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에는 세계 최정상급 골퍼들이 총출동한다. 실력있는 선수 들이 모두 나오는 만큼 마스터스에서의 우승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누구나 다 알만한 선수이지만, 여전히 마스터스 우승이 고픈 선수가 있다. 로리 맥길로이다. 이번 2022 마스터스도 로리 맥길로이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맥길로이는 이번 마스터스 에서 누구보다 빛났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 면은 최종라운드 18번 홀(파4)에서 나온 맥길로이의 벙커 칩 인 버 디였다. 이 샷은 그린 재킷과 커리어 그랜드슬램(연도와 관계없이 4 대 메이저 대회 우승)을 향한 맥길로이의 결연한 의지였다. EDITOR 방제일 사진 PGA 공식 SNS 로리 맥길로이에게 ‘마스터스’란 어떤 대회일까. 가끔은 짓 궂게도그런질문을하고싶을때가있다.상대방이가장 싫어하는, 가장 받고 싶어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것. 모두가 바랐던 ‘넥스트 타이거 우즈’, ‘차세대 골프 황제’가 되지 못했지만, 로리 맥길로이는 꾸준히 성적을 내며 골프 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런 맥길로이의 커리어 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보다 그린 재킷을 입지 못 했다는 것이다. 2007년 프로로 전향하며 미국프로골프(PGA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제 한국 골프의 중심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비단 투어 프로의 얘기가 아니다. 투어 프로의 경우 이미 20여 년 전부터 여성이 중심이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무대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경우 남성 골퍼들을 중심으로 골프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골프가 비즈니스 모임의 성격이 강했고 그만큼 여성보다 남성들이 골프를 더 많이 즐겼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골프에는 뿌리 깊은 부정적 인식들이 있었다. 부패의 상징이자 부유층의 전유물같은 이미지 말이다. 골프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최근 변하고 있다. 바로 2030 젊은 여성 골프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이다. EDITOR 방제일 이제 한국골프의 중심은 남성 보다 여성이다. 소비 또한 남성보다 여성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투어 프로들 또한 여자 프로 선수들의 성적이 압도적이다. 한국 여성 골프의 도약은 흔히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박세리와 김미현 등의 활약에 기인한다. 역사적으로는 보다 오래된 인물들의 크나큰 역할을 했다. 먼저 한국 최초의 일반인 여성골퍼 1936년경 배구자로 알려져 있다. 배구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뮤지컬 스타였다. 그녀 이후 1957
모든 스포츠 경기에는 ‘드레스코드’가 있다. 이 드레스코드는 축구, 농구, 야구 등 단체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유니폼이라는 획일화된 코드로 나타난다. 반면 골프, 테니스를 비롯한 개인 위주의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각자의 스타일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스포츠웨어들을 입는다. 물론 이 스포츠웨어에는 각 선수들이 추구하는 ‘드레스코드’와 ‘아이덴티티’가 있다. EDITOR 방제일 몇 해전 골프는 ‘드레스코드’로 인해 홍역을 치렀다. 그 중심에는 지금은 은퇴한 골퍼 미셀 위가 있었다. 미셀 위의 패션이 도마 위에 오른 이유는 ‘노출이 지나치다’라는 다소 꼰대스러운 이유였다. 골프는 역사적으로 ‘신사’와 ‘숙녀’들이 즐기는 문화임을 표방해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골프는 점차 대중 스포츠화 됐고, 골프복도 점차 간소화돼 ‘스포츠’에 최적화 방향으로 점차 변했다. 그 결과가 현재 타이거 우즈로 대변되는 야구모자와 카라 셔츠, 그리고 긴 바지다. 여성 골퍼의 옷 스타일도 비슷한 형태로 바뀌 었다. 그 후 남자 선수는 반바지를 입고 골프를 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타협점으로 연습 경기에서 일부 반바지가 허용되기도 했다. 아마추어 또한 프로 선수 스타일의 ‘드레스코드’가
부상에서 회복한 ‘호랑이’가 필드로 돌아왔다. 타이거 우즈는 모든 골퍼들의 영웅이다. 축구에 펠레, 농구에 마이클 조던, 야구에 베이브 루스가 있다면 골프에는 타이거 우즈가 있다. 골프에서 우즈는 ‘불사신’과 같은 존재다. 그는 매 홀마다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는 ‘골프’ 그 자체다. ‘인간’ 타이거 우즈의 골프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황제’라는 칭호가 붙인 이들은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마찬가지다. 우즈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은 2009년 11월말 터진 섹스스캔들이다. 이 스캔들로 우즈는 당시 수많은 언론의 비판과 사람들의 비난을 견뎌야 했다. 그가 10년간 힘겹게 쌓아올린 명성이 단 며칠 만에 무너졌다. 우즈가 사라진 투어에는 우즈를 대신할 선수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우즈만큼 팬들을 열광시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은 볼을 살려야 하는 골프에서 우즈는 매 라운드, 매 홀마다 일희일비하며, 결국 우승을 이루어내는 승부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승부사 우즈에게 지난 2020년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골프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로 그 교통사고다. 우즈의 사고는 또다시 언론과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먹잇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