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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ESG] 앞서진 못할지언정 스스로 발목 잡지 말아야…‘방법이 있는데 왜 쓰질 못하니’

 

지난 11월 호에서 필자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끝내게 해줄 ‘BADP’라는 소재를 소개하며, 기대에 부푼 마음을 표했다. 그런데 막상 “당장은 상용화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양산 체제에 돌입했고, 유럽 BSI 시험인 PAS에도 합격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WRITER 이승엽

 

일반 플라스틱보다 못한 생분해 플라스틱
사실 생분해 플라스틱은 지난 20여 년간 플라스틱 대체제 개발 업계의 가장 큰 화두였다. 그러나 그렇게 개발된 PLA(옥수수·감자 전분 유래), PBAT(석유화학 유래), PHA(미생물 유래)는 특수조건에서만 분해되고, 분해 기간 조절이 어려웠다. 기존 플라스틱 생산 설비에 적용하기에도 어려웠으며, 생산성도 떨어졌다.


악조건 속에 만들어더라도 기존의 플라스틱을 대체할 정도의 품질이 되지 못했고, 원료 공급이 불안정했으며, 단가도 높았다. 무엇보다 재활용이 전보다 어렵거나 불가했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 연구팀은 화석연료를 원료로 한 일반 플라스틱 7종과 생분해 플라스틱 등 바이오 플라스틱 4종의 생애주기를 추적한 결과 “생분해 플라스틱이 일반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연상태 방치해도 100% 분해, 그러나...
기존의 생분해 플라스틱과 BADP가 다른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BADP는 상온생분해 효소다. 쉽게 말해 BADP를섞어 만든 플라스틱은 ‘상온 8℃ 이상’이라는 조건만 갖춰지면 100% 분해된다.


토양에는 약알칼리성으로 남고, 다른 공해나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세척해 파쇄한 뒤 녹여 재활용 처리를 할 때 BADP를 첨가해 재활용하면 마찬가지로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변모해 말 그대로 ‘그냥 버려진 상태’에서도 분해된다.


BADP가 전 세계가 벌이는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정말로 끝내줄지도 모를 기술이라고 판단한 이유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이미 우루무치 지역의 20억 평 규모 목화밭에 사용할 농업용 멀칭 필름 테스트를 마쳤고, 중국 정부의 생분해 표준 인증을 통과해 대량생산 시설을 구축했다.

 

그러나 중국 외 다른 국가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관련 규정이 없어서다. BADP 솔루션 김명규 대표는 “국내외 규정이 너무 오래전 기술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핵심인 ‘천연 효소’ 자체부터 허들
현재 환경 당국에서 인정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되려면 ‘일정한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국내 규정에 따르면 일단 BADP와 같이 박테리아와 효소, 즉 천연 유래 효소를 사용하면 안 된다. 이는 1980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당시에는 자연을 위하는 일에 또 다른 자연을 소모하는 결과를 낳는 것을 우려해 만든 규정이다.


김명규 대표는 “우리나라 규정에 맞는 인증서를 받아야 상용화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외국 시험 기관이나 우리나라 시험 즉, EL724(퇴비화) 또는 생분해 시험도 등을 거쳐야 하지만,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는다’는 과거의 관념에 묶여 일단 대상부터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아직 BADP 같은 상온생분해 효소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플라스틱의 ‘퇴비화 규정’으로만 시험할 수 있다.

 

2016년에 개정된 생분해성 수지 제품 환경표지 인증 기준 규정에 따르면 제품의 생분해도는 ‘KS M ISO 14855-1’이라는 기준에 따라 측정한다. 이 ‘KS M ISO 14855-1’은 '퇴비화 조건'에서 플라스틱 재료의 호기성 생분해도를 측정하는 국가 표준 규격이기도 하다.

 

이 규격상 플라스틱의 퇴비화 조건은 이렇다. 6개월 동안 온도는 58℃, pH 값은 7로 유지하고, 어둡고 밀폐된 환경에서 미생물 활동을 저하하는 가스가 없어야 하며, 충분한 공기를 공급하되 산소 농도를 엄격히 제어하고, 충분히 호기화 된 퇴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는 180일간 90% 이상 분해됐을 때 유효하다.

 

막상 우리나라는 이 퇴비화 조건을 만족할만한 시설이나 또한 그 시설을 갖출만한 장소도 변변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설령 지금부터 시설을 갖추려고 해도 비용 문제에 직면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아직은 친환경이라고 하기에 부족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규격 때문이다.

 

현재의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은 퇴비화 조건에 의한 분해가 아니면 우리나라와 같은 온·습도 조건에서는 완전분해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재활용도 되지 않아 기존 플라스틱과 섞이게 되면 오히려 환경개선 플랫폼에 저해가 심각해지는 실정이다.


