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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크라운 이예원 "예원 천하?" 우리 예원이 월드클래스 아닙니다

KLPGA투어 4년 만의 트리플 크라운, 이예원 ‘이제부터 예원 천하’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PHOTO 김영식, KLPGA 제공 | 오래전 모 자동차 광고의 카피로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문구가 유행했었다. 올해 이예원의 활약상을 그대로 표현한 문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KLPGA를 지켜보면서 어떤 선수가 가장 임팩트 있었는지 돌이켜 볼 때 솔직히 이예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잠시 뒤 최종전 경쟁 구도엔 거의 항상 이예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불과 2년 만에 1부 투어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한 이예원의 3년 차는 대체 어떨지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다.

 

위메이드 대상과 상금왕, 최저타수상으로 2023년 KLPGA투어 3관왕에 오른 이예원(20, KB금융그룹)에게 ‘예원 천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돌이켜보면 정말로 최종전에는 늘 이예원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올해 KLPGA투어에서 그 정도의 임팩트였나 생각해보면 솔직히 갸웃하게 된다. 그만큼 올해 이예원의 활약상은 ‘소리 없이 강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소리 없이 강했다
지난 2021~2022년 KLPGA투어를 요약하는 열쇳말을 꼽는다면 박민지의 ‘민지 천하’다. 2021년 6승으로 역대 단일시즌 최다 상금인 15억 2,147만 원을 벌어들이며 대상과 상금왕, 다승왕을 싹쓸이한 박민지의 활약은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2022년에도 14억7,792만 원을 벌어들인 박민지는 또다시 6승을 쓸어 담았다. 비록 대상 2연패에는 실패했지만, 상금왕과 다승왕 부문에서는 2연패를 달성하며 ‘민지 천하’가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간 박민지의 아성에 도전했던 선수는 많았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담백한 무자극 맹활약
‘민지 천하’ 시절 박민지를 ‘여포’로 비유한다면, 올 시즌 이예원은 ‘제갈량’ 같았다. 여포는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제갈량은 전장의 요소마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늘 적의 발목을 턱 하고 붙잡는다. 매번 적을 포획하지는 못하더라도 절대로 손쉽게 놓아주지도 않는다. 적들은 그런 제갈량에게 진저리를 치게 된다.


2년의 ‘민지 천하’가 너무 자극적인 맛이었던 걸까. 그러고보면 박민지의 활약은 입에 착 달라붙는 ‘맵단짠 조합’ 같았다. 이예원의 올 시즌 활약상은 ‘슴슴’하면서도 담백한 ‘무자극 웰빙 식단’ 같았고.

 

일찌감치 확정한 대상·상금왕
자꾸 ‘슴슴’, ‘담백’, ‘무자극’ 같은 단어를 쓰니 임팩트가 약했던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대상과 상금왕은 이미 11월 초에 일찌감치 확정했을 정도다. 그가 대상과 상금왕을 확정한 건 최종전의 직전 대회인‘S-OIL 챔피언십 2023(11/2~5, 엘리시안제주)’에서였다.

 

이예원은 2위로 42포인트를 추가한 651포인트를 기록했고, 공동 11위 임진희가 포인트 획득에 실패해 558포인트에 머무르면서 두 선수 간 포인트 차이가 93포인트로 벌어졌다. 그러나 남은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포인트는 70포인트. 역전이 불가능했기에 2023년 위메이드 대상 포인트 1위는 이예원으로 확정됐다.


한편 이 대회 전까지 시즌 상금 13억 2,668만 4,197원으로 1위를 기록했던 이예원은 이 대회에서 공동 2위로 상금 8,550만 원을 획득한 데 비해 2위 박지영이 2라운드 중 무릎 부상으로 기권하며 상금을 얻지 못해 두 선수 간 누적상금 차이는 439,704,812원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2023시즌 최종전인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 2023’의 우승상금이 2억 원이기 때문에 역전이 불가능해졌고, 이예원이 상금왕으로 확정된 것이다.

 


‘신인왕, 대상’ WHAT’S NEXT?


“상금왕과 대상을 조기에 확정했다는 것이 정말 얼떨떨하다. 특히 올해 목표였던 대상은 항상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돼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럴수록 오히려 매 대회, 매 라운드, 매 샷에 더 최선을 다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꼭 받고 싶었던 상이기에 기쁘고 행복하다.”


신인상을 탔지만, 우승과는 연이 닿지 않아 ‘무관의 신인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던 2022년과는 확 달라진 성과다.

 

2년 차인 올해 국내 개막전인 ‘롯데 렌터카 여자오픈’에서생애 첫 승을 거두더니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이처럼 KLPGA에서 신인왕 바로 다음 시즌에 대상을 차지한 건 송보배, 신지애, 김효주, 이정은, 최혜진에 이어 6번째 기록이다. 꼭 2년 차 징크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인들끼리 겨루는 신인상 경쟁과 1부 투어의 벽은 그만큼 격차가 존재한다.

 


4년 만에 이어진 트리플 크라운 계보
이예원은 11월 12일 라비에벨CC 올드코스(춘천)에서 열린 KLPGA투어 최종전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최종 합계 2오버파 218타를 기록, 공동 11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미 확정된 대상과 상금왕만으로도 뿌듯한 한 해였을 것 같은데, 경사가 아직 ‘한 발 남았’었을 줄이야. 바로 평균 최저타수상이다.


