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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태 안전칼럼] 인명 살리는 심폐소생술, 유치원생도 한다는데 골퍼들은?

 

현장 목격자에 의한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은 최상의 응급조치다. 급성심정지 상태에서 1분 안에 시행하면 생존율이 97%나 되지만, 4분 이내면 50%로 떨어진다. 10분이 지나면 의사가 심장을 살려내더라도 뇌사 상태를 면하기 어렵다.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익혀야하는 이유다.


WRITER 이원태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역동적이다. 사람의 움직임이 많은 나라다. 무엇이든지 빨리 배우고 익히는 근성과 노력 때문에 활동량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예고되지 않은 질병과 사고가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사고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장소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
믿기지 않는 사고가 대한민국, 그것도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핼러윈을 맞아 이를 즐기려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50여 명이 깔려 숨지고, 130여 명이 다친 대형 참사다. 사고 경위를 떠나 너무나 참담하고 안타깝다.


당일 사고 인명 피해 규모도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치다. 1960년 서울역에서 설 귀성객들이 계단에서 밀려 30여 명이 사망한 사고와 1965년 광주 전국체전 개막식 때 입장객들이 좁은 문으로 한꺼번에 몰려 12명이 사망했던 사고보다 훨씬 끔찍한 압사 사고였다.

 

무수한 재난을 봐왔지만, 이번 참사처럼 어처구니없던 적은 없었다. 화재·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누군가 주먹을 휘두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뒤엉키면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대형 압사 사고 뉴스를 간헐적으로 접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으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폐소생술 골든타임 4분
사고 직후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여기에 서로 밀고 밀치면서 깔리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고 넘어진 사람들이 뒤엉키고 겹겹이 쌓이면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맨 아래에 깔린 피해자를 빼내려 했으나 위에 뒤엉킨 사람들의 무게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구조대가 곧바로 사고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고, 심정지 환자를 살리는 데 필요한 심폐소생술(CPR) ‘골든타임 4분’도 지키기 어려웠다.


인근 소방서와 사고 현장은 100m 거리 정도지만, 워낙 인파와 차량이 몰려 있어 구급대원들이 도착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비돼 제대로 구조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AED+CPR=생존율 5배
심정지와 호흡곤란 환자가 300명 가까이 나오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구급대원도 턱없이 부족해 시민들까지 가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모두의 조력이 필요한 심폐소생술이었지만 도움을 망설이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현장 반경 500m 이내에 비치된 AED는 3대에 불과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선 수백 명이 심정지로 쓰러졌고 이들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시민들이 “AED 없어요? AED 빨리 갖다 주세요”라고 외치자 다른 시민이 “소방차 와야 쓸 수 있어요”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응급구조사 활동을 하는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태원역 내부, 이태원파출소, 이태원1동 주민센터에 3대가 있었고, 2대만 사고 당시 사용됐다. 늦은 시각 문이 굳게 닫힌 주민센터 민원실 비치분은 접근이 불가했다.


멎은 심장에 AED와 심폐소생술을 함께 사용하면 생존율이 45%까지 증가한다. 심폐소생술만 할 때보다 약 5배 높은 수치다. ON 버튼만 누르면 음성으로 사용법 안내가 재생되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골든타임 놓쳐 목숨만 간신히 건져
지난주 경기도 여주의 모 골프장에서 회사원 강 모(64세) 씨는 새벽 라운드 두 번째 홀에서 티샷을 준비하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잡고 쓰려졌다. 건장한 체격에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열혈 중년으로 골프와 테니스로 단련된 그였지만 심근경색에 무너지고 말았다.