영국표준협회 PAS는 통과, 하지만
국내 상용화를 하려면 해외 규정에 맞추는 방법도 있지만, 하나같이 원료 기준이 정해진 상태다. 영국표준협회(BSI)의 PAS(잠정국제표준)은 국제표준이 되기 전 단계를 의미하는데, 환경문제처럼 시급한 분야의 국제표준을 빠르게 제정하기 위해 만든 규정이다.

 

BADP는 이를 통과했다. 그러나 현재 이 규정을 활용하는 국가가 영국, 프랑스, 헝가리 3개국에 불과해 PAS 결과만으로 국내 상용화하기는 어렵다. 기후환경 문제가 악화해 가는 지구에서, 그것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중인 우리나라로서는 환경 개선 정책에 있어서 보다 능동적이고 개방적인 샌드박스(규제특례)적용을 통해 ‘우선 혁신 정책’으로의 강화가 꼭 필요하다.


또다시 같은 출발선, 코로나 팬데믹 오마주
요컨대 그간 국제표준이었던 생분해 플라스틱 관련 규정은 중국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나 같다. 다만 플라스틱을 완벽하게 분해할 수 없다는 문제는 전 세계에서 심각성을 느끼고 각국에서 미생물 배양 및 단백질 합성기술, 유전자 변이기술 등을 접목해 빠른 속도로 해결해나가고 있다. 관련 규정 역시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국내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아직 우리가 나설 문제가 아니라고만 여기는 듯하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전 세계가 함께 우왕좌왕하며 같은 출발선에 섰을 때를 돌이켜보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대한민국의 방역이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시발점은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였다고 본다. 이후 생활치료센터와 ‘최소 잔여형 주사기’ 채택 등으로 아이디어 단계에 있던 솔루션을 현실로 빠르게 끌어왔다.


이는 전 세계를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시켰다. 선진국이 대한민국의 방역을 벤치마킹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 신뢰와 위생을 더하는 결과가 됐고, 특히 식품 등의 수출에도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소프트 파워의 비약적인 상승을 가져왔다고 평가된다.


이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 대한 평가가 아니며, 모든 부분에 100% 훌륭했다고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초기 확산세를 막지 못했음에도 한국의 방역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데는 감염병 대응이라는 ‘본질’에 몰두해 ‘관례’를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빠르게 채택한 덕분이다.


본질에서 벗어나면 원칙 의미 없어
3년 전 코로나 팬데믹이 벌어지기 직전을 떠올려보자. 전 세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플라스틱과의 전쟁 문제였다. 당시 우리는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큰 변화를 앞두고 있었다.

 

당장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매장 내 일회용 용기 사용 금지를 대비해 유리 컵을 구매해 시장에 품귀현상이 벌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러다 터진 코로나19로 잠시 잊고 있던 동안, 방역을 명분으로 한 플라스틱 사용은 더욱 가속화됐다. 코로나19가 직접적으로 생명을 뺐듯, 플라스틱도 그렇다. 잠시 외면하면 다음 세대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작 국내 환경정책 시행기관에서는 단순히 ‘원칙’만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행정처리의 관행은 새로운 개선기술들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플라스틱을 처리하자’는 본질에서 벗어난 원칙은 더이상 원칙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

 


포스트 코로나는 곧 환경 이슈
BADP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 대한 판권과 기술을 BADP KOREA에 이전하는 확약식을 가졌고, 우리나라에서의 판권과 기술 지원을 맡은 것이 BADP SOLUTION이다. 김명규 대표는 BADP 코리아의 부대표이기도 하다.

 

이미 중국에서는 상용화를 앞둔 BADP가 기존의 생분해 플라스틱과 일반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전 세계 환경 이슈 대응의 판도를 바꾸게 될 것이고, 이미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움직이는 상황에 ‘이번에도’ 우리나라가 먼저 BADP 상용화를 선도한다면, 지난 코로나19 방역에 이어 환경 이슈에서도 세계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바뀔 것들에 대해 예측하기보다 코로나19 이전에 눈앞에 놓였던 바로 그 이슈에 집중해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반도체 이후의 시대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우리의 출발선, 우리 손으로 미루는 꼴
근래에 환경부에서 발표했던 일회용 규제는 어떻게 됐는지 기억하는가. 기업의 민원이 빗발치자 ‘연기’라는 미봉책을 내놓았다. 환경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출발선을 뒤로 미루는 형국이다.


‘일정한 조건’을 바꾸지 못해서 습관적으로 ‘불가’ 도장을 찍는 미시적이고 성급한 결정들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기업은 물론 민관 합동 위원회를 구성하여 광의의 거시적 관점들을 논의하고,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수렴 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공감대다.

 

BADP 솔루션 김명규 대표는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신속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빠른 피드백과 지원정책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우수한 두뇌와 IOT 기술 등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Environment-K로 전 세계의 환경문제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환경운동가들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에 요구한다. 이제 기술적 발전보다 자연과 생태계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2세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필자 역시 기대한다. BADP와 같은 세계를 앞서는 기술이 우리의 손에서 피어나 지구를 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