있어요. 우리는 보강을 못한 반면 산둥 루넝과 세레소 오사카, 부리람 유나이티드는 잘 보강했어요. 객관적인 네임밸류보다 내실적으로 잘 다져진 팀들과 붙어야 하니까 우리가 준비를 잘해야 해요.
Q. 시즌 첫 경기 상대인 세레소가 최근 디에고 포를란 영입으로 굉장한 화제를 모았는데, 포를란은 스틸야드에서 골을 넣지 못할 것이다?
O. 동계훈련 하는 내내 집중한 게 수비 조직력이었어요. 개개인이 아닌 전체가 협력해서 하는 걸 강조했어요. 포를란은 틀림 없는 좋은 선수죠.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그만큼 기량도 있고. 하지만 우리 수비가 컴팩트한 방어로 대응한다면 그 선수에게 완벽한 찬스를 내주진 않을 거예요.
Q. 포를란이 왔지만 역대 세레소 소속의 J리그 득점왕은 내가 유일했으면 좋겠다? (1999년 황선홍이 26골로 득점왕에 오른 뒤 세레소 소속의 득점왕은 나온 적이 없다.)
(기분 좋게 웃은 뒤) X. 그런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축구는 계속 되어야 하고 새로운 역사는 나와야 해요. 포를란이 왔으니까 리그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세레소에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J리그 뿐만 아니라 아시아 축구 전체의 향상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봐요. 그런데 자극 받아서 한국 축구도 새로운 준비를 하게 되겠죠.
세레소는 포를란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영입했다. 황선홍 감독은 발전을 위해 그가 자신의 득점왕 기록을 깨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Q. 내가 대표팀 감독이어도 지금 박주영을 뽑는다?
그건… 노코멘트 할래요. 그 입장이 아니니까 생각을 안 해봐서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감독의 고충과 처한 입장은 언론과 팬들이 고려해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Q. 박주영이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데는 동감하시나요?) 좋은 선수잖아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이명주는 대표팀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
(웃으며) 그것도 노코멘트. (Q. 소속팀 감독 입장에서 선수가 대표팀에 다녀온 뒤 힘들어 하는 거 같아 보이세요?) 이번이 문제가 될 수 있겠죠. 이전에는 명주가 한번도 탈락되지 않았으니까요. 아침에 만났을 때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본인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더 큰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이에요. 얼마나 슬기롭게 이겨내느냐를 모두가 지켜볼 것이고, 저는 옆에서 도움을 줄 겁니다. 같이 이겨나가야 해요. 명주의 성격과 성향을 아는 입장에서 잘 극복할 거라고 봐요.
Q. 리그 개막전을 준비하는 데 부담이 되도 그리스전에 포항 소속의 국가대표가 나오길 원했다?
O. 당연하죠. 대표팀에 많이 갔으면 좋겠어요. 월드컵 본선이라는 무대는 최고의 선수가 모이는 자리인데 거기에 제가 지도한 선수가 간다는 건 감독에게도 굉장한 영광이에요. 포항에서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Q. 포항 감독 다음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다?
모르겠어요. 사람이 꿈을 꾸는 건 중요해요. 그 꿈 중 하나가 대표팀 감독이죠. 월드컵을 통해 내가 축구를 하는 이유를 알게 됐고, 축구를 하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을 기쁘게 했다는 뿌듯함을 느꼈으니까요. 그게 가슴 안에 아직 살아 있어요. 지도자로서 그런 경험을 한번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표팀 감독에 대한 목표 의지를 보였던 거예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현재, 오늘이 중요하고 이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기회가 올 수도 있으니까 매일 노력하는 거죠. 안 올 수도 있지만요.(웃음)
K리그는 기술적으로, 재정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주변 리그에 밀리고 있다. 황선홍 감독은 위기임을 인정했다 (사진=포항스틸러스)
Q. K리그는 현재 대내외적으로 위기다?
O. 위기라고 생각해요. 감독들끼리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기술적인 경쟁력, 시스템적인 영역 등 모든 면에서 틀림 없는 위기인 것 같아요. 같이 협력하고 머리를 맞대서 미래를 고민해야 해요. 축구가 올해만 하고 끝날 건 아니니까. 언제 시작해도 늦진 않다고 생각해요. 프로축구연맹에서도 고민이 많은 것 같고, 지도자들도 방향이 정해지면 적극적으로 도울 준비는 돼 있어요. 힘을 모아서 장기적 계획 아래 하나씩 해결해갔으면 좋겠어요.
Q. 사람들은 나를 신사라고 하지만 내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X. 별로…(웃음) 털털하고 사람 좋아하고 그냥 그래요. 전 별로 똑똑하지 않아요. 선수 시절에 남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서 싫은 소리를 안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감독은 그렇게만 해선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황선홍은 감독으로서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있다고 본 거 같아요. 꼭 카리스마, 강한 성격만이 지도자가 성공하는 요인은 아니라고 봐요. 사람을 대하는 데는 다른 방법도 있거든요. 저도 부산 감독 시절, 포항에 와서 초창기에는 화를 많이 냈어요. 그런데 화를 내도 답은 안 나오고 화만 더 나더라고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게 중요하죠. 감독이 뛰는 게 아니라 선수가 뛰는 거고, 제가 더 노력해서 선수들의 마음을 제 편으로 만들면 충분히 진심으로 움직인다고 믿어요.
Q. 포항스틸러스가 이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젊은 유망주를 솎아내는 일에 더 심사숙고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선수 수급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고, 사올 수 없으면 만드는 방법 밖에 없거든요. 1, 2년 하고 축구를 그만둘 게 아니니까 미래를 탄탄하게 하려면 유망주 육성을 위해 긴 안목이 필요해요. 사장님도 동감하고 고민 중이시죠.
포항=서호정 기자
영상편집=박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