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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타이거 우즈(Tiger Woods)

살아서 전설이 된 위대한 선수, 그가 살아나야 골프는 더 재미있고 힘을 얻을 것이다

[골프가이드  김대진 편집국장] 본명 엘드릭 톤트 우즈(Eldrick Tont Woods), 별명 타이거(Tiger). 1975년 12월 30일생이니 올해 43세, 만으로 42세다.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프레스(Cypress)에서 태어났다.

x타이거 우즈

아버지는 얼 우즈(Earl Woods, 1932~2006), 어머니는 쿨티다(Kultida, 1944~)다. 그에겐 배다른 두 형과 누나가 있다.

그의 이름 엘드릭(Eldrick)은 어머니가 지었다. 아버지 얼(Earl )에서 ‘E’, 어머니 쿨티다(Kultida)에서 ‘K’를 각각 따와 앞뒤로 조합해서 지었다고 한다. 톤트(Tont)는 태국 전통적인 이름이다.

별명 타이거(Tiger)는 그린베레였던 그의 아버지가 베트남전 파병 시절 만났던 베트남 중령 ‘푼 당 퐁’의 이름을 기려서 지었다. 퐁은 얼 우즈의 파트너였고 얼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전쟁터에서 맺은 두 사람의 우정은 각별했다. 퐁은 뛰어난 군인이었고 얼은 그의 호랑이 같은 모습을 보고 그를 ‘타이거(Tiger)’라 불렀다.

타이거 우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서 자랐다. 그는 골프신동이었다. 두 살도 되기 전에 골프를 접했다. 아마추어 싱글핸디캡 골퍼였던 아버지가 골프를 알려준 것이다. 아버지는 캔사스주립대학에서 야구선수를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로스 알라미토에 있는 해군 골프장에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멤버였고 그곳에서 타이거는 골프를 할 수 있었다.

 

타이거는 롱 비치에 있는 파3 골프장 등에서도 골프를 쳤다. 세 살 때 해군 골프장 9홀에서 48타를 쳤다. 다섯 살 때 ABC의 ‘믿을 수 없는 것들(That's Incredible)에도 나왔다. 일곱 살도 되기 전에 열 살 이하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드라이버, 피칭, 퍼트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여덟 살인 1984년 타이거는 9, 10세 소년들이 참가하는 주니어월드골프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그는 80타를 깼다. 그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연속 4년을 포함 주니어월드챔피언십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했다. 그의 아버지 얼은 타이거가 열한 살 때 골프에서 자신을 깼다고 했다. 그때 이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타이거는 열두 살 때 정규 골프코스에서 70타를 깼다.

1989년 열세 살 때 그는 첫 메이저 내셔널주니어토너먼트인 ‘1989 Big I’에 나갔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프로였던 존 댈리(John Dally, 1966~)와 한 조에서 경기했다. 각 조에 프로 선수 한명이 들어 있었다. 그 경기에서 댈리는 마지막 네 개 홀에서 세 개의 버디를 잡아 타이거에 한 타차로 겨우 이겼다. 타이거는 10대 선수로 로스 앤젤리스에 있는 벨-에어 골프장에서 잭 니클라우스를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니클라우스는 그곳에서 클럽 회원들을 위한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다. 니클라우스는 그의 뛰어난 기량과 잠재력을 한 눈에 알아봤다. 아버지 얼은 니클라우스의 골프 기록을 자세하게 찾아보고 타이거가 그 기록을 모두 깨도록 목표를 설정했다.

타이거가 열다섯 살, 애너하임 웨스턴고교에 다닐 때 그는 US주니어아마추어 최연소 챔피언이었다. 그의 최연소 기록은 이후 19년간 깨지지 않았다.

 

타이거는 이후 스탠포드대학을 거쳐 1996년 스무 살에 프로가 됐다. 그가 프로로 전향하자 ‘나이키(Nike)’와 ‘타이틀리스트(Titleist)’는 기다렸다는듯이 그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그는 그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ports Illusrrated)가 선정한 ‘올해의 스포츠맨’에 올랐고 PGA 투어 신인상도 받았다.