 

페어웨이를 걸어가면서 새벽 공기로 숨이 차면서 가슴이 뻐근해짐을 느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동반자들은 캐디를 통해 119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현장에서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병원으로 이송돼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골든타임의 기회를 놓쳐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할 줄 안다는 심폐소생술을 정작 가까이 있는 동반자가 할 줄 몰라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심정지 8.5%만 기저질환자
심장마비는 대부분 가정에서 발생하지만 의외로 야외 활동 중에도 많이 발생한다. 특히 요즘같이 환절기에 심장마비(심정지)의 발생 빈도가 높다. 한 조사에 따르면 심정지 사고자 중 8.5%만이 이미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심정지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2021년 심장질환으로 31,569명이 사망(통계청 2022.9.27.)했다. 생존율은 겨우 8.7%. 이중 뇌 기능 회복률(정상적인 활동 가능)은 100명 중 5.4명으로 나타났다. 100명이 심장질환으로 응급 상황에 처하면 겨우 5명만 산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생존율 20명에 비해 초라한 생존율이다. 차이는 초기 응급처치 즉, 심폐소생술 교육이다.


사람 목숨 살리는 심폐소생술
통계에 따르면 심정지의 70% 정도는 의료진이 없는 장소에서 발생한다. 심장의 관상동맥 경화에 의한 급성심장질환자의 45% 정도는 병원 이송 전 단계에서 사망한다. 10분 이상이 지날 때까지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지 않았을 경우 소생률은 거의 0에 가깝게 떨어진다.


반면 심정지로 쓰러진 사람에게 4분 이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8분 이내에 전문적인 치료(ALS)를 한 경우 43%가 무사히 퇴원한다.


갑자기 심정지로 쓰러진 환자에게 즉각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생존율은 최고 3.3배, 뇌 기능 회복률은 최고 6.2배 상승한다.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익혀야 할 이유다.


60만 평에 AED는 고작 1대
이태원 사고 당시 환자는 300명인데 AED는 3대만 운용할 수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지만, 골프장 사정도 별반 차이가 없다. 골프장마다 모두 비치는 되어 있지만 거의 30만 평의 넓은 지역의 운동시설에 고작 1대뿐이다. 60만 평 규모의 36홀 골프장에도 AED는 1대뿐인 경우가 태반이다.

 

골프장 내장객 대부분은 심장질환의 가능성이 큰 시니어들이 많다는 걸 고려하면 최소한 그늘집마다 1대씩은 있어야 한다.


골퍼가 특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는 ‘겨울철’ 이다. 허혈성 심장 질환(급성 심근경색·협심증 등) 사망자 수는 겨울철이 여름철보다 월평균 300명가량 더 많다. 급성 심근경색 등으로 2021년 1월 사망한 사람(1,333명)이 같은 해 8월(1,044명)보다 289명 더 많았다. 연간 50명 이상이 골프 도중 혹은 직후에 심정지 사고로 사망한다. 골프장 사망사고 1순위다.
 


겨울철 전조증상에 주목하자
심정지(심장마비)는 혈관이 축소되는 겨울철 아침에 많이 발생한다. 추운 환경은 혈전이 더 잘 생기면서 심장에 위험 가능성이 커진다. 통상 1시간 전 생기는 ‘전조증상’에 주목하면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

 

라운드 도중 묵직한 가슴 통증, 가슴이 뛰고 숨이 찬 증상이 있으면 골프를 중지하고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통상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것이 문제다.

 

심정지(심장마비)는 결국 ‘생활습관병’이다. 평소 고혈압·당뇨가 있거나 비만·흡연자 등 심혈관질환 위험군은 이런 전조증상이 발생할 경우, 즉각 병원을 찾아야 한다. 흉통이 아닌 경우 심장질환이라고 생각 못 해 일을 키우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심정지(심장마비)는 통증이 20분 이상 지속되면 혈관이 좁아지는 ‘불안정 협심증’, 30분 이상 되면 혈관이 완전히 막히는 ‘심근경색증’일 수 있으니 당장 라운드를 중단하고 즉시(1시간 이내) 응급실로 가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사이 심폐소생술과 AED 같은 응급조치가 적절히 이루어진다면 소중한 주변인의 생명을 지킬 확률이 커진다.

 

심폐소생술은 내가 아닌 가족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이다. 만약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누군가가 나를 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신뢰가, 든든함마저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