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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골퍼 6 밀드레드 엘라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아스

스포츠는 여성보다 남성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다. 신체 능력의 극대화가 중요한 스포츠에서 신체 능력이 여성보다 뛰어난 남성이 잘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다. 이런 남성의 영역에 도전한 여성이 있었다. 바로 ‘밀드레드 엘라 디드릭슨 자하리아스’다. 육상과 골프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디드릭슨-자하리아스는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 선수로 꼽힌다. 



1911년 6월 26일 텍사스 주 포트 아서에서 한 여성이 태어난다. 아버지의 성에 따라 디드릭슨, 그리고 이름은 밀드레드 엘라다. 후에 레슬링 선수였던 남편의 성에 따라 자하리아스라 불렸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야구를 하며 수많은 홈런을 쳤다. 베이브 루스의 이름은 따서 그녀에게 ‘베이브’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는 사람에게 ‘베이브 자하리아스’란 이름으로 각인돼 있다. 어느 것 하나도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부르기 좋아하던 이들이, 사회가 정해논 제도에 따라 마구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는 육상과 골프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야구, 농구, 테니스,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재능을 보였다. 1932년 개최된 육상 대회에서는 3시간 안에 4개의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같은 해 LA 올림픽에서는 80m 허들과 창던지기, 높이뛰기에서 세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아쉽게도 높이뛰기에서는 2위를 차지해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운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그녀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23세 때다. 골프에 딱히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스포츠에 관해 만능이니 골프도 해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시작했다. 정작 골프채를 잡고서는 그 매력에 푸욱 빠져 버렸다. 선천적 재능에 후천적 노력이 결부되니 두각을 못 나타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골프를 시작한지 2년 만인 1934년 처음 출전한 텍사스 아마추어 타이틀전에서 드라이버로 250야드를 날린다. 모두들 놀랐다. 지금처럼 골프 클럽이 기술의 완성체인 시대도 아니었다. 자하리아스는 당연히 우승을 차지하며 거침없이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 17연승의 기록과 함께 총 41승을 올리며 각종 골프 기록에 자신을 이름을 수놓았다. 자하리아스는 남성 골프 대회에도 도전했다. 그 결과, 1945년 피닉스 오픈에 출전권을 획득해 33위에 올랐다. 몇 해 전 애니카 소렌스탐과 미셸 위도 PGA 대회에 도전했지만, 이미 이는 자하리아스가 70년 전에 이룬 성과다. 자하리아스가 골프계에 남긴 업적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1949년 그녀를 중심으로 13명의 여성 골퍼가 플로리다에 뭉쳤다. 패티 버그, 루이스 서그스, 알리스 바우어 등 당시 여성 골프계를 주름잡던 전설적인 골퍼들은 PGA와 같은 단체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1950년 여자프로골프협회(LPGA)가 만들어졌다. 1888년 존 리드의 집에서 7명의 부인이 골프회동을 한 이후 62년 만의 일이었다. LPGA의 탄생으로 여자 골프는 장족을 발전을 이뤄 오늘날 미국 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여자 프로 스포츠 협회로 자리매김했다. 



설립 첫 해였던 1950년 LPGA 투어에서는 14개 대회가 치러졌다. 총 상금은 5만 달러였다. 당시 설립자이자 최고의 선수였던 자하리아스는 그 해 3개 메이저 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다.(당시에는 메이저 대회가 3개였다.) US여자오픈, 타이틀홀더스 챔피언십에 이어 웨스튼 오픈 등 3개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녀는 LPGA 투어에서 10승을 거두는데 부과 1년 20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20승을 거두는 데는 2년 4개월이 소요했다. 여전히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값진 기록이다. 

자하리아스 등이 LPGA를 설립한 뒤 이 조직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설립 3년째를 맞는 52년엔 대회 수가 21개로 늘어났다. 63년엔 US여자오픈 최종 라운드가 지상파인 ABC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됐다. 여자 메이저 대회 전 경기가 중계된 것은 1982년이다. 나비스코 다이나쇼 토너먼트가 지상파 방송의 전파를 타면서 LPGA투어의 인기도 더욱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하리아스는 남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예쁜 스윙을 거부했다. 대신 거리에는 거리로, 퍼팅에는 퍼팅으로 당당하게 맞섰다. “거추장스러운 속옷은 풀어버리고 볼을 세게 때려라(Loosen your girdle and let the ball have it).” 자하리아스의 이 한마디야말로 LPGA의 영원히 각인해야할 정신이자 현 시대의 여성 골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방제일 기자 reijir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