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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결국 팬과 선수의 향연’ KPGA 독소조항 체결 논란

“매년 역대급 규모 돌파 중” VS “숫자 집착한 빛 좋은 개살구”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세계적으로도 남자 투어보다 여자 투어의 규모와 인기가 높은 건 드문 일이다. 국내 사정은 좀 다르다. KPGA 코리안투어를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오히려 무섭게 치고 올라온 KLPGA를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KPGA는 2022년 역대 최대급 규모를 만들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고, 이는 2023시즌까지 이어져 작년 규모(21개 대회, 총상금 203억 원)보다 더 커진 25개 대회, 총상금 250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을 예고했다.

 


임기 마지막 해 맞은 협회장
올해는 KPGA 구자철 회장의 임기 마지막 해다. 이미 여러 차례 연임 의사를 밝히기도 한 구자철 회장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통해 “특히 투어 선수들과 팬들의 지지가 크다”면서 골프계 안팎의 뜻이 연임이라면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량 면에서는 늘었을지 모르지만, 실제 KPGA가 주관하는 대회로 보면 양적.질적 개선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기업인 출신 회장, 그와 함께 기업을 운영하던 이사진들이 들어와 노력하는 건 인정하지만, 투어와 골프선수의 육성현장 등에 대한 이해도가 전문가 수준일 수는 없는 만큼 골프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수렴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그저 기업 운영하듯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회가 기업인 출신 회장을 선출한 건 어쨌든 기업 운영의 노하우를 이식해 투어에 대한 ‘투자’를 유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투어가 크려면 여러 가지 갖춰야 할 조건이 있지만, 결국 인프라의 문제이며 결국 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막상 KGA나 아시안투어 등의 해외 투어가 주관 또는 공동주관하는 대회의 규모가 큰 것이지 KPGA가 주관하는 대회는 매년 확정이 늦어지는 게 현실”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골프계 인사는 “결국 회장에게 기대하는 건 투어의 규모를 확대하는 건 맞다”면서도 “결국 다양한 루트로 유입된 자금이 선수에게 향해야 투어의 퀄리티도 올라가는데 이점에 대해서는 도외시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꾸준히 나온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어 “KLPGA도 내외로 잡음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선수 출신 회장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선수의 애로사항을 잘 알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느낀다는 선수가 많다. 기업인 출신 회장의 장점이 있겠지만, 때로는 야속할 때가 있다. 투어는 성장했다는데 선수가 느끼는 달라진 점은 없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최근 KPGA는 DP월드투어와 전략적 협약을 맺었다. 많은 골프 팬들이 유럽 골프계와의 접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KPGA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 반가워했다.

 

그러나 곧 ‘한국에서 KPGA가 해외 투어와 새로운 공동 주관 대회를 개최할 경우, DP월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독소 조항이 포함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KPGA의 부회장이자 아시안투어의 이사인 남영우 이사의 문제 제기였다.남 이사에 따르면 이 조항은 미국의 PGA투어, 유럽의 DP월드투어와 더불어 세계 3대 투어인 아시안투어를 사실상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지난해부터 세계 골프계는 ‘PGA투어+DP월드투어’와 ‘리브 골프+아시안투어’ 사이의 갈등으로 뜨겁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후원을 받는 리브 골프와 아시안투어에 대해 미국과 유럽 골프계는 제재하겠다는 의사를 꾸준히 내놨다. 이러한 내막으로 이번 독소 조항 논란에 불이 붙었다.

 


DP월드투어의 강경대응
실제로 DP월드투어는 지난 5월 11일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2022년 6월 22일부터 2023년 4월 2일까지 리브 또는 아시안투어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의 스포츠 분쟁위원회 성격을 띠는 ‘스포츠레졸루션’도 이 움직임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냈고, DP 측도 이를 인용했다.


이에 따라 DP월드 소속 총 26명의 선수들에게 개별적인 벌금과 출전 금지가 포함된 제재 사항이 통보됐다. 부과된 벌금은 위반(출전) 건마다 12,500파운드(약 2,091만 원)에서 10만 파운드(약 1억 6,730만 원)까지 다양했다.

 

리브 골프로 ‘넘어간’ 선수들(리처드 블랜드, 로리 캔터, 브랜든 그레이스, 저스틴 하딩, 샘 호스필드, 마틴 카이머, 파블로 라라자발, 그레엄 맥도웰, 숀 노리스, 웨이드 옴비, 에이드리언 오태기, 이안 폴터, 패트릭 리드, 찰 슈웨첼, 리 웨스트우드, 번드 비스버거)에게는 10만 파운드가 부과됐다.

 

한편 PGA 투어에서도 이름을 알린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10만 파운드의 벌금을 내지 않았고, 내겠다는 의사 표명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리처드 블랜드, 이안 폴터, 리 웨스트우드와 함께 DP월드투어의 회원 자격을 반납하고 탈퇴했다. 라이더컵 주장으로 뽑혔던 헨릭 스텐손 역시 탈퇴했다.

