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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Park(우아한 박)’의 아름다운 은퇴


[데스크칼럼] 박세리, 김미현과 한국여자골프 중흥기 이끈 ‘인텔리전트’ 박지은

 

마치 인형 같은 얼굴에 아린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던 여고생 박지은(33)을 만난 건 1996년 여름이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 유명 아마추어 선수로 성장한 그녀는 차후 LPGA투어를 이끌어갈 기대주로 평가 받던 시절이었죠.

천상 소녀처럼 재잘거리는 구김살 없는 모습이었고, 예의 바르면서도 도도한 기품까지 있어 그녀의 ‘팬’이 돼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리틀 미스코리아’에 뽑힐 정도로 미모가 눈에 띠던 박지은은 리라초등학교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다 졸업과 동시에 유학을 떠났습니다.

골프를 시작하기 위해서 였죠. 골프와 학업을 병행하던 어린 박지은은 골프도, 공부도 모두 잘하는 천재적 소질을 보이며 성장했습니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주 명문 호라이즌스쿨을 우등생으로 졸업하자 수많은 명문대학에서 러브콜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박지은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담긴 지역 명문 애리조나주립대학을 선택했습니다. 당연히 장학생으로 뽑혔고, 수업 한 번 빠지지 않는 등 노력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습니다. 어린 나이에 먼 타국에서 홀로서기를 배우면서 ‘지독하게 노력하는 습관’이 몸에 밴 때문이었죠.
 

박지은의 아마추어 성적은 눈에 부실 정도입니다. 전미 주니어랭킹 1위, 미국 아마추어랭킹 1위, 미국 대학랭킹 1위를 휩쓸었고 US아마추어선수권 우승, 웨스턴아마추어선수권 우승, 위민스트랜스내셔널 우승 등 굵직한 대회들을 차례로 석권했습니다. 급기야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아마추어 55승이라는 대기록를 달성하기에 이릅니다.
 

 대학 재학시절 프로로 전향한 박지은은 1999년 LPGA 2부투어 10개 대회에서 무려 5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1위로 당당하게 정규투어에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LPGA 본 무대에서는 2004년 메이저대회 나비스코챔피언십 제패 등 통산 6승을 수확했고 많은 골프팬을 매료시키며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공격적이며 화끈한 플레이로 ‘버디 퀸’이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당시 LPGA 무대를 평정하던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대항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교 시절 삐끗한 허리가 고질병이 돼 발목을 잡히고 말았습니다.
 

박지은은 비록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을 프로무대에 다 꽃피우지는 못했지만 2000년대 초중반 박세리(35), 김미현(35)과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한국 여자골프의 ‘중흥기’를 이끈 선구자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제 박지은은 프로골프 선수 생활을 접고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곧 결혼을 합니다. 마땅히 축하할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엔 좀 아쉬움도 있습니다.

16년 동안 꾸준히 지켜봐온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량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순전히 가정(假定)이지만, 박지은이 허리부상만 없었다면 박세리(LPGA 통산 24승)에 버금가는 성적을 냈을 것으로 기자는 확신합니다.
 

박지은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세리, 미현 언니보다 더 힘들었다. 가정은 부유했지만 학업과 골프를 같이 해야 했고, 어린 나이에 혼자 미국 가서 적응해야 했다. 다른 프로들은 10년 객지 생활 했다면 저는 타국에서 20년 넘게 생활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만큼 힙들고 외로웠다는 얘기입니다.
 

박지은은 한때 세계랭킹 2위까지 했고, 꾸준히 잘 쳐야 받을 수 있는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정상에 서 봤다는 뜻이죠.

그녀는 이제 “본인 스스로가 정상의 골퍼만이 맛볼 수 있는 긴장감과 카리스마를 느낄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안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씁쓸할 따름입니다.
 

20년간 고단했던 골프선수 생활을 마감한 박지은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골프가이드 소순명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