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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라는 이름의 신화

골프에는 수많은 매너와 에티켓이 있다. 필드에서 경기를 하는 골퍼는 자기의 스코어를 직접 적고 관리하며 골프의 룰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프로 뿐 아니다. 대회장을 찾은 관중들도 경기를 관전함에 있어 기본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골프 대회를 관전하러 온 사람들은 관중이 아니다. 대회장을 찾은 이들을 골프에서는 야구나 축구, 농구와 달리 미술관을 뜻하는 ‘갤러리’라 부른다.

 

이는 페어웨이 양편으로 늘어난 모습이 화랑을 연상시키고 미술품을 관람하듯 조용히 플레이를 지켜본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신사의 스포츠라 불리며 오랜 기간 그들 스스로 일종의 품격을 만들어온 세월이 갤러리라는 말에 묻어있다.

 

위대한 미술 작품을 보듯 정숙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도 하다.
 

 

지금껏 선수들도 스폰서도, 주최 측도 모두 관중들에게 매너와 에티켓을 요구하기만 했다. 그들의 중요함을 몰랐다. 언제든 대회를 열면 관중들이 대회장을 찾아줄 것이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믿음의 신화를 깨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신화가 깨진 이후에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 이제 골프장은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갤러리’는 이제 골프를 미술관을 관람하듯 하지 않는다. 


EDITOR 방제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프로야구다. 프로야구도 팬 서비스로 큰 홍역을 앓았다. 매년 위기론이 대두되곤 했다. 프로 농구나 프로 축구는 과거에 비해 
팬들이 줄어들면서 시즌 규모도 줄었다. 특히 프로 축구는 거의 지방자치단 
체의 보조금으로 운영되다시피 한다. 

 

코로나19는 스포츠에서 이 팬들의 응원 문화를 빼앗아 갔다. 팬들의 응원 
문화가 없는 스포츠는 그야말로 타클라마칸의 사막처럼 황량했다. 

 

사막 속에도 오아시스가 있듯 코로나19 이후 골프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됐다. 그 어느 때보다 대중화되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인기를 방증하듯 대회장에 ‘갤러리’ 입장이 허용이 되자마자 연일 수많은 갤러리들이 대회장을 찾으며 활기를 뛰고 있다. 

 

과거 골프를 즐기는 동호회나 개인 팬, 혹은 한 선수들의 팬클럽이 주로 대회장을 찾았다. 지금은 훨씬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대회장을 찾는다. 대회장에는 부부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물론, 연인이나 친구끼리 대회장을 찾은 갤러리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연령층도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젊어졌다. 특히 여성 관중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선수들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진풍경도 연출됐다. 마치 자신이 골프장을 온 것과 같이 골프웨어를 멋지게 차려 입은 갤러리들도 많았다. 이들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감상하 
면서도 자신들의 ‘셀카’를 찍으면서 대회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들은 개인 SNS나 블로그, 나아가 골프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직관 후기를 인증했고, 선수들의 모습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해 공유하고 있다. 대회 이후 갈만한 주변 맛집이나 대회 기념품이나 굿즈, 주차장 이용 및 대중교통 이용 방법 등도 공유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문화가 정착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몇몇 갤러리들의 행동은 골프의 매너에, 필드의 에티켓에 어긋나기도 한다. 변화에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이 변화의 시간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결국 신화가 된다. 

 

골프에서 ‘갤러리’라는 용어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여타 스포츠와 달리 그 중요성이 지나치게 폄하되기도 했다. 이런 시선이 이제 변하고 있다. 

 

‘갤러리’라는 말보다 오히려 이제는 팬이라는 대중적인 말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콘서트를 찾듯 대회장을 방문한다. 주최 측도 이제 이 점을 한껏 반긴다. 그만큼 더 성숙한 골프 문화가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스포츠의 근간은 팬이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에서 전설을 썼던 연세대학교의 최희암 감독은 말했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봤냐? 너희들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데도 대접 받는 이유는 팬들이 있어서다.” 

 

그 말 그대로 받아드리기에는 어폐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어떤 스포츠도 팬이 없다면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갤러리’들이 있기 때문에 선수 들의 플레이는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미술 작품이라 해도 그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냥 촌부가 그린 습작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