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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투어와 리브 골프,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매일 매일 으르렁대고 싸우던 두 남녀가 갑자기 결혼을 발표를 했다. 그 흔한 썸 하나 없이 말이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결혼 발표를 한다고? 그렇게 서로 뒷담화를 해놓고. 주변인들의 네 편, 내 편으로 갈라놓고 말이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사각의 링 위에서 어퍼컷이라도 한 대 맞은 듯 얼얼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뭔가 이상하다. 과연 이 둘의 결혼식까지 무사히 이를 수 있을까? 바로 리브 골프와 PGA 투어의 이야기다.

 

EDITOR 방제일

 

US 오픈을 얼마 앞두지 않고 세계 골프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 들려왔다.

 

기사의 제목은 리브 골프와 “PGA 투어, 전격 합병”

처음 그 기사를 보자마자 긴가민가했다. 정말 이렇게 허무하게 두 투어가 합병한다고? 대체 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거대 투어의 합병을 놓고 여러가지 루머도 생겼다. “제이 모나한 커미셔너가 뒷돈을 받은 것이다”부터 “미, 중 관계 경색으로 인해 사우디와 미국이 손 잡은 것이다”, “정치 화해 무드의 일환으로 두 투어가 합병한 것이다” 모든 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 뉴스일수도 있다.

 

깜짝 결혼 발표에 모두들 ‘화들짝’

PGA 투어, 리브 골프, DP 월드투어는 지난 6월 6일 공동성명을 내고 “골프라는 종목을 전세계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획기적 합의를 이뤘다”며 “리브 골프를 포함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골프 관련 사업권을 PGA 투어와 DP 월드투어 사업권과 결합해 공동 소유 영리 법인으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21년 10월 리브 골프가 출범한 뒤 공개 비판과 소송전을 벌이던 PGA 투어와 리브 골프는 한 배를 타게 됐다. 양쪽은 서로에게 제기했던 각종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고, 선수 자격 문제 등 세부 사항을 합의해 이를 향후 다시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발표가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아무런 낌새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 대부분의 트위터를 통해 이 뉴스를 듣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는 투어 멤버들의 의견 수렴없이 큰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까지 선수들의 의견을 최우선시 했던 제이 모나한 PGA 투어 커미셔너의 행보와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리브 골프와 PGA 투어의 합병은 정략적 결혼?

그동안 리브 골프의 공격적인 확장을 경계하며 반독점법 위반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있었다. 그럼에도 미 정부는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개입을 자제해 왔다.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지목한 이후 냉랭해졌다. 그 이후 무함마드 왕세자는 석유 거래에서 위안화를 사용하고, 중국의 중재로 ‘앙숙’ 이란과 외교 정상화에 합의하는 등 중국과 밀착하는 행보를 보였다.

 

중국이 중동 지역 내 영향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미국이 사우디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리브 골프 문제에 방관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다 리브 골프와 PGA 투어의 합병 발표가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발표가 있기 며칠 전 사우디를 공식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동 내 최우선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며 미국의 중동 리더십 회복을 선언한 직후였다. 과연 미국 정부가 리브 골프와 PGA 투어와의 합병을 주도한 것일까?

 

갑자기 결혼식을 미룬다고?
이 발표 이후 두 투어의 합병은 기정사실화되는 듯 했다. 무수한 추측들이 있었다. 무엇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합병을 주도한 제이 모나한 커미셔너는 몸이 아프다며 병가까지 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16일 미국 법무부가 PGA 투어와 리브 골프의 합병이 독과점에 해당하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미 법무부가 반독점 조사 착수에 따라 양측의 합병 작업이 앞으로 최소 1년간은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갑자기 합병을 주도한 미 정부가 이렇게 제동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당연히 미국 내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PGA와 리브의 합병을 두고 미국 스포츠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인권 문제 등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을 시도하는 것이란 목소리가 있었다.

 

리브 골프의 인기도 식고 잠잠해지던 사이 갑자기 합병 소식이 나왔다. 당연히 여론은 다시 들끓었다. 미국 정부도 이 정도 반응까지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기에 미 의회가 합병에 대한 의회 차원 조사에 나서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부정적 여론도 커지면서 합병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미 정부도 관련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PGA 투어와 리브 골프 합병, 트럼프는 이미 예견했다?


리브 골프가 출범한 후 모두가 호의적이지 않을 때 유일하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 정치인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호의적이었을 뿐 아니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마치 리브 골프의 후원자 같은 행보를 보였다. 그는 공객적으로 자신의 SNS를 통해 “PGA 투어에 대한 충성심으로 남아 있는 모든 골프 선수는 나중에 PGA 투어가 리브 골프에 합병되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팩트가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리브 골프와 PGA 투어가 합병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이다. 트럼프의 말과 같이 PGA 투어와 리브 골프가 합병에 이르게 되면 PGA 투어에 남아있던 이들은 그야말로 ‘벼락거지’가 되는 신세다. 의리를 지켰다고 뒷통수 세게 맞는 격이다.

 

과연 트럼프는 이 두 투어가 합병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PGA 투어에 남아있던 앙금 때문에 악담을 퍼붓다가 얻어 걸린 것일까? 물론 진실은 트럼프만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