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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칼럼]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주목받은 ‘생각하는 정원’

지이코노미 정길종 기자 |  신(神)이 축복한 황금의 땅 제주도에 키 작은 난쟁이 나무들에 미쳐 일생을 살아온 한 농부가 있다. 가시덤불로 뒤덮인 황무지를 세계 제일의 분재(盆栽)정원, ‘생각하는 정원’으로 탄생시킨 성범영 원장이다.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과 이창호 위원장이 함께 생각하는 정원에서 앉아있는 모습 

자갈밭을 개간하고 나무를 가꿀 때, 친지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루외(미친놈이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분재와 나무에 대한 그의 사랑은 멈추지 않았고 1992년 마침내 한중수교 한 달 전에 정원을 개원하기에 이른다. 

 

성범영 원장은, 40여 년 전 젊은 시절에 아내와 자식을 떠나 혼자서 돌멩이만 가득한 제주도에 와 황막한 섬을 아름다운 밭으로 만들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는 나무에 반했고 나무를 사랑했다. 그의 분재원은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철학적인 의미가 깊은 이름을 갖고 있다. 

 

48년 동안 생각하는 정원 주인 성범영은 보통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정신 및 육체의 고통을 감내했다. 그는 자신이 힘들 때면 ‘아내의 사랑과 지지가 힘이 돼주곤 했다’고 말하곤 한다.

 

1962년으로 그는 군에서 퇴역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를 소개하는 방송을 들었다. 대학교수들이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제주도가 아름답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다고 했다. 이때 그는 불쑥 제주도에 사는 전우를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몇 시간의 바다 여정을 거쳐 그는 제주도로 갔다. 그가 본 제주도는 신기롭기 그지없었다. 나무는 푸르고 감귤은 나뭇가지에 가득 매달려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수돗물도 없었지만, 곳곳에 푸른 나무들이 경이롭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좋아했던 그는 이곳에 나무를 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70년대 초부터 성범영은 서울과 제주도 사이를 빈번히 들락거렸다. 사업이 잘돼 돈이 생기면 바로 제주도의 황무지를 샀다. 스물네 곳에 땅을 사서 오늘의 생각하는 정원 규모를 만들었다. 땅을 개간하고 돌담을 쌓고 원목으로 문을 짜서 달고 조경용 나무들을 구매해 들였다. 

 

분재에 대해 성범영은 독학하여 전문가가 된 사람이다. 늘 밤을 새우며 분재에 관한 서적을 읽고 전문가를 방문해 자문하곤 했다. 점차 분재에 입문하게 되자 그만 분재에 깊이 빠져들었다. 

 

1974년, 성범영은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을 관두고 아예 호적을 제주로 옮겨왔다. 아내는 종종 그를 보러 제주로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성범영은 지친 모습이었다. 농장을 빨리 꾸리기 위해 성범영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노동자들과 함께 돌을 캐고 나무를 심고 분재를 자르곤 했다. 


1987년 초, 성범영의 머릿속에는 점차 한국 제주도 특색이 있는 분재예술원의 윤곽이 떠올랐다. 1990년 4월, 그는 3년을 기한으로 힘든 공사를 시작했다. 1992년 7월 30일, 분재예술원은 드디어 개원했다. 하지만 당시 공사는 25%밖에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개원하자 바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1995년, 중국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이 방문하면서 분재예술원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장주석이 방문한 날 하늘은 과연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성범영 부부는 감격의 마음으로 귀빈을 맞이했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나서 성범영은 “위엄보다는 내내 친근하고 자상하였다.”라고 말했다. 그 후 국내의 많은 언론은 성범영의 분재원이 ‘세계 유일의 분재원’이라고 보도했다.

 

해마다 관광객은 무려 30~40%씩 증가했고 매일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관광객이 수천 명에 달했다.

 

성범영 원장은 말한다. “정원을 시작한 해는 1968년이고 오픈은 1992년, 장쩌민 주석님께서 1995년 11월 17일 정원을 방문하셨고, 1998년 4월 30일 후진타오 부주석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현 시진핑 주석님께서는 2005년 7월 22일 제가 중국을 출장하던 중에 다녀가셨습니다.

 

제가 뵙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지요. 현재까지 2007년 8월에 한중수교 15주년 행사를 필두로 2012년 20주년, 2017년 25주년 행사를 성황리에 끝맺었지요. 올해는 30주년을 맞으며 팬데믹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하루빨리 상태가 호전되기만을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성범영 원장의 생각하는 정원은 제주도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오랜 세월 나무와 대화하면서 더 많은 인생의 철학과 이치를 깨닫게 된다.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고정관념을 자르지 않으면 늙어가게 됩니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계획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꿈동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돌멩이 밭을 꿈같고 환영 같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렸다. 성범영 원장의 꿈은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한편, 그의 책《생각하는 정원》 머리말에 “가장 행복한 순간은 ‘생각하는 정원’에서 행복한 얼굴로 미소를 가득 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이다. 우리 정원이 그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즐거움’을 주었다면 내게 그보다 기쁜 일은 없다.”라고 쓰여 있다.

 

글 작성: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