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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골퍼들의 전성기

골퍼는 정신력으로 하는 것인가, 체력으로 하는 것인가?






보통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신체능력이 떨어진다. 이는 운동선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젊은 시절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떨쳤어도, 3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된다면 세월의 무게를 이기기 어렵고, 20대 시절의 몸놀림을 보여주기 힘들다. 따라서 개개인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운동선수들은 대략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신체능력의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골프는 좀 예외다. 나이와 상관없이 전성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에게 골프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운동을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7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 여자오픈에서 브리타니 랭이 2016 LPGA 시즌 최고령 우승자다. 랭은 1985년 8월 22일생으로 우승할 당시 만 30세의 선수였다. 아직 만 30세 밖에 되지 않는 랭이 최고령 우승이었던 만큼 지난 시즌은 유독 20대 초중반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랭을 포함한 지난 해 LPGA 우승자의 평균 나이는 만 22.3세였다. 1997년생인 리디아 고와 브룩 핸더슨을 필두로 1995년생인 아리야 주타누간. 전인지 등은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선수들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에 와서 급격히 두드러지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LPGA 투어는 베테랑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30대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통산 72승에 빛나는 안니카 소렌스탐은 만32세였던 2002년 개인 최다승인 11승을 거뒀고, 30대 중반에 접어든 2005년에도 10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최근 LPGA 투어에서는 30대 중반 이상의 선수들의 활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크리스티 커나, 크리스 타뮬러스, 수잔 페테르센 등이 30대의 기수로 여전히 LPGA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는 못하다. 
 

 
선수들의 나이가 어려지는 것은 투어에 긍정적인가?

[리디아 고와 브룩 헨더슨]

선수들의 나이는 계속해서 어려질 전망이다. 비단 골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베테랑들은 여전히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추세는 점차 어려지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반짝 스타들이 출몰하고 있으며, 전성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불꽃처럼 빠르게 빛나고 사라지는 선수들도 부기지수로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스포츠 자체의 규모가 커진 것과 관련이 깊다. 단적인 예로 LPGA 투어 규모는 1950년 창설 당시 총 상금은 5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1960년 18만 6700달러, 1970년 43만 5040달러였던 것이 1990년대 들어 처음으로 천만 달러를 넘긴 1710만 달러가 됐다. 지난 해 상금 규모는 역대 최대 규모인 6310만달러(약 733억원)에 달했다. 올해 LPGA 규모는 시즌 35개 대회에 6735만 달러(약 790억원)으로 지난 시즌에 비해 60억원 가량 증가했다. LPGA 규모가 천문학적 단위가 됨에 따라 프로 골퍼가 되려는 선수들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상금이 그리 많지 않았떤 시대에 LPGA에 참가들의 배경은 다양했다. 간혹 가정 주부들이 소일거리로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전문화되고 세분화됨에 따라 프로 골퍼는 전문적인 직업군으로 인식되고 변화했다. 이에 따라 유년 시절부터 골프를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 졌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유망주들이 프로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을 가속화 시킨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한국의 골프 대디들이다. 1998년 박세리가 U.S 오픈을 우승한 이후 LPGA에 진출을 꿈꾼 ‘세리 키즈’ 현상이 가속화됐다. 그 후 제2의 박세리를 꿈꾸며, 수많은 어린 소녀들이 골프를 시작했고, 그들 중 특출난 재능을 보인 이들이 LPGA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투어에 데뷔했던 ‘세리 키즈’들의 나이는 20대 전후였다. 대학을 포기하고 미국 무대로 건너가 투어 생활에 전념하며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자, 이런 현상은 하나의 문화로 고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투어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외국 선수들도 덩달아 한국 선수들과 같은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LPGA 무대에 데뷔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나, 이제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아마추어로 LPGA에 신고식을 치룬 후 곧장 LPGA 직행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리디아 고와 같이 골프 천재로 불리는 브룩 핸더슨 또한 플로리다 주립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15년 포틀랜드 클래식을 우승한 후 곧장 프로로 전향해 지난 해 동갑인 리디아 고와 더불어 향후 LPGA 투어를 이끌 재목으로 성장하고 있다. 