이듬해 그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다. 마스터스였다. 나흘간 18언더파를 쳐 톰 카이트를 12타 차로 이긴 완벽한 승리였다. 그는 2001년과 2002년, 2005년에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2001년엔 데이비드 듀발(David Duval)에 2타, 2002년엔 레티프 구센(Retief Goosen)에 3타차로 각각 이겼다. 2005년엔 연장전에서 크리스 디마르코(Chris DiMarco)를 서든 데스로 꺾었다.

타이거는 마스터스 외에도 PGA챔피언십 4회, US오픈 3회, 디오픈(더 브리티시오픈) 3회 등 메이저대회에서만 14회 우승했다.

메이저대회 준우승 6회, 3위 4회, 톱5 31회, 톱10 38회였다. 메이저대회에 76회 출전해 67회 컷을 통과했다. 마지막 메이저 대회 우승은 2008년 US오픈이었다.

그는 월드골프챔피언십(World Golf Championships)에서도 열여덟 차례나 우승했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15년 중에서 2010~2012년 3년만 빼고 해마다 2승 혹은 1승을 거뒀다.

PGA 통산 우승은 79회다. 데뷔 첫 해인 1996년 2승을 올린데 이어 2013년 5승까지 2010년과 2011년 두 해만 빼고 해마다 1~9승까지 올렸다. 2000년엔 메이저 3승을 포함해 9승을 기록했다. PGA 투어에서 아주 잘 나가는 선수가 평생 도전해도 쉽게 이루지 못할 우승 기록을 타이거는 한 해에 모두 해치워 버린 것이다.

타이거는 1997~2013년 중 총 10회 상금왕을 차지했다. 또 상금 2위가 3회, 4위가 2회였다. 작년말까지 그가 PGA 투어에서 받은 상금만 1억 1006만 1,012 달러다. 한화로 환산하면 1천억원이 넘는다.

그는 프로 통산 106승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는 PGA 투어 79승과 정규 유러피언투어 8승, 일본투어 2승, 아시안투어 1승, 기타 16승이 포함돼 있다.

 

타이거 우즈, 살아서 전설이 된 그가 9일 끝난 제82회 마스터스에서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을 노렸지만 아깝게 실패했다. 우승은 패트릭 리드의 차지였다.

그러나 이번 마스터스는 타이거 우즈가 출전했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고 갤러리도 많았다. 그가 참가하는 대회와 참가하지 않는 대회가 어떻게 다른지 이번 대회는 잘 보여줬다.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골프장(파72 · 7435야드)은 마스터스를 위해 존재하는 코스다. 1년에 6개월 안팎을 휴장하며 코스를 관리한다. 디보트 하나 없이 양탄자 같은 페어웨이에 유리알 그린, 하얀 모래와 아름다운 꽃, 거울같이 맑은 호수, 아치형 돌다리, 싱그런 숲은 어디에서 봐도 한폭의 그림이다.

이 골프장 11~13번홀은 ‘아멘코너’로 널리 알려져 있다. 11번홀은 파4에 거리가 505야드다. 왼쪽으로 워터해저드가 이어져 티 샷의 정확도가 중요하다. 12번홀은 파3, 155야드다. ‘래의 크릭(Rae's Creek)’이라는 개울과 3개의 벙커를 피해야 한다. 13번홀은 파5, 510야드로 투온이 가능하다. 이 홀에서 버디 이상을 잡아야 한다. 승부는 승부는 이 세 홀에서 갈린다.

올해 마스터스에선 타이거의 성적이 좋지 못해 TV 중계방송에선 그의 모습을 자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분명 더 강해졌을 것이다.

마스터스 대회장에 나간 갤러리들도 타이거의 부진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가 살아나면 골프는 더 재미있고 또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골프팬이 타이거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가 앞으로 또 우승하든 하지 못하든 그는 위대한 골퍼로 남을 것이다.

 

김대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