최종전에서 2오버파를 친 이예원의 시즌 평균 타수는 0.07타 높아졌음에도 올해 평균 70.7065타를 써냈다. 2위 김수지(70.9753타)가 최종전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했고, 이예원이 최저타수상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게 됐다. KLPGA투어 역대 11번째다.


KLPGA투어 역사상 3관왕은 2001년 강수연이 최초였다. 이후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신지애가 내리 3관왕을 차지하면서 시대를 풍미했고, 서희경(2009), 이보미(2010), 김효주(2014), 전인지(2015), 이정은6(2017), 최혜진(2019)으로 이어졌다. 이후 코로나19 시기부터 소식이 없다가 올해 4년 만에 이예원이 3관왕 계보를 이었다.

 

 

단일 시즌 최다 상금 3위
이예원은 올 시즌 상금 14억 2,481만 7,530원을 벌었다. KLPGA투어에서 역대 9번째로 한 시즌 상금 10억 원을 돌파한 사례다. 특히 한 시즌 최다 상금 부문에서 박민지의 2021년(15억 2,137만 원)과 2022년(14억 7,792만 원) 기록에 이어 3위에 랭크됐다.

 

최종전인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에서 공동 11위로 해당 대회 상금이 12,633,333원에 그쳐 박민지의 기록을 깨지는 못했지만, 이예원이 인터뷰를 통해 말한 대로 투어 진입 2년 만에 박민지의 기록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


what if..
‘스포츠엔 그런 거 없다’지만 해보면 늘 재미있는 if를 적용해보자. 만약 최종전에서 이예원이 우승(2억 원)했다면 단일 시즌 상금은 16억 원을 넘어서며 단연 기록을 갈아치우며, 박민지를 크게 넘어섰을 것이다. 만약 2위나 3위(각각 1억 1,500만 원, 6,500만 원)를 했더라도 박민지의 2022년 기록은 깰 수 있었다. 그뿐인가. 시즌 4승으로 다승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어 명실상부 투어 2년 차 신화를 썼을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다거나 아쉽다는 게 아니라, 이제 막 2년 차를 맞은 선수의 기량이라기엔 너무도 빛나지 않는가 하는 감탄이다.


이예원은 올해 32개 대회 중 29개에 출전했다. 대회당 약 5천만 원을 벌어들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28개 대회에서 컷통과에 성공했고, 우승 3회, 준우승 4회에 TOP10 진입은 13회다. 이보다 훌륭한 2년 차 커리어가 있겠는가. 있더라도 만화에서나 그려질 수준이 아닐는지.


단단함과 담담함
이예원의 플레이에는 단단함과 담담함이 있다. 원숙하다고 표현하는 건 또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분명 육각형인 건 맞는데 그 이상의 ‘타이트한’ 플레이 스타일이 묘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현장이든 중계로든 이예원의 샷을 앞두고선 숨죽이게 되는 일이 잦았다. 경기 중인 이예원은 마치 무사나 수도사를 보는 것 같을 때가 많다. 경기 중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 오해하는 팬도 많지만, 알고 보면 이예원도 딱 그 나이대의 호들갑과 수선함을 가진 ‘깨발랄’ 캐릭터다.

 

이예원은 동갑내기 절친 유서연2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 ‘안캐디(SBS GOLF)’에 출연해 올 시즌 좋은 성과의 이유를 묻자 “연습을 많이 해서”라고 말했다. 그 말에 동반 출연한 유서연은 “(이예원이)연습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라며 일축했고, 이예원은 “시즌 중에는 컨디션 조절을 위주로 하고, 동계 훈련에서 더 열심히 연습한다”고 항변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물론 여기에도 유서연이 “동계 훈련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는…”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예원의 말대로라면 이번 동계 훈련 기간이 앞으로 그의 커리어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

 

우리 예원이 월드클래스 아닙니다
그런 겨울 시즌을 앞두고 골프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토록 훌륭하게 2년 차를 보낸 이예원의 3년 차를 기대하는 만큼 ‘거둔 것보다는 거둘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끈을 놓치지 말라’는 조언을 건네고 싶다.

 

올겨울을 잘 보낸다면 3년 차의 이예원은 자신의 오리지널 플레이 스타일마저도 정립할 수 있을 것이고, 더 커질 주변의 기대를 오히려 즐기는 3년 차를 보내게 될 것이다. 이예원 특유의 단단함과 담담함이 옹골참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한다. 만약 충실하지 못한 겨울이 된다면 내년 시즌 더 커질 주변의 기대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슬럼프가 시작될 수도 있다.


이제 막 한 시즌을 훌륭하게 보낸 신인에게 무슨 소리냐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골프에선 그런 사례가 숱하게 나온다. 이예원의 ‘각 잡힌’ 플레이를 앞으로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라 변명하고 싶다.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씨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나 싶을 정도다. 손웅정이 “우리 흥민이 월드클래스 아닙니다”라고 한 건 겸양이기도, 메타 인지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손흥민에게 ‘이룬 것보다 이룰 것이 더 많이 남아있다’는 채찍질이었던 것처럼 이예원에게도 같은 채찍질을 가하는 것이라 설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