 
점차 빨라지는 골퍼들의 전성기 




30대 후반이 되면 점차 은퇴를 하는 축구, 야구, 농구와 달리 골프는 선수 생명이 무척이나 긴 운동으로 그동안 각광받았다. 지난 2009년 디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톰 왓슨의 사례가 그 단적인 예다. 당시 톰 왓슨은 환갑의 나이였다. 60대 선수가 젊은 선수와 동일한 룰에서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운동은 아마 골프가 유일할 것이다. 

골프의 경우 남자 선수들의 전성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다. 신체적 능력은 20대 초중반이 월등할 수 있으나 경험이 쌓으면서 점차 성숙해진 경기 운영이 최고의 경기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은퇴의 기로에 서있는 통산 79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또한 자신의 통산 승수 절반에 해당하는 39승을 30대에 거뒀다. 우즈는 건강하게 투어에 참가했던 매 시즌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좀 더 세분화해 전성기를 살펴본다면, 24세였던 1999년과 2003년까지를 1차 전성기로, 30대에 접어든 2005년부터 2009년까지를 2차 전성기로 구분할 수 있다. 우즈는 이 두 기간동안 각각 32승(메이저 7승)과 31승(메이저 6승)의 성적을 기록했다. 신체 능력이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여자 선수들은 전성기는 대개 20대 중·후반이었고 비교적 오랜 기간 기량을 유지했다. 안니카 소렌스탐은 26세이었던 1995년 LPGA 데뷔해 37세이던 2007년 은퇴를 했다. 데뷔 12년 동안 메이저 10승을 포함해 72승을 성적을 기록한 소렌스탐은 여자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억돼 있다. 반면 투어에서 가장 오랫동안 꾸준한 성적을 낸 선수는 캐리 웹이다. 캐리 웹은 지난 2014년 미국과 유럽, 호주 투어에서 3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40세가 됐던 2014년까지도 건재함을 과시했던 캐리 웹은 1990년대 박세리 그리고 소렌스탐과 함께 LPGA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캐리 웹은 1974년 20세의 나이로 프로로 전향해 1995년 유럽 투어 신인상을 차지했다. 그 이듬해인 1996년 본격적으로 LPGA 투어에 진출한 캐리 웹은 그 해 4개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며 상금왕과 신인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화려한 첫 해를 치뤘다.

그 이후에도 웹은 1997년 3승, 1998년 2승, 1996년 6승, 2000년 7승을 거두었고, 2001년에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최연소 달성 기록까지 세웠다. 당시 웹의 나이는 불과 26세였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2001년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웹은 투어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은퇴한 소렌스탐이지만, 30대 후반까지도 투어에서 좋은 모습을 선보였다. 그 반면, 통산 27승을 거두고 은퇴한 로레나 오초아는 2003년 22세에 투어에 데뷔해 2006년 6승, 2007년 8승, 2008년 7승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상금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다 2010년 오초아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LPGA 투어 8년차에 불과했던 오초아는 2009년 LPGA 투어에서 당시 신예로 무서운 돌풍을 보였던 신지애에 가려 부진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투어에서 3승이나 거두었고, 지난 3년간 랭킹 1위를 지키고 있었다. 오초아는 은퇴 기자 회견에서 “3년간 지켜온 랭킹 1위 상태에서 은퇴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멕시코에서, 내 집에서 작별을 고하는 꿈꿔왔다. 매일의 삶을 즐기며 살고 싶다. 경기를 계속하면 그것이 불가능하다. 지난 몇 년 간 가족과 시간을 갖지 못했기에 은퇴 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발표 당시 1981년 생이던 오초아는 아직 서른이 되지도 않던 시기였다. 

 
젊어지는 LPGA 투어, 설 자리 잃어가는 베테랑들 




화려했던 짧은 전성기에 은퇴를 결심한 오초아의 은퇴 이후 7년이 시간이 흐른 지금 와 돌이켜보자면,  오초아의 은퇴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LPGA 투어의 연령은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LPGA 투어는 현재 이제 갓 20대를 넘긴 선수들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따라 30대, 40대 골퍼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고, 투어에서 구경조차 어려운 ‘기념물’들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2016년 기준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40대 이상 골퍼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40대 골퍼에 비하 그 수는 비교적 많지만, 30대 골퍼들 또한 점차 자리를 투어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40대 골퍼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런 현상이 유독 두드러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빡빡한 투어 스케쥴도 한 몫하고 있다. 이번 시즌 개최되는 35개 대회는 1년 52주 기준, 비시즌을 제외한다면 거의 매주 대회가 열리는 것이라 바도 무방할 정도다. 매주 3회에서 4회 18홀을 도는 것은 극도의 피로감과 더불어 부상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그 뿐 아니라 이동 시간과 비행 거리까지 감안한다면 체력적인 부담감은 상상 이상이다. 그럼에도 대회에 출전해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은 프로에게 있어 모멸감과 자괴감이 들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선수들은 더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가족에 대한 고민도 은퇴 배경의 이유가 된다. 가족과 일,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의 어려움은 일반인에게도 투어에서 활동하는 전문 선수들에게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변화에 대해 현역 최고령 골퍼인 줄리 잉스터는 “나이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의 도약이 부럽지 않다. 80년대에 활약했던 선수 중에 지금도 필드 위에 있는 선수는 없지 않은가. 현재 LPGA 입성하는 선수들의 나이는 젊어지고 있다”고 말하며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베테랑들 

