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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이건희 회장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유치 활동을 하던 2011년 4월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사진: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데스크칼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로 10월 25일 별세했다. 그가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투쟁한 지 6년여 만이다. 
이 회장은 1987년 12월 45세에 삼성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리더이자 대한민국 초일류 시대를 연 개척자였다.
그는 회장 취임사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으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며 ‘초일류 기업’의 꿈을 다졌고 그 꿈을 실현시켰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에서부터 2012년 ‘창조경영’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변화와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삼성을 지휘한 이후 시가총액이 396배로 뛰었고,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등 세계 1위 제품을 13개나 만들어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도 세계 5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 달러(약 71조 원)로 인텔, IBM, 코카콜라, 도요타를 모두 뛰어 넘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취임사를 하는 이건희 회장(사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 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가 열린다.”(2002년 6월 인재 전략 사장단 워크숍)
“경영자는 자기 일의 반 이상을 인재를 찾고 인재를 키우는 데 쏟아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도 엉뚱한 곳에 쓰면 능력이 퇴화한다. 그리고 한번 일을 맡겼으면 거기에 맞는 권한을 주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
“실패는 많이 할수록 좋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는 사람보다 무언가 해보려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유능하다. 이들이 기업과 나라에 자산이 된다.”(이상 1997년 출간한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그는 “회장으로서 제일 힘든 일은 사람을 키우고, 쓰고, 평가하는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사람을 쓸 바엔 의심하지 말라)’와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아는 것, 할 줄 아는 것, 시킬 줄 아는 것, 가르치는 것, 평가하는 것)’의 차이와 기능을 강조한 것도 그래서였다.

1993년 신경영 선언 구상을 밝히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모습(사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그는 많이 들으며 비전을 세운 경영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전문가로부터 끊임없이 듣고 배우고자 했다. 이를 두고 그가 ‘경청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도 한다.
경영진이 단기 성과에 매달릴 때 오너는 미래 비전을 찾고 글로벌 경제 흐름을 파악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건희식 경영’이 남긴 상처도 컸다. 그는 1995년 숙원이었던 자동차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좌절했다. 삼성자동차는 4조3000억 원의 막대한 부채를 안은 채 199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국의 오랜 정경유착 관행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등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여러 번 연루됐다. 삼성이 창업 초기부터 고수한 무노조·비노조 경영 원칙도 시민과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2013년 9월 열린 제125차 IOC총회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사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이 회장은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임됐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우리나라의 스포츠 발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서울대사대부고 재학 시절 레슬링을 했던 이 회장은 그 인연으로 1982~1997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 기간 한국레슬링은 올림픽 금메달 7개를 포함, 주요 국제대회에서 금메달만 40개를 따냈다.
그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삼성 라이온즈를 창단, 2001년까지 구단주를 맡기도 했다. 육상, 럭비, 배드민턴, 탁구, 태권도 등 비인기 아마추어 팀도 창단했다. 
이 회장은 1990년 호암상을 제정해 예술과 과학계를 폭넓게 지원해왔다.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호를 따 이름을 지은 호암상은 물리수학, 화학생명과학, 공학, 의학, 예술, 사회봉사 등 6개 부문과 특별상을 시상한다.
그는 정치권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4월 13일 이 회장은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우리나라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로 보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06년 밴플리트상을 수상하는 이건희 회장( 사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3월 10일 이 회장은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려다 기자들이 “현 정부의 경제성적에 몇 점 정도 주시겠느냐”는 질문에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했으니...”라고 말하다 “흡족하다는 말이냐”는 추가 질문에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2004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반도체 30년을 맞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이 회장이 별세함으로써 이재용 부회장이 곧 회장으로 취임해 삼성을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 산업 중심의 기술기업으로 이끌 것이라는 게 재계의 전망이다.
이 회장을 잃은 삼성의 앞길이 주목된다. 현재 삼성은 녹록지 않은 환경을 맞았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는 중국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반도체를 이을 미래 사업은 확실치 않다. 삼성이 이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전 세계가 눈여겨 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도전과 혁신의 아이콘, 이건희 회장의 경영이 더욱 돋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빈다.  

김대진 편집국장

(이 칼럼은 10월 26일 오전에 썼으며 월간지 「G-ECONOMY」 11월호 데스크칼럼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