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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이재명 대통령, 하도급 갑질에 칼 빼들다

하도급 구조 속 책임 전가와 안전비 축소, 대통령이 정면 겨냥
원청의 무리한 단가·공기 압박, 하도급 현장에 위험 떠넘겨
법 개정·과징금·신고 포상으로 구조적 불공정 해체 예고
안전 투자 의무화와 데이터 기반 점검으로 산업재해 예방 강화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그 전쟁의 첫 타깃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그 속에 자리한 갑질이다.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비용을 줄이려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발언 수위는 유례없이 단호했고, 이번엔 실제로 산업재해를 낳는 구조를 해체하겠다는 구상이 분명히 드러났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표면적으로는 ‘효율적 분업’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위험과 책임을 끝없이 하청으로 떠넘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발주처와 원청은 계약서 한 장으로 현장의 안전 책임을 하청업체에 전가하고, 1차 하청은 2차로, 2차는 3차로 계약을 재전가한다. 그 과정에서 공사비는 조각조각 잘려나가고, 안전에 쓸 수 있는 비용은 사라진다. 남는 것은 과도하게 압박된 공사 일정과 줄어든 예산뿐이다.

 

하도급 업체들은 원청의 ‘갑질’ 앞에서 매일 생존을 건 선택을 강요받는다. “기한을 맞추기 위해 안전 절차를 생략할 것인가, 아니면 약속을 지키지 못해 계약 해지와 블랙리스트 등 생존권 위협을 감수할 것인가.” 어느 쪽을 택하든 손해지만, 대다수는 어쩔 수 없이 안전을 희생한다. 원청은 공문과 서류로 안전교육 이수를 기록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과 점검이 생략되기 일쑤다. 그 결과, 추락·끼임·질식 같은 전형적인 산업재해가 반복된다.

 

대통령이 원청 책임 강화 방안을 핵심 정책으로 제시한 이유는 바로 이 구조적 문제에 있다. 공정별 안전비용 의무 계상, 다단계 하도급 억제, 중대재해 발생 시 공공입찰 영구 제한과 과징금·금융 제재 부과 등은 단순한 처벌책이 아니다. 원청이 안전을 ‘비용 절감 대상’이 아닌 ‘불가피한 투자 항목’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장치다.

 

여기에 안전 미비 사업장 신고 포상제 도입도 거론됐다. 하도급 업체 입장에서 이 제도는 양날의 검이다. 내부 신고가 활성화되면 원청의 보복을 우려할 수 있지만, 법적 보호와 충분한 보상이 뒷받침된다면 부실 시공과 안전 무시 관행을 끊어낼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 된다.

 

정부는 입법적 뒷받침도 준비 중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국가계약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원청과 발주자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재해 다발 사업장에는 반복 가중 제재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하도급 업체 입장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무리한 압박’을 줄여줄 수 있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다만, 법 적용 기준이 모호하면 오히려 하도급에도 불필요한 규제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에 절차와 기준의 세분화가 필수다.

 

현장 대응 강화도 예고됐다. 고위험 공정의 즉시 작업 중지, 상시 특별감독, CCTV·센서 기반 디지털 안전관리 의무화 등이 확대될 전망이다. 업종·지역별 사고 데이터를 축적해 위험이 집중된 사업장을 선제 점검하면, ‘안전 불감증’이 자리 잡은 관행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하도급 업체로서는 주관적 평가 대신 객관적 데이터 기반 점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변화다.

 

이번 대책은 단순히 산업재해라는 ‘사후 결과’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원인을 제공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하도급 업체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생존을 위한 구조 개혁이자 안전을 확보할 기회다. 원청이 무리하게 비용을 깎고 공정을 당기는 관행이 사라진다면, 하도급 업체는 더 이상 ‘사고의 방패막이’가 아니라 안전을 지키는 동등한 파트너로 설 수 있다.

 

물론 이 길에는 장애물도 많다. 일부 원청은 규제 완화와 책임 회피를 위해 강력한 로비를 벌일 것이고, 업계 내부에서는 ‘규제 과잉’이라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하도급 업체가 목소리를 내고, 정부가 이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며, 사회가 이를 지지한다면 대통령의 결단은 산업재해를 낳는 구조적 불공정의 사슬을 끊어내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꺼내 든 칼은 단순히 산업재해 통계를 줄이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하도급의 절규를 멈추게 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종식시키는 칼이다. 그리고 이 칼은, 끝까지 휘둘러야만 의미가 있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