- 캐리 웹 

변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LPGA에서 활약하는 베테랑들이 있다. 먼저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캐리 웹은 꾸준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다. 2001년 커리어 그랜드 슬램 이후 우승 행진은 한풀 꺾였지만, 커리어 전체로 보면 슬럼프를 겪은 적은 거의 없다. 2002년에도 2승, 2003년과 2004년에 각 1승을 거뒀다. 그 후에도 2006년에는 메이저 대회를 포함 5승, 2009년 1승, 2011년 2승, 2013년 1승을 하며 꾸준히 승수를 챙기고 있다. 이런 점에 대해 웹은 “지금 당장 은퇴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젊고 내 안에 에너지가 많아 남아있다. 나는 단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우승할 수 있다는 느낌 없이는 대회에 나서지 않는다”고 말하며 선수로서의 자세와 각오를 밝혔다. 

 웹은 골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월에도 웹은 프로 데뷔전 장소였던 호주 여자오픈에 나섰다. 만 42세였던 웹은 대회 출전자 중 최고령이자, 최다 우승자(5회)이였다. 웹은 자신에게 내셔널 타이틀타이틀은 호주여자오픈에 프로데뷔 첫 해인 1994년 출전한 이래 23년 째 매년 빠지지 않고 출전하고 있다. 올해 대회 코스인 로열 에들레이드 골프클럽에는 19세 때 경기를 치른 이후 무려 21년 만에 골프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웹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호주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로열 에들레이드 골프클럽은 프로 데뷔전을 치른 장소이기 때문에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이라 회상했다. 이어 웹은 웹은 “당시 골프장이 매우 덥고 건조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데뷔전이라 매우 긴장했는데 다행히 중위권 성적으로 마칠 수 있어 기뻤다”고 회고했다. 데뷔전 당시 우승은 훗날 라이벌이 된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차지했으며 웹은 공동 28위를 기록했다. 웹은 “19세 때 로열 에들레이드 골프클럽에서 경기한 후 이번이 두 번째다. 매우 흥분되지만 이번엔 데뷔전처럼 긴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웹은 작년 이 대회에서 노무라 하루(일본)와 리디아 고(뉴질랜드)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아쉽게도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3위라는 성적 또한 웹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무척이나 놀라운 순위다. 웹은 LPGA투어에서 메이저 7승을 포함해 통산 41승을 현재 기록 중이며 이는 현역 선수 중 최다승이다. 웹은 또한 소렌스탐에 이어 통산 두 번째로 생애 상금 2000만 달러(약 227억원)를 돌파했으며 상금 중 일부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이 후진 양성의 대표적 수혜자가 바로 호주 교포 이민지다. 아마추어 시절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이민지는 프로 무대에 들어서도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LPGA 무대에서 활약 중에 있다. 그는 호주 퍼스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이름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이민지와 웹은 오래된 인연을 자랑한다. 이민지는 12세 때 처음 웹과 마주했다. 이민지는 2013년과 2014년 캐리 웹 스콜라십에 선발돼 후원을 받았다. 웹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이민지는 2년 연속 US여자오픈을 참관했고, 웹과도 연습라운드를 하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런 웹의 도움에 힘입어 이민지는 성공적으로 LPGA 무대에 데뷔할 수 있다. 비단 이민지 뿐만이 아니다. 웹은 지난 2008년부터 호주골프협회와 함께 ‘캐리 웹 시리즈’라는 주니어 골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년 13개 대회를 개최하며 성적은 호주 아마추어 랭킹 시스템에 포함된다. 매년 5월 시리즈가 끝나며 ‘톱2’를 선정해 웹은 이들을 집중 지원한다. 이런 스콜라십에 선발된 선수들은 앞선 이민지와 같이 미국을 방문해 웹의 경기를 관전하고 함께 훈련을 한다. 모든 경비와 비용은 웹이 부담하고 있다. 웹은 골프 유망주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동시에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켜 호주 골프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스콜라십의 도움을 받은 선수들  중 세계랭킹 50위 안에 이름을 올릴 경우 자신의 수익 중 5~7%를 캐리웹 재단에 환원해 후진 양성에 기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선순환 제도의 확립을 통해 웹은 골프 강국으로서의 호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골프 선수로서나 인생 선배로서나 웹이 호주에서 존경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줄리 잉스터 



