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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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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제 한국 골프의 중심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비단 투어 프로의 얘기가 아니다. 투어 프로의 경우 이미 20여 년 전부터 여성이 중심이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무대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경우 남성 골퍼들을 중심으로 골프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골프가 비즈니스 모임의 성격이 강했고 그만큼 여성보다 남성들이 골프를 더 많이 즐겼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골프에는 뿌리 깊은 부정적 인식들이 있었다. 부패의 상징이자 부유층의 전유물같은 이미지 말이다. 골프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최근 변하고 있다. 바로 2030 젊은 여성 골프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이다.

 

EDITOR 방제일 

 

이제 한국골프의 중심은 남성 보다 여성이다. 소비 또한 남성보다 여성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투어 프로들 또한 여자 프로 선수들의 성적이 압도적이다. 한국 여성 골프의 도약은 흔히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박세리와 김미현 등의 활약에 기인한다. 역사적으로는 보다 오래된 인물들의 크나큰 역할을 했다.


먼저 한국 최초의 일반인 여성골퍼 1936년경 배구자로 알려져 있다. 배구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뮤지컬 스타였다. 그녀 이후 1957년 국악인 안비취가 일본에서 골프를 배운 후 본격적인 한국 여자 골퍼의 서막이 열린다.

 

안비취는 당시 한국 프로 골퍼인 김학영과 박명출 프로에게 레슨을 배웠고 이는 고 이병철 회장과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고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골프 사랑은 두 딸인 이인희, 이명희에게 이어진다. 

 

여자프로골프협회가 생기기 이전의 여자 프로들
지금의 KLPGA가 KPGA로부터 독립하기 전 故 이병철 회장의 두 딸은 한국 여자골프의 주요 인물이었다. 한국 최초의 여자 골프대회는 1976년 열린 부녀 아마선수권이었다. 당시 삼성가의 이인희, 명희 자매와 김우중 전 대우 회장 부인 정희자, 국화정, 조동순이 이 대희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이병철 회장의 장녀인 이인희는 2회(1978년) 3위, 4회(80년) 2위, 5회(81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어머니이자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은 이 회장을 닮아 ‘리틀 이병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이 안양 골프장을 만들 때 함께 보냈던 시간이 많았고, 함께 라운드하는 걸 즐겼다. 럭셔리하기로 손꼽히는 트리니티 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여자프로골프협회 탄생의 명암
재벌가를 중심으로 골프가 유행함에 따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여자 골프 활성화를 위해 협회 내 여자부를 신설한다. 이어 1978년 한국골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골퍼를 대상으로 프로테스트를 실시했다.

 

그해 5월 경기도 양주의 로얄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프로테스트에서 구옥희는 한명현, 강춘자, 안종현 등과 함께 프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1세대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이 테스트에 대해 고 구옥희 프로는 말한다.

 

“당시 남자 골프선수들이 프로테스트를 보는 가운데 한쪽에 10여 명의 여자 선수들이 모여서 테스트를 봤다. 지금과는 달리 매우 척박했던 환경이었다.“


프로란 이름을 달긴 했지만, 당시 여자프로골프는 남자들의 리그에 비해 규모도, 성적도, 대우도 초라했다. 1978년에는 KLPGA 선수권대회 1개만이 개최됐다.

 

이후 10년 동안 한 시즌 대회 수는 5∼7개에 불과했다. 구옥희는 1979년 쾌남오픈에서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80년 5승, 1981년 4승을 거두는 등 국내 1인자로 성장했다. 구옥희는 골프 인생의 전환점은 일본 진출이었다.

 

일본동포의 권유로 1983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의 문을 두드린 구옥희는 2005년까지 일본 무대에서 23승을 거두는 맹위를 떨쳤다. 특히 1988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 출전, 한국 선수로서 첫 우승자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구옥희와 같이 한국 1세대 골퍼인 강춘자는 1992년부터 KLPGA 행정가로 활동했으며 2020년까지 수석부회장을 하는 등 한국 여자골프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기도 했다. 

 

세계 3대 투어로 성장한 KLPGA와 MZ세대의 놀이가 된 골프
맨땅에서 시작한 한국 여자프로골프는 미국, 일본에 이어 이제 세계 3대 투어로 성장했다.

 

그 기간동안 수많은 스타 선수와 우여곡절이 있었다. 마치 한국에서 골프의 이미지와 같이 말이다. 골프는 이제 부패의 상징이 아니다. 부유층의 전유물도 아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는 스포츠이자 놀이가 됐다.

 

이렇게 골프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한 데에는 무엇보다 여성 골퍼의 영향력이 크다. 과거 여성 골퍼들은 편견에 저항하며 한국 골프의 역사를 개척했다.

 

지금의 2030 젊은 여성 골퍼들은 선배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기존의 틀과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골프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들의 참여와 노력으로 골프는 이제 남성 위주의 문화에서 벗어나 분명 여성이 주도하는 건전하고 건강한 문화로 변하고 있다. 이 변화는 골프장에서부터 이미 느껴지고 있다. 최근 많은 골프장이 골프장 공간, 디자인, 음식, 시설, 서비스까지 대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

 

많은 여성 골퍼들이 변화시킨 새로운 골프문화는 한국 골프를 한 단계 도약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