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 ‘인도어(indoor) 골프장’ : 한국 골프 대중화의 견인차  
  [외부 기고] ‘인도어(indoor) 골프장’ : 한국 골프 대중화의 견인차  
  • 김대진
  • 승인 2020.08.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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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어(indoor) 골프장’ : 한국 골프 대중화의 견인차  

                                           강인구(프리랜서, eugene604@hanmail.net)

  한국 골프는 이미 대중화의 단계에 들어섰다. 국내 골프인구는 470만 명(2017년 기준)에 육박하고, 전국적으로 골프장은 500여 개, 실내외 골프연습장(스크린 포함)은 1만여 개에 이른다. 실외연습장 1,300여 개소, 실내연습장은 8,700여 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골프연습장의 확산은 골퍼들에게 연습장 선택의 폭을 넓혀줄 뿐 아니라 골프의 저변 확대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 골퍼들을 중심으로 골프 인구의 70~80%는 필드보다는 스크린 같은 실내 골프연습장을 선호한다.
  골프연습장은 도심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대다수 시민들을 위한 골프 첫 입문코스이다. 골퍼들이 라운드를 나가기 전에 미리 자신의 스윙감각을 되살리거나, 필드에 자주 나갈 기회를 잡기 어려운 골퍼들도 골프채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실내 골프연습장을 먼저 찾아가곤 한다. 
한국에서 골프 대중화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실내 골프연습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한국골프 100년』을 들여다보면, 최초의 실내 골프연습장은 1954년 명동소재 서라벌다방 2층에 자리한 ‘명동골프연습장’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고봉우가 김건영과 안중희 두 사람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30여 평 작은 규모로 타석도 2개 밖에 없을 정도였다. 이 골프연습장은 한 번 더 이전한 뒤 화재로 인하여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 1)

  당시에 실내 골프연습장은 보통 ‘인도어골프장’이라고 불렀다. 그 다음 서울에 개장된 골프연습장은 1957년 명동 사보이호텔 정문 앞 태양당구장 옥상에 급하게 만들어진 3타석짜리 <서울인도어골프장>이었다. 
  대중들이 골프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에 골프연습장을 도심 속에 만든 사람은 흥미롭게도 국악인 안비취 여사였다.(중요무형문화제 제57호; 1975년 지정) 안비취 여사는 회고하기를, 1956년 당시 한국예술단 멤버(고전무용)로 2개월 동안 일본순회 공연(대춘향전)을 갔었는데, “일본공연 때 어느 일본여성이 골프를 치자고 했어요. 아직 필드를 구경도 못했던 때라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말았지요. 속으로는 자존심이 상해 무척 기분이 좋지 않았답니다”. 2)
 일본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안비취 여사는 즉시 도심 명동에 골프연습장을 개장했던 것이다. 

  골프 황무지 시절을 보낸 <서울인도어골프장>은 10년 뒤 1967년 말에 충무로 입구 대연각호텔 맞은 편 남성무역빌딩 5층으로 옮겨갔다. 이전 장소보다는 교통도 편리했고, 연습장 규모도 250평 정도로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많은 골퍼들에게 타석을 제공했다. 도심 속 골프연습장에서 대기업 간부, 금융인, 언론인, 교수 등 많은 명사 골퍼들이 주말에 나갈 필드를 즐겁게 상상하면서 백구를 때렸다. 특히 <서울인도어골프장>은 입회금을 없애고 쿠폰제로 1개월에 골프공 100상자(보통 1상자 당 골프공 30개) 제공하는 것을 기준으로 4,500원만 지불하도록 했다. 또한 자동으로 공이 나와 연습을 계속할 수 있는 ‘골페트’기(機)를 새로이 도입해서 별도로 캐디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도 없앴다. <서울인도어골프장>에는 당시 고바우라는 애칭으로 유명했던 경력 15년의 조용채 코치를 비롯해 10년 이상 코치경력을 가진 김경문, 안상협, 임효웅(프로자격 1970년 획득) 등이 레슨하고 있었다. 3) 