 

DP월드투어는 여전히 강경하다. 한번 회원 자격을 반납한 선수들을 복권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가장 활발한 교류, 아시안투어
논란이 된 조항은 결국 (리브 골프와 연계된) 아시안투어가 한국에서 KPGA와 공동 주관으로 대회를 열려면 유럽투어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로도 해석된다. 현재까지 KPGA투어가 가장 활발히 교류하는 해외 투어가 아시안투어이기 때문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조민탄 아시안투어 CEO는 “코리안투어와는 벌써 30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정치는 골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자유롭게 대회에 출전하던 선수들이 타 투어의 제재나 승인이라는 장애물이 생긴다면 스포츠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33명 뛰고 있는 아시안투어
실제로 코리안투어와 아시안투어 간의 역사는 깊다. 1960년대부터 ‘아시아서킷’이라는 이름으로 교류해왔다. 1980년대 창설된 매경오픈이나 신한동해오픈도 투어 간 협력으로 발전한 대회다. 특히 KPGA가 주관하는 신한동해오픈은 2016년에 원아시아투어에서 아시안투어로 가장 먼저 복귀했던 전례가 있다.

 

아시안투어에서 풀 시드를 받아 활동하는 한국 선수는 올해 기준 33명이다.

 

아시안투어는 세계 3대 투어로 인정받고 있어 세계랭킹 포인트 배점이 높다. 물론 KPGA 대회 성적으로는 세계랭킹포인트를 받을 수 없다. 즉 한국 선수가 세계 무대로 향하는 발판이 그간 아시안투어였다.

 

PGA에 진출해 무서운 기세를 보여주고 있는 김주형도 아시안투어를 거쳤다.

 

KPGA 소속 선수들은 그간 DP월드투어보다도 아시안투어 대회에서 상당한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열렸던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시리즈 코리아 대회도 올해는 열리지 않는다.

 

 

10년 만의 교류 재개, 우연인가
반면 KPGA와 유럽의 교류는 지난 2008년 발렌타인챔피언십을 통해 6년간 개최한 게 처음이었고, 이후로 10년만인 올해 제1회 코리아챔피언십으로 명맥을 이었다.

 

실제로 이번 코리아챔피언십에 대해 “PGA-DP 연합군이 아시아에서 리브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급조된 대회”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대회 하나 만들어주는 대가로 한국에서의 공동 주관 승인 권한이라는 큰 성과를 챙겼다는 얘기다.


남영우 이사는 “대회가 늘어나는 건 좋지만, 선수들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 사안에 대해 사무국 몇몇이 결정했다”며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은 협약”이라고 평가했다.

 

남 이사에 따르면 이밖에도 협약 조항 곳곳에 한국 선수의 아시안투어 출전을 제약하는 조항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 톱클래스에 시드권 준다?
최근 국내 골프팬에게 DP월드투어의 이름이 각인된 건 2022년 제네시스 포인트 대상을 차지한 김영수의 유럽 무대 진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건 이번 협약이 있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협약 내용이다.


이번 협약에 따르면, 제네시스 포인트 1위 선수는 다음 시즌 DP 월드투어 카테고리 16번 시드를 받는다는 것인데, 카테고리 16번이란 롤렉스 시리즈를 뺀 대부분의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시드다. 나머지 상위 2명에게는 17번 시드가 1년간 주어진다. 17번은 출전할 수 있는 대회 수가 다소 적다.


남 이사는 “지난해 대상을 받은 김영수는 이미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다”면서 이번에 추가된 카테고리 17번은 상금이 적은 대회들이 대상이라는 점과 사실상 Q스쿨 합격자가 받는 것보다도 낮은 혜택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추가로 주어지는 Q스쿨 최종전 출전권에 대해서도 “참가할 선수가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선수 입장 도외시하는 협회?
이러한 KPGA의 협약 결정에 대해 선수 입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가 남 이사가 지적하는 문제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남 이사는 “아시안투어는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 선수 의사를 가장 중시한다”면서 “지난해 리브 골프와 손을 잡은 것도 선수들의 자발적인 의사와 판단을 따른 결과”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남 이사는 이번 DP월드투어와 KPGA의 협약에 대해 선수 대부분은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심지어 막연히 KPGA가 유럽 대회를 주선했다고 반기는 의견도 있지만, 회장직 연임과 성과주의에 경도된 현 구자철 회장과 집행부가 내부 반대 의견을 무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강조했다.

 


스포츠는 팬과 선수의 향연
KPGA는 DP월드투어와의 공동 주관 대회인 코리아챔피언십을 2025년까지 개최한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구자철 회장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양적 팽창을 이뤘다면 앞으로는 질적 향상을 추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KPGA의 지향점은 국내 선수들이 세계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데 있다고 했다.


현재의 행보가 훗날 어떤 결과로 나올지는 모른다. PGA와 리브 골프와의 분쟁이 뜨거운 감자인 건 맞지만, 거기에 끼어들어 어느 한 편에 줄을 설 만큼 우리는 여유롭지 못하다. 캐스팅 보트는커녕 등 터진 새우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려가 크다.


구자철 회장이 기업인 출신으로서 ‘비즈니스’로만 접근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나올 수 없고, 고통스러운 시절이 있을 수도 있다. 잘잘못이 아니라그저 방법론의 차이였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기원을 하게 되는 이유다.

 

결국 잘 되는 스포츠는 보고 즐겨주는 팬과 자신의 일생을 쏟은 선수들이 만든다. 협회는 그걸 돕는 이들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