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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기업인 장관 시대…AI 실용주의, 균형은 누가 잡을 것인가

민간 전문가 발탁, 현실적 선택일까…대기업 편향 경계해야

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이재명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내놓은 인사에서 ‘AI 중심 실용주의’의 색채가 분명해졌다.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에 네이버 출신 하정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로 LG AI연구원장 배경훈, 국무조정실장에는 LG 글로벌전략개발원장 윤창렬, 그리고 한성숙 네이버 고문까지. 기업 출신 민간 전문가 4명이 국정의 핵심에 전면 등장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삼성전자 출신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이후 20년간 기업인 출신 장관은 단 네 명에 불과했다. 특히 현직에 있거나 바로 직전까지 대기업에서 재직했던 인사가 이처럼 다수 내각에 포함된 적은 없다. “진대제 전 장관 이후 가장 상징적 인사”라는 재계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책 추진력 측면에서 이는 분명 ‘실용적 선택’이다. AI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기술 변화 속도는 정부의 전통적 정책 설계 시스템을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다. 산업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들이 정책 설계자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공학적 이해는 물론, 기업 간 기술 경쟁과 생태계 동향까지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실무형 리더십은 지금의 AI 정책 공백을 메우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이러한 인사는 시대의 요구에 부합한다. 전 세계가 AI 기술 패권을 놓고 치열한 전략 경쟁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빠르고 유연한 대응’이 필수다. 이재명 정부가 첫 내각부터 민간 AI 전문가를 전진 배치한 것은 그만큼 AI 산업 육성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신호다.

 

그러나 기술 기반 실용주의의 빛은 곧 그림자를 동반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기업 중심의 정책 구조화다. 현재 지명된 인사 중 다수는 대형 ICT 기업 출신이다. 이들이 참여한 민간 프로젝트나 기업 전략이 정부 정책과 맞물릴 경우, 공정성과 객관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며 우려하는 배경이다.

 

이해충돌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일부 인사는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현재에도 후임 인선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 사업, 특히 연구개발(R&D)이나 인공지능 윤리, 데이터 규제와 관련한 예산 및 입찰에서 출신 기업이 구조적으로 이득을 보는 구조는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실용주의가 사적 이해로 오인받는 순간, 정책 정당성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 균형을 잡기 위해선 민간 중심 인사에 상응하는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장관이 민간 출신이라면 차관 및 주요 실무 라인에는 학계나 공공연구기관 출신 전문가가 포진해야 한다. 기술 추진과 함께 가치 판단, 장기적 연구 생태계, 윤리적 기준 등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 중심 정책으로 기초과학과 학문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학계의 경고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전문성과 실행력을 갖춘 최적의 인사”라는 논리를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전문성은 균형 속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실용주의와 공공성, 민간의 유연성과 공무체계의 안정성은 서로를 보완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플랫폼이자 국력의 척도다. 이재명 정부의 인사 실험은 분명 도전적인 시도다. 그 도전이 성공하려면, 기술을 넘어선 정책적 중립성과 생태계 균형이라는 보다 큰 틀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어야 한다.

 

‘AI 강국’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강력한 추진력만큼, 그것을 지탱할 견고한 균형이 뒷받침되어야 진짜 성과로 이어진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