줄리 잉스터는 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 중 최고령이다. 1960년생인 잉스터는 내일 모레면 환갑이다. 이런 잉스터가 1983년 LPGA 데뷔해 강산이 3번 변한다는 30년 동안 누구보다 꾸준히 활약하며 통산 33승을 거두고 있는 “영원한 현역”이다. 잉스터가 이렇게 골프에서 장수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골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0년 브라이언 잉스터와 결혼한 그는 1990년 큰 딸 헤일리, 1994년 작은 딸 코리를 낳은 뒤에도 변함없는 경기력을 유지했다. 출산 전 LPGA 투어 15승을 거둔 그는 엄마가 된 뒤 메이저 2승 포함, 16승을 거뒀다. 두 아이를 투어에 데리고 다니면서 밥을 직접 해 먹이는 등 1인 2역을 해내는 억척 엄마였다. 2006년 3월 46세의 나이로 세이프웨이 인터내셔널에서 통산 31승을 거둔 잉스터는 이후 우승은 못했지만 투어 무대를 꿋꿋이 지켰다. 2012년 1월 오른팔 뒤꿈치 옐보우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코스에 설 수 없게 되자 코스 코멘테이너로 변신해 투어를 떠나지 않았다. 부상을 떨친 뒤 스윙 교정과 체력 훈련으로 다시 코스에 선 그는 자식뻘 되는 선수들 사이에서 여전히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열린 스윙잉 스커츠 LPGA 클래식에서 공동 15위를 했고, 한 주 뒤 열린 노스텍사스 슛아웃에서도 우승권에서 플레이했다. 노스텍사스 슛아웃 우승자인 박인비는 큰 딸보다 2살 밖에 많지 않았다. 박인비의 어머니 김성자씨는 잉스터보다도 어린 1963년생이다. 잉스터는 “10대도, 50대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게 골프고 그게 큰 매력”이라며 “농구, 사이클 등 운동을 즐기면서 체력을 기른다. 지난 해부터 대회 출전 수를 15개 안팎으로 줄이면서 체력 안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잉스터의 경쟁력은 여전했다. 2라운드까지 1타 차 공동 2위에 오르면서 2003년 BMO 파이낸셜그룹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베스 다니엘(46세 8개월 29일)이 세웠던 LPGA 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 치울 뻔 했다. 평균 250야드에 달한 드라이브 샷 비거리는 젊은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았고, 위기 상황의 리커버리 샷은 연륜만큼 노련했다. 하지만 골프는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4라운드,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는 더 어렵다. 3라운드 중반까지 선두권이었던 잉스터는 후반에만 보기 3개를 쏟아내며 2타를 잃었고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최종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잡았지만 우승자인 박인비와는 6타 차이가 났다. 그러나 잉스터는 행복한 미소로 인터뷰 존에 섰다. 잉스터는 “우승을 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여전히 어린 선수들과 함께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힘이 닿을 때까지 코스에 서면서 많은 선수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 부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 카트리나 매튜 




1969년 8월생인 카트리나 매튜는 1995년에 LPGA투어에 데뷔, 지금까지 현역 선수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LPGA투어에서는 통산 4승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그 중에는 메이저대회인 2009년 브리티시 여자오픈도 있다.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카트리나 매튜는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과 경쟁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자신의 캐디백을 매고 있는 남편 그레임과 언제나 함께 한다. 그는 "골프에서 나이는 장벽이 아니다"고 말하며 언제나 우승이 목표라고 다짐한다. 현재 LPGA투어 역대 최고령 우승자는 2003년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46세 8개월 29일의 나이로 우승한 베스 대니얼(미국)이다. 카트리나 매튜는 베스 대니얼의 최고령 기록을 깨기 위해 늘 노력한다. 매튜는 가족과 골퍼 생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투어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나는 희생을 통해 골프와 가족들과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필드 위에 서기 위해 많은 시간을 연습에 투자한다. 그리고 매년 대회에 참가할 때 마다 골프 실력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그는“오프 시즌 동안 적어도 한 달 정도는 골프클럽을 손에 쥐지 말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면 한다”며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했다. 