  한국 여성골퍼 제1호로 꼽히는 안비취 여사는 당시 방일영 조선일보 회장도 말했듯이 당시에 ‘골프교장’으로 통했다. 골프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에 경제적 이익도 남기지 못하면서까지 골프연습장을 어렵게 운영하면서 5천여 아마추어 골퍼들을 배출했을 정도였다. 4)
 
  당시 『매일경제신문』 기사 중 <골프 삼매(三昧)>란을 보면, 1960년을 전후해서 골프를 시작한 골퍼들을 만나보면 거의 모두가 <서울인도어골프장>에서 골프 입문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물론 안비취 여사의 골프 실력도 놀라웠다. 핸디캡 12를 인정받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 겸손하게도 “요즘은 핸디(핸디캡:필자) 유지가 어려워요. 아무래도 가정주부이기 때문에 우선 라운드 횟수가 적으니까 자연 스코어가 높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같이 골프계에서 안비취 여사의 공헌과 실력 모두가 인정되었기 때문에 당시 빅3 골프장이었던 서울CC, 한양CC, 뉴코리아CC에서 안비취 여사가 라운드할 때는 정식회원이 아닌데도 캐디피만 받고 우대할 정도였다고 한다. 5)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인도어골프장이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1966년 가을 <삼성인도어골프장>은 삼성빌딩(을지로1가 50번지) 12층에 삼성그룹 실내 골프장으로 문을 열었다. <삼성인도어골프장>은 60여 평에 플레이세트 6개를 설치하고 있었다. 회원 관리는 회비제와 쿠폰제를 선택할 수 있었고, 레슨비는 별도로 계산했다. 전속 코치는 최종일(프로자격 1973년 획득)과 홍덕윤이 있었고, 안양CC에서 헤드프로로 있던 한장상이 자주 나와서 레슨을 했다고 한다. 한장상 프로는 원래 서울CC 전속 프로였는데, 이병철 회장을 개인 레슨한 인연으로 안양CC가 개장되자 곧 자리를 옮겼다. 그는 한때 박정희 대통령도 레슨했던 적이 있었다. 이 실내 골프장은 위치상으로 삼성그룹 간부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맹희 삼성물산 부사장도 연습장에 자주 들렀고, 건너 편 반도호텔 일본 투숙객을 비롯한 외국인들도 왕래가 빈번했다. <삼성인도어골프장>에서 어느 정도 숙달된 골퍼들은 안양CC나 뉴코리아CC에 나가서 필드연습까지 할 수 있었다. 6)
 

삼성인도어골프장 실내 모습 (출처: 『매일경제신문』 1969.6.10.)
삼성인도어골프장 실내 모습 (출처: 『매일경제신문』 1969.6.10.)

  한편, 당시 표현으로 ‘골프붐’이 일기 시작하자 <명동인도어골프장>과 <중앙인도어골프장>도 문을 열었다. 1967년 시민관 건너편 삼문빌딩 6층에 개장된 <명동인도어골프장>에는 그 주변에 은행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서진수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은행 간부들과 송달수 투자개발공사 이사, 신태화 삼문사 사장, 김찬수 검사, 홍남표 판사 등 재계와 고위공직자들이 단골손님으로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인도어골프장의 규모와 이용료는 총 53평에 플레이세트 2개를 설치했고, 회원비는 월 8,500원을 내면 언제든지 공을 칠 수 있었다. 하루에 평균 30여명 이상의 골퍼들이 찾은 <명동인도어골프장>은 정용, 박창근 코치가 레슨하고 있었는데, 특별히 정용 코치의 명성을 말할 때는 당시 조영식 경희대 총장을 5개월 만에 핸디캡 12로 올려놓았다고 자랑삼았다. 7)