 
베테랑들의 롱런 비결

그렇다면 케리 웹, 줄리 잉스터, 카트리나 매튜이 이토록 오랫동안 투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웹은 체력 훈련을 첫 손에 꼽았다. 웹은 과거 전성기 때는 체력 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25세가 되면서 스트레칭을 처음 시작했고 최근에는 필라테스에 푹 빠졌다. 웹은 “내가 젊었을 땐 골프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이 별로 강조되지 않았고 샷을 하기 전 허리를 몇 차례 돌리는 것이 스트레칭의 전부였다”며 “하지만 요즘은 웨이트 트레이닝이 골프의 한 부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회 때마다 물리치료사를 동반한다는 웹은 “내 인생에서 요즘처럼 몸매를 탄탄하게 가꾼 적이 없다”며 “이 나이에 몸 상태를 유지하면서 부상을 피하려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늘리기 위해서는 골프 훈련 시간을 어느 정도 줄여야 했는데 이것이 웹에게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웹은 “예전에는 샷 훈련을 많이 하면 그 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이제 훈련의 종류가 달라졌고 골프 연습장에 오랫동안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15년 동안 함께 훈련해온 트레이너 크리스 바나(미국)가 웹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량을 조금씩 늘려갔다. 웹은 4년 전부터 필라테스를 추가했는데 “무척 재미있어서 강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체력 단련보다 더 힘든 것은 ‘정신의 단련’이었다. 웹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경쟁심이 매우 강했던 한편으로 부정적인 사고에 끊임없이 시달려 왔다며 “내 안에 나를 괴롭히는 괴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한동안 우승이 없던 시절엔 “경기 도중 기차가 두 귀 사이를 통과하는 것처럼 머릿속이 시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완벽주의자인 웹은 스스로 매우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자신이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쉽게 좌절했다. 모든 기술과 조건이 100% 완벽할 때에만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넌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야’라고 말하며 심하게 자책했다고 한다. 2005년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 연설에서 “골프의 매력은 하루는 사랑스럽고 하루는 증오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스에서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든지 나는 다시 일어나서 도전할 것이다. 완벽에 결코 이를 수 없다고 해도, 이것이 내가 완벽에 가까워지는 나만의 방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웹은 안드레 애거시(테니스), 이안 소프(수영) 등 스포츠 스타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심리 코치와 함께 긍정적인 멘탈을 갖는 훈련을 했다. 스윙 교정보다 생각을 바꾸는 과정이 훨씬 더 어려웠고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웹은 “이제는 몇 번 우승했는지, 세계 랭킹 몇 위에 올랐는지보다 나 자신에게 우승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었는지로 스스로를 평가한다”며 “젊은 선수들을 따라잡으면서 우승 경쟁에 뛰어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회에서 ‘톱10’에 들어도 전에는 왜 우승을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에게 화를 냈지만 지금은 좋은 플레이를 한 것에 대해 감사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웹은 “젊은 시절 나는 우승하고 나서도 그 결과를 즐기지 못한 채 곧바로 다음 우승을 향해 도전했다”며 “그런 식으로는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나가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경기 도중에 스윙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공을 홀에 넣을 방법만 찾는다면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때때로 샷이 좀 흔들려도 이제는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풍이 불거나 햇볕이 내리쬐는 등 어려운 조건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쉽고 편한 코스에서는 ‘상황이 좋으니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좀더 완벽해지려고 애쓰게 된다”며 “힘든 상황에선 기술적인 생각을 덜 하게 되고 머리를 비울 수 있기 때문에 집중이 더 잘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웹은 “내 문제점 중 하나는 스스로 지나치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스트레스 받을 만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엔 경기하면서 만족하거나 즐거운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웃는 일이 드물었다”며 “계속 그런 식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면 괴로워서 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시즌 중엔 골프에 모든 것을 쏟아 붓지만 시즌이 끝나면 골프를 완전히 떠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만의 롱런 비결 중 하나다. 웹은 주로 시즌 초반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경향이 있다. 대회가 없는 겨울 동안 부모, 자매 등 가족과 함께 취미를 즐기며 스스로 생기를 되찾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 낚시광인 웹은 틈만 나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황새치, 백새치같은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온다. 휴대폰 배경 화면엔 늘 커다란 물고기 사진이 담겨 있다고 한다. 웹은 “물고기와 씨름하면서 인내심과 강인함, 불굴의 의지를 배운다”고 했다. 매년 휴식기에 바다에서 몇 달씩을 보내고 새로운 시즌을 맞아 코스로 돌아오면 보기를 하거나 버디를 놓치는 실수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기분이 새로워진다고 한다. 웹은 “15년 전이라면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라며 “다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이제는 그것을 위해 죽고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내 골프를 즐기고 있지만 이제는 골프장 안에서의 일을 골프장 밖으로 갖고 나오지 않는다”며 “골프 성적과 나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히 분리하고 골프 이외의 삶을 충분히 즐기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잉스터 이런 삶과 골프의 균형을 롱런 비결로 꼽았다. 그는 “삶과 골프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후배들에게 늘 말한다. 그는 결혼한 뒤 3주 만에 출전한 대회에서 투어 첫 승을 올렸고, 두 딸을 데리고 다니며 투어에 출전하는 등 가족과 골프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 애썼다. 명예의 전당 회원인 잉스터는 주로 초청선수로 대회에 참가한다. 지난해 13개 대회에 출전해 아홉 번 커트를 통과했다. 시간이 날 때는 주로 골프방송에 출연해 코스 해설과 아마추어경기 해설자로 활동한다. 틈틈이 시니어투어인 레전드투어에도 나가기도 한다. 