  비슷한 시기 서울 무교동 23번지에 새로운 실내 연습장 <중앙인도어골프장>이 자리 잡았다. 1968년 3월 개장된 연습장은 80평 규모에 플레이세트 8개를 설치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타석마다 한 명씩 여자종업원을 배치해서 연습장 이용객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서비스를 했다. 게다가 골프의 대중화 차원에서 <중앙인도어골프장>은 여성 회원들에게 이용료 20%를 할인하는 우대를 함으로써 특히 여성 이용객들이 붐볐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월 1,800여명의 골퍼들이 열공했던 <중앙인도어골프장>에서는 한양cc 헤드프로 강영일(프로자격 1968년 획득)이 직접 운영과 레슨을 겸했고, 초보자들에게 골프공 200상자만 연습하면 필드에 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특급 레슨을 한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8)

  다른 한편, 1960년대 ‘대중 골프연습장’으로 널리 광고됐던 실외 골프장을 잠깐 얘기 안할 수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보 골퍼들이 인도어골프장에서 기본스윙을 배우고 나면, 필드에 나가기 전에 실전을 익히는 연습 장소가 실외 골프장이다. 당시 ‘반공학교’로 알려진 남산의 자유센터 아래쪽에 1965년 5월 최초로 ‘드라이빙 레인지’가 개장되었다. <자유센터골프클럽>에서 연습 비용은 골프공 24개 1상자 당 80원을 냈고, 역시 대중화 차원에서 여성 골퍼들은 반액으로 우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암길, 이성출 코치 등이 골프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9) 이 실외 골프장은 골퍼들이 실전 연습하는데 편리함과 일반 대중들에게 골프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덕마골프구락부 개장 광고 (출처: 『경향신문』 1968.6.19.)
덕마골프구락부 개장 광고 (출처: 『경향신문』 1968.6.19.)

  또 하나의 대중 골프연습장으로 1968년 6월 뚝섬 경마장내에 면적 약 5만평에 미니 파3 골프장 형식을 갖춘 <덕마골프구락부>가 개장되었다. 덕마 골프장은 길이 270야드 80타석의 드라이빙 레인지와 야간조명 시설을 갖추고 밤 10시 30분까지 운영했다. 이 연습장을 이용하는 골퍼는 450원을 내고 입장해서 골프클럽 대여가 필요하면 하프세트를 하루 종일 빌리는데 300원, 클럽 1개를 빌리는 데는 100원만 지불하면 됐다. 연습장 이용객은 골프공 24개 1상자에 100원씩 지불했는데, 그 100원 중 90원은 골프장 오너의 수입이었고 10원은 공을 타석에 놓아 주는 캐디의 수입이었다고 한다. 덕마골프장에는 최금천(프로자격 1968년 획득)과 이제호(프로자격 1973년 획득)가 레슨을 맡고 있었다.
  또한 당시에 국내 유일의 ‘퍼블릭 코스’로 각광을 받은 덕마골프장에는 파3(160야드), 파4(350야드), 파5(452야드) 홀이 각각 1개씩 있었다. 골프장 운영도 회원제가 아니고 누구든지 입장료 450원을 지불하고, 클럽 하프세트의 대여료 300원과 캐디피 1라운드 당 80원을 내면 3코스를 한번 돌 수 있었다. 추가 비용만 지불하면 9홀 게임을 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로써 락커룸, 식당, 목욕탕, 이발소까지 최신 설비를 갖춘 건평 500여 평의 2층짜리 클럽하우스는 연습장 골퍼들의 특별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10)

덕마골프구락부 전경 (출처: 『사진으로 보는 한국골프사』, 2006, 대한골프협회)
덕마골프구락부 전경 (출처: 『사진으로 보는 한국골프사』, 2006, 대한골프협회)

[참고 문헌]

1)『한국골프 100년』, 117쪽

2)『매일경제신문』 1970.11.12

3)『매일경제신문』 1969.5.27

4)『매일경제신문』 1970.11.12

5)『매일경제신문』 1970.11.12

6)『매일경제신문』 1969.6.10  

7)『매일경제신문』 1969.5.20 

8)『매일경제신문』 1969.6.17 

9)『한국골프 100년』, 118쪽

10)『국제골프』 7월호, 1970, 60-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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