 
한국의 캐리 웹, 줄리 잉스터를 기다리며...





한국의 여자 골퍼들은 세계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 들어 선수들의 세대교체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LPGA가 젊어짐에 따라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 여자 골퍼 중 비교적 오래 활약한 이는 박세리다. 박세리는 지난 해 7월 공식적으로 프로 골퍼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1977년생인 박세리는 한국나이로 38세의 나이로 은퇴를 한 것이다. 박세리는 LPGA 투어에서 25승을 올리며 2007년에는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25승은 아직 후배들도 깨지 못한 한국인 최다승 기록이다. 현재 LPGA 투어에서 맹활약을 하는 선수들은 거의 모두 박세리의 우승 모습을 보며 골프 선수가 됐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LPGA 투어 6차례 연장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1998년 LPGA 투어 신인상, 2003년 최저타수상을 받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그렇기에 박세리의 은퇴는 아쉽기만 하다. 그가 계속해서 대회에 출전하고 필드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버팀목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세리의 뒤를 잇고 있는 박인비는 지난 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국내 기자 회견장에서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은 은퇴 시기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박인비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은퇴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지금은 골프가 즐겁고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며 골프선수로서 그 커리어를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박인비의 공식 발언에도 골프 기자 및 대중들은 그가 향후 몇 년안에 은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들은 박인비의 부상과 그가 더 이상 골퍼로서 목표가 없기 때문이라고 섣부른 추측을 하는 것이다. 물론 박인비는 골퍼로서 전성기는 조금 지났지만 그래도 언제든 우승할 수 있을만큼 빼아난 골프실력을 자랑한다. 박인비의 골퍼로서의 은퇴 시기는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여자 골퍼로서 30대에 들어서면 넘어서서 자연스럽게 성적이 다운되면 서서히 은퇴수순을 밟는 것이 어느덧 정석이 되어 버렸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젊은 능력자들의 세상이다. 아니, 스포츠가 삶의 축소판이듯 세상이치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들의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스포츠가 다양한 인생 역경을 극복한 살아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나 편견, 불리함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감동은 스포츠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지난 해 ‘이제는 한물갔다’, ‘올림픽에 출전권을 양보해야 한다’는 편견을 들었던 박인비는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자란 어린 세대는 이제 ‘인비 키즈’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를 일이다. 박인비가 됐든 혹은 다른 누군가든 세계 최고의 실력의 한국 여자 골퍼들에게도 줄리 잉스터나, 캐리 웹과 같이 불굴의 의지를 보여줄 누군가가 꼭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방제일 기자